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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한량 Jul 17. 2022

손님들 (#3)

#2 세 친구들

#3

어느 동네에나 있을법한 그저 그런 카페의 손님은 보편적인 사람들이 주 손님들이었다.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커플들이 있기도 했지만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친구들도 있었다. 이 삼총사들은 동네 친구인 것처럼 보였다. 나이는 곧 취업을 앞둔 나이었던 듯 매일 카페에서 공부를 했다. 개중에는 먼저 취업을 한 것 같아 보이는 친구도 있었고 제각기 다른 이야기를 써내려 가고 있었지만 그들의 마무리는 이곳 카페에서 쓰이고 있었다. 그들이 친구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조금 나중의 일이었고, 제일 먼저 눈길이 갔던 것은 어느 날부터 보였던 흰 피부에 긴 생머리를 한 청순하고도 수수한, 꾸미지 않아서 더 아름다운 한 여성이었다. 내가 어떤 흑심이 있어서 눈길이 간 건 아니었다. 그저 너무 아름다워서 일종의 경외감이 들 정도였기에 그녀에 대해서는 풍경을 보듯 넋을 놓고 볼 수밖에 없었다.


다른 한 친구는 취업을 이미 한 듯 보였다. 저녁 즈음이 되면 카페로 들어왔고, 표정은 몹시 지쳐 보였지만 이내 일행들을 보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녀는 짧은 펌을 하고 다소 주근깨가 나 있는 미국의 하이틴 영화에 나올법한 주인공의 절친 역할에 안성맞춤일듯한 당찬 사람이었다. '하이틴 소녀'인 그녀는 정장이 참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언젠가 정장을 입고 왔던 날이 있었는데 그날의 그녀가 유독 기억에 남아있었다. 이 세 친구들 중에서 유일하게 주문 이외로 나랑 대화를 했던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저 그런 카페의 저녁이 되고 내가 있는 시간 이후부터 이곳의 음악은 내가 담당하게 된다. 누가 특별히 시킨 일이 아니었음에도 나는 내가 있는 곳에서 그저 그런 음악만큼은 흘러나오지 않았으면 했기에. 매일매일 특별한 선곡을 하지는 않지만 그 곡들은 대게 나의 플레이리스트가 된다. 나의 플레이리스트에는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는데, 내가 유일하게 그저 그런 카페에서 자부심 있는 점이었다. 내가 트는 음악만큼은 그저 그런 음악이 아니라는 자부심. 그러한 자부심에 상응하기라도 하듯 아주 가끔씩, 솔직히 2년여간의 시간 동안 손에 꼽힐 만큼이지만 손님이 이 노래가 뭐냐고 물어 온 적이 있는데, 그중 한 명이 하이틴 소녀였다.


아무리 찾아도 알 수 없어서 당최 그 곡이 뭔지 알고 싶어 왔다던 그녀가 궁금해했던 노래는 당연히 찾을 수 없었을 수밖에, 정규 음원이 아니었다. 한 무명 아티스트의 믹스테이프이었는데 이 믹스테이프이라는 것을 설명하기가 꽤나 난감했던 게 기억이 난다. 무료 배포 음악이 어쩌고 저쩌고 사실 그녀는 그 정도까진 듣고 싶지 않았겠지만... 설명을 하다 보니 결론적으로 그녀가 이 음악을 들을 경로가 어려울 것 같아 혹시나 필요하시면 메일 주소를 알려달라 했다. 그녀는 그럼 괜찮다는 말과 자리로 돌아갔지만 난 너무 뿌듯했다. 쾌재를 부르며 카페에서 같이 일하던 모든 이에게 자랑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녀는 그저 그런 카페에서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일지 모른다. 항상 외면받던 나의 선곡을 처음으로 관심 가져줬던 사람.


 다른 한 친구는 특별히 기억에 남지는 않았다. 다른 두 친구가 너무 강렬해서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친구들이라 칭한 것은 그들의 익숙함 들이였다. 친구들을 만나도 너무 반갑다고 손사래를 치지도 호들갑 떨지도 않았다. 그저 모든 게 익숙한 일상 속의 한 장면이라는 듯이 편안히 대하는 태도가 그들에게는 묻어있었다. 억지로 하지 않으려 하는 태생적인 자연스러움. 의도적이지 않은 자연 그 자체 가벼운 눈인사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그런 사이. 그들은 하루의 마무리를 언제나 함께했다. 동네 친구들과 하루의 마무리를 같이 맞이하는 것. 지방 출신인 나는 그 장면 자체가 낭만이었다. 내 친구들과 일상의 마지막을 함께 했는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덕분에 잠시 아주 잠시 원래 서울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을 해봤다. 이 모든 하루의 끝에 그들이 기다리고 있다면 꽤나 나쁘지 않을 거란 생각을 했다. 그녀들은 원하는 곳에 잘 취업했을까. 꽤나 시간이 지나서 모두가 각자의 일로 바빠졌을 텐데 지금도 그저 그런 카페에서 그날의 상처를 서로 치유해줄까. 요즘 그곳에서 틀어주는 노래들은 어떤가요 하이틴 소녀. 지금 제 플레이리스트에는 당신이 좋아할 만한 곡이 3곡쯤은 있어 보이는데요, 하이틴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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