코로나19의 창궐과 K-좀비의 등장
공포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불안과 공포심을 느끼게 하는 영화들을 총칭한다. 보통 폭력적인 사건을 보여주며, 두려움과 긴장감에 떨게 만든다. 그 하부에 유령이나 괴물이 등장하는 괴기 영화, 초자연적이고 신비한 현상을 다루는 오컬트 영화, 유혈이 낭자한 스플래터 영화 등을 거느리고 있다.
대중의 무의식이 반영되기 때문에 주로 만들어지는 영화들을 통해 당대의 사람들이 어떤 불안과 공포를 가지는지 분석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냉전시대에는 공산주의의 위협, 베트남 전쟁의 후유증이 공포의 기저를 담당했다. 최근에 개봉한 <겟아웃>(2017), <어스>(2019) 같은 영화는 흑인 인종 문제를 은유하고 있다.
우리나라 공포영화는 기본적으로 권선징악의 구조를 띤다. 사극을 배경으로 한 공포영화들은 한을 품은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들이 많았는데, 가부장적인 억압을 기저에 깔고 있다. 5편까지 만들어진 <여고괴담> 시리즈는 학교괴담을 바탕으로 과도한 입시경쟁과 집단 따돌림 문제를 다루기도 했다.
조지 로메로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과 <시체들의 새벽>(1978) 등의 영화를 통해 냉전, 소비사회, 계급갈등을 암시했다. 살아난 시체가 살아있는 사람들을 공격하고, 이들에게 물린 자는 또한 같은 상태가 된다는 좀비의 정치적, 사회적 은유는 시대와 장르를 넘나들며 변주되었다.
코로나19가 지구를 둘러싼 지금, 감염에 대한 우려는 좀비영화가 다시금 인기를 끄는 기폭제가 되었다. 감염, 격리, 폐쇄 등의 설정들은 영화와 현실이 동일하다. 두 곳 모두, 바이러스에 중독된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옮기고, 주인공들은 무수히 사투를 벌이고 있다. 좀비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통해 좀비보다 은밀하게 우리 곁에 다가온 바이러스를 대처하는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버려진 땅에서 인간으로 살아남기 <반도>
연상호 감독의 <반도>(2020)는 1000만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였던 <부산행>(2016)의 후속작으로 많은 기대를 받았다. 애니메이션 <서울역>(2016)과도 세계관을 공유한다. 서울역에서 시작된 감염은 ktx를 타고 부산으로 돌진한다. 이후 한반도 전역이 감염되었지만, 그 와중에 아직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었다.
영화의 시작은 군인인 정석(강동원)이 누나네 가족을 데리고 급속하게 퍼지는 좀비 바이러스를 피해 피신하는 장면이다. 그 와중에 차가 고장 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족을 만난다. 아이만이라도 태워달라고 애원하지만, 다른 사람을 돌볼 여력은 없는 상황이다. 우여곡절 끝에 홍콩으로 가게 되는데, 난민 생활로 4년이 흐른 후, 다시 한국땅에 들어갈 일이 생긴다.
<서울역>과 <부산행>이 좀비 바이러스의 확산을 다룬 영화라면, <반도>는 이미 좀비에 의해 장악된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한다. 한반도에 버려진 사람들은 야만의 시절을 살고 있으나, 민정(이정현)의 가족만은 인간성과 희망이라는 씨앗을 심는다. 여성, 어린이, 노인만 남은 가정은 재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미덕을 그림으로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리킨다.
이 영화가 지닌 차별화 포인트는 <분노의 질주> 시리즈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를 떠올리게 하는 카체이싱과 드리프트다. 준이(이레)의 운전 솜씨에 좀비들은 볼링공에 강타되어 산산이 쪼개지는 볼링핀 신세다. 달려들고 나가떨어지는 것이 시각적인 쾌감을 일부 줄 수는 있겠으나, 좀비로서의 존재감은 턱없이 부족하다. 좀비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는 점만 확인시켜줄 뿐이다.
