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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를 꿈꾸다 Apr 14. 2021

사진을 잘 찍고 싶어요

[빛으로 그린 이야기] 좋은 사진을 찍는 사람들

카메라 옵스큐라의 원리는 고대에서부터 내려온 것으로 18세기에 이르러 예술가 사이에서 다양한 종류로 사용되었다. 현대적 의미의 사진은 19세기 초에 발명되었다. 사진은 1890년대에 잡지에 입성했고, 1915년에 이르러 신문에도 활용되었다. 화가들은 회화와 사진을 결합하며 예술 창작의 길을 열었다.


디지털카메라의 보급이 늘어나고, 핸드폰에 더 높은 사양의 카메라가 장착되면서, 사진을 찍고, 스스로 보정하고, 개인 sns에 올리는 일은 일상이 되었다. 사진에 대한 접근성이 쉬워졌다고 해서 사진을 잘 찍게 된 것은 아니다. 더 좋은 바디와 렌즈가 만들어지고, 사람들에게 보급되었지만, 사진에 대한 갈망을 더욱 커지기만 할 뿐이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인물들이 사진을 찍어왔다. 대다수의 사람에게 사진은 취미의 영역이고, 여가의 한 가지였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 사진은 역사의 기록이었고, 헌신적인 외침이었고, 또한 도움의 손길이었다. 좋은 사진이란 무엇일까? 사진을 잘 찍는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나의 사진에는 무엇이 있고, 또한 무엇이 없는가?



출처 : 넷플릭스 오리지널  <마우트하우센의 사진사>



무엇을 위한 사진인가? - <마우트하우센의 사진사>(2018)


7천 명 이상의 스페인 포로들이 마우트하우센 수용소에 들어간다. 프랑스 군인들과 함께 히틀러에 맞선 사람, 내전의 패잔병 등이 포함되었다. 프랑코 정권은 이들의 스페인 국적을 파기했고, 독일군은 이들을 마음껏 유린했다. 주인공 프란세스크도 수용소에 들어가지만, 사진 기술을 지니고 있어 다른 포로들보다는 안전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마우트하우센의 사진사>(2018)는 수용소에서 벌어지는 일을 기록하는 일을 받는 부서에 배치된 프란세스코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는 파울 리켄 아래서 일을 배운다. 파울과 프란세스코는 사진에 대한 다른 견해를 지니고 있다. 파울은 예술가에게서 영감을 받는다고 했고, 프란세스코는 현실을 반영한 사진을 좋아한다고 했다. 파울은 현실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보다는 보는 이의 관점을 중요시했다.


수용소에서는 사람들이 계속 죽어나갔다. 그들의 죽음을 기록하지만 진위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파울은 콘셉트 화보를 찍듯, 쇼를 하듯 사람과 상황을 조작하여 카메라에 담았다. 그는 주어진 임무에 충실했는지 모르겠지만, 사람이 사람에게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 만들었다. 사유도 없고, 영혼도 없는 이의 관성은 위험하다.


포로들의 사진을 찍고 인화하던 주인공은 나치의 만행을 세상에 알리겠다는 생각을 했다. 필름을 소각하라는 명령에도 주인공은 일부를 빼돌린다. 외부로 나갈 수 없음을 잘 알기에 동료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발각되면 위험하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동료들은 계획에 동참했다. 이들은 사진을 수용소 내부에 나눠 숨기기로 한다. 시간이 흘러 패전한 독일은 철수하고, 살아남은 포로들은 숨겨두었던 필름을 공개한다.


프란세스코가 수용소에 숨겨놓은 필름을 찾기 위해 가보니, 파울이 남아있었다. 그는 자신은 사진만 찍었을 뿐이라고 변명했다. 아무도 죽이지 않았으니 자신은 결백하다는 것이다. 자신이 한 일은 다만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고도 했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필름이 잘 있는지 궁금하게 여겼다. 사진에 대한 성실함은 전혀 미덕이 아니었다. 그에게 사진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출처 : 넷플릭스 오리지널 <빛으로 그린 이야기>



사진은 세상을 치유하는 언어가 되고 - <빛으로 그린 이야기>(2018)  


<빛으로 그린 이야기>는 3번의 시즌으로 진행되었다. ‘시즌1’은 주로 대자연에 관한 이야기였다. 물속을 중심으로 흑고래와 뉴기니 활화산 등을 다룬 수중사진작가를 시작으로 히말라야와 심해, 극지방의 모습을 다루고, 야생동물과 오지에 사는 부족들의 문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시즌2’에서도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케냐의 국립보호구역의 야생동물들, 상어 등 수중생물 등이 다뤄졌다.