우리 함께 <#살아있다>
집에 홀로 남은 준우(유아인)에게 긴급재난문자가 전송된다. 아파트에서 밖을 내려다보니 감염자들로 인해 아수라장이다. 전화, 문자, 인터넷이 모두 먹통인데, 준우는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 어느덧 20여 일이 지나고, 식량과 물마저 바닥났다. 외로움에 지친 준우는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한다. 그때 건너편 아파트에 살고 있던 유빈(박신혜)가 레이저로 신호를 보낸다.
초반 혼자만 살아있다고 느끼던 고립감이 혼자가 아니라는 동질감으로 넘어가며 영화는 한 고개를 넘는다. 드론과 로프로 자신들의 소유를 공유하며 삶의 의지를 이어나간다. 시간이 흘러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고 판단한 두 사람은 8층으로 가기 위해 위험을 불사하고 집을 나선다. 어려운 시기를 함께 했던 두 사람은 교감을 통해 더욱 강인해지고, 상대를 위해 용기를 낼 줄도 알게 된다.
영화는 좀비의 출현이라는 재난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재난의 한가운데 고립된 개인에 주목했다. sns를 통한 ‘#살아있다’는 구조요청은 ‘#살고싶다’는 의지와 ‘#살아야한다’는 목적으로 점차 변해간다. 그것도 나 혼자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생존해야 한다. 이제 영화의 제목이 <#alone>에서 <#alive>로 바뀔 수밖에 없던 이유다.
<#살아있다>의 좀비들은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 수 없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증세나 존재로 등장했을 뿐이다. 딸이 엄마를, 아내가 남편을 알아보지 못하여 물어뜯고, 공격한다. 그럼에도 살아있을 당시의 직업과 성격적 특징을 잊지는 않았다. 시각, 청각, 후각도 남아 있어서 등장인물들은 더욱 위기에 처한다. 이미 좀비가 된 자에게 가족은 의미가 없겠으나, 살아남은 자들에게는 그들도 여전히 가족이다. 그 인간적 관계가 비극의 씨앗이 된다.
짐 자무쉬의 <데드 돈 다이>(2019)에 나오는 좀비들은 생전의 행동을 반복했다. 예전에 좋아했던 장난감과 공구를 찾고, 핸드폰을 들고 와이파이와 블루투스를 잡기 위해 돌아다닌다. 좀비를 통해 영혼을 팔아 황금과 물질을 산 사람들에 대한 은유하고, 여전한 굶주림으로 세상의 종말을 얘기한다. 좀비에게서 살아있는 자의 행동을 발견하듯, 살아있는 자에게서 좀비 같은 행동을 보게 된다. 둘 사이의 경계가 겹쳐지는 현실은 우리의 고민이 머물러야 할 지점이기도 하다.
그들이 좀비가 되어야 했던 이유 <킹덤>
<킹덤>은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시즌제 드라마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왕이 죽었고, 이제 왕위는 세자가 물려받아야 하지만, 외척은 자신의 핏줄이 새로운 왕이 되길 바란다. 이를 위해서는 임신한 자신의 딸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왕이 살아있어야 한다. 명의의 의술로 죽은 왕을 좀비로 상태로 살려놓긴 했는데, 그의 조수가 왕에게 물려 죽는 일이 발생했다. 이를 시작으로 조선은 좀비 천지가 된다.
드라마 속 역병이 코로나19를 연상시킨다는 반응이 많았다. 생사초의 근원이 중국에서 유래하였다는 점, 코로나19가 창궐한 대구 경북지역과 역병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곳이 부산의 동래, 경북 상주의 지역적 관련성도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김은희 작가는 <킹덤>이 2011년부터 기획이 된 것이고, 경상도 지역이 백두대간으로 자연스럽게 장벽이 만들어져서 생각을 한 것이라 답했다.
시즌1의 주제는 ‘배고픔’이었다. 이것은 ‘가난’과 ‘욕망’으로 표현되었다. 역모의 누명을 쓴 이창(주진모)은 왕의 병에 대한 비밀을 밝히기 위해 궁을 나서게 되었고, 그곳에서 가난과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을 마주한다. 반면 궁 안의 권력을 탐하는 권세가들의 욕망은 채워지지 않는 허기의 화신이다. 극심한 배고픔은 역병으로 변하여 권력에 허기진 자들을 공격한다.
시즌2의 주제는 ‘피’였다. ‘핏줄’과 ‘혈통’에 관한 이야기로 연출되었다. 피를 탐하는 역병 감염자들과 혈통을 탐하는 권력자들이 대비되었다. 핏줄에 집착하여 백성들의 굶주림에는 관심도 없던 권력자들과 이를 바로잡고자 하는 이들의 분투가 주요 스토리이다. 세자는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고, 왕은 그 백성을 하늘로 삼는다”라고 말했다. 영화가 흘러갈 방향을 드러낸 대사였다.
김은희 작가는 <킹덤>의 좀비에게 감정을 넣길 바랐다. 죽은 좀비가 감정을 느낀다기보다는 시청자들이 좀비로 변한 사람들을 보면서 슬픔, 연민, 동정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여겼다. 배고픔 때문에 전염이 시작되었고, 죽어서도 배고픔을 쫓는 존재라서, 무엇이라도 먹기 위해서는 빠르게 달려야 했다는 것이다. K-좀비의 특징으로 빨리 달리는 것과 함께 좀비가 된 사연에 집중하는 특성을 말하는 것과 결을 같이 한다.
팬더믹 시대, 우리 좀비는 되지 말아요.
좀비의 고향으로 알려진 아이티는 카리브해 노예무역의 중심지이자 부두교가 발원한 지역이다. 부두교의 주술사에 의해 좀비가 되면 죽어서 까지 노예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노예제도와 결합하여 흑인 노예들이 체제에 저항하지 못하고, 고분고분하게 순응하게 만들었다. 잘못된 체제에 대하여 무비판적인 존재가 되길 원했고, 좀비 같은 이들을 양산했던 것이다. 멀쩡한 사람들을 좀비로 만들기 위한 권력자들의 욕망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데, 거기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잡히지 않게 거리를 유지하고, 물리지 말아야 하겠다.
좀비의 흉측한 외관이 관객의 이목을 우선 끌지만, 결국 스토리가 머무는 곳은 아직 감염되지 않은 자들의 악전고투이다. 코로나19가 창궐한 이후, 이를 막기 위해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이 헌신적으로 나서고, 전 국민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것을 보았다. 좀비와 맞서 싸우는 영화 속 주인공들이 겹쳐 보이는 대목이다. 영화보다 더 처절하게 사투를 벌였다.
코로나19시대에 각광받는 좀비물은 육체의 질병과 함께 정신적 영역에서도 시사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격리와 사회적 거리가 실천되고 있는 현실세계만큼 사이버 공간에서도 큰 함의를 지니는 것. 예를 들어 누군가 악의적인 포스팅을 남기면, 또 다른 누군가가 이를 공유하거나 악한 댓글을 달아 유포한다. 그리하여 죽음의 기운이 빛의 속도로 확산된다. 특히나 혐오는 쉽고 빠르게 퍼져나간다. 육체의 병은 차라리 고치기 쉬우나 마음과 정신의 병듦은 치유가 어렵다는 것을 실감하게 만든다.
좀비물은 얼핏 사람과 괴물의 대결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람이 다 같은 사람이 아니고, 괴물도 다 같은 괴물이 아니었다. 주인공들은 괴물에 대항하며, 괴물보다 더 괴물스러운 사람들과도 대결해야 했다. 그리고 후자가 더 힘든 싸움이 된다는 것을 늘 보아왔다. <생활의 발견>(2002) 속 경수(김상경)의 대사처럼 "우리, 사람 되는 거 어렵지만 괴물은 되지 맙시다." 바이러스와 병균에 육신을 내어주지 말고, 악하고 사특한 것들에 마음을 내어주지 말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