그런 면에서 ‘시즌3’의 처음 두 에피소드는 조금 차별성이 느껴진다.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의 첫 번째 에피소드는 아동노동에 관한 것이었다. 방글라데시 다카의 빈민가 지역을 유니세프 친선대사인 올란도 블룸과 함께 방문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어린이들이 주인공이다. 철길에 사는 아이들이 폐플라스틱을 모아 팔았다. 이렇게 번 돈이 가난한 가정의 유일한 수입원이었다. 교육은 이 아이들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도 일하는 아이들이 주인공이다. 페리에서 무거운 짐을 옮기는 아이들, 공장에서 수작업으로 그릇을 만드는 아이들, 풍선 공장에서 일하는 아이들이 소개되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어린이에게 생계가 달려있었다. 이 아이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개선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사진작가 사이먼 리스터는 자신이 찍는 사진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그는 사진으로 자신이 보고, 알게 된 것을 포착하여 세상에 전했다. 사진을 통해 취약계층들은 자신의 상황을 말할 수 있게 되었고, 동등한 권리와 더 나은 생활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일 수 있게 되었다. 한 장의 사진은 큰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사진이 또 하나의 언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영화 <포토저널리스트>



그는 왜 그곳까지 가서 사진을 남겼을까? - <포토저널리스트>(2016)


1992년의 남아프리카를 떠도는 젊은 청년의 사명선언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그는 많이 보고, 많은 경험을 하고 싶어 했다. 모르는 것과 아는 것, 먼 곳과 가까운 곳을 탐험하고, 아이의 눈으로 상세하게 기록하고자 했다. 그는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만나 여러 기록들을 남기고, 사진을 찍었다.


댄과 친구들은 난민 구호 기금과 연계하여 아프리카를 가로지를 계획을 세웠다. 여정 중에 다양한 사람들과 야생동물을 만난다. 아름다운 자연이 보이고, 때로 파티도 등장한다, 청춘들의 사랑도 있다. 아프리카에서 사진을 업으로 한다면 상상해볼 수 있는 그러한 광경일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낭만적인 모습만 그리지는 않았다.


<포토저널리스트>(2016)는 댄 앨든은 21살의 어린 나이로 로이터 통신 기자가 되어 아프리카의 기아와 위기를 세상에 알렸다. 소말리아 내전에 휩쓸려 22살이라는 짧은 삶을 보내고 갔기에 그의 삶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의욕 충만했던 주인공이었기에 영화의 톤은 어둡지 않게 흘러갔다.


포토저널리스트에게도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이 있다. 구호를 하러 갔음에도 약탈을 당하기도 했다. 사람들의 진심도 의심스럽다. 그들의 치열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일을 중단하지는 못 한다. 모두의 염려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댄은 또다시 현장으로 돌아간다.


영화 속 포토저널리스트의 삶은 열악했다. 반군과 난민으로 둘러싸인 현장은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었다. 총격을 받고, 폭탄이 터지고, 체포될 위기를 겪는 건 일상이지만, 노고에 비하여 대우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포토저널리스트의 삶을 택한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댄과 같이 목숨을 걸고 진실을 좇은 포토저널리스트들이 소개되며 마무리되었다.



출처: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평범한 일상에서 예술 작품은 탄생되고 -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2017)


길 위에서, 정류장에서, 빵집에서도 알아보지 못 한 두 사람. 그러나 둘은 서로의 작품을 이미 경험했다. 남자는 여자의 영화를, 여자는 남성의 사진을 잘 알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를 만나 사진을 찍었고, 자신의 작업실로 초대했다. 33세의 남자와 88세의 여자는 함께 공동작업을 하기로 한다. 즉흥적인 모험이며, 함께 사진을 찍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2017)은 프랑스 누벨바그를 대표하는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와 젊은 사진작가 JR의 로드무비이다. 두 사람은 포토 트럭을 몰고 프랑스의 곳곳을 돌아다닌다. 즉석 사진 부스처럼 곧바로 커다란 사진이 나온다. 작은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의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프린트하여 마을의 벽을 채워나갔다. 동네 어귀가 예술작품이 되고, 훌륭한 갤러리로 변신한다.


이들이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은 특별한 섭외가 필요 없는 주변의 이웃이었다. 광산촌에 남은 주민, 항만에서 만난 노동자, 홀로 농사를 짓는 농부... 이들이 풀어놓은 각자마다의 스토리들은 누구와도 같지 않은 고유한 것이었고, 그 자체로 예술작품이 되었다. 영화는 두 사람이 찍는 사진과 함께,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의 중요성을 보여주었다. 이 대화를 통해 사진에 생명이 불어넣어졌다.


영화를 이끌어 가는 두 남녀 예술가는 많이 달랐다. 바르다는 즉흥적인 만남에서 영감을 얻었고, JR은 치밀한 계산과 구도 하에 작품을 만들어 간다. 서로 다름에도 세대의 장벽을 넘어 힘을 합쳐 작품이 창조되었다. 이들이 협업으로 만들어낸 예술은 평범함 속에 감춰진 특별함을 일깨우는 과정인 듯했다.


영화를 보며 사진이 주는 선물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하여 카메라에 담으면, 보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생성된다. 지극히 일상적인 순간과 풍경들도 예술이 될 수 있다. 좋은 사진이란 누군가의 느낌과 감성이 전달되어 새로운 생명력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것은 화려한 배경이 필요하지도 않고, 대단한 모델이나 피사체가 없어도 가능하다. 카메라의 성능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지금 손에 들고 있는 휴대폰의 카메라로도 충분히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출처: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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