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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부디자이너 Feb 06. 2022

그 일을 직접 해보는 것 밖에는 답이 없다.

석사 졸업 대신 네 번의 이직 (2/4)

대기업 디자인실에서 영국 석사 유학, 다시 소규모 에이전시로.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로, 계획했던 석사 과정은 중단되었고 그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했다. 코로나 시대에 유학생으로 살아가기는,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으며 런던의 방세를 감내해야 하는, 손해가 너무 커져 버린 선택지였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고향인 제주에서 자가격리를 하며, 가족들을 보고 숨을 돌리고, 온라인으로 한 달간 런던으로부터의 원격 수업을 마지막으로 1년 과정을 마무리했다. 그와 동시에 나는 한국에서 경력을 잠깐 쌓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런던에는 언제 다시 갈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제주에서의 자가 격리, 언제 가도 늘 그 자리에서 위로해주는 듯한 제주의 풍경들


운이 좋게도 때마침 첫 직장의 같은 팀 후배가 이전에 내가 동경하던 선배가 새로 차리는 에이전시에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공간 디자인 업계에서 꽤나 유명한 작업들을 많이 하신 선배였고, 취업을 준비할 당시 직접 찾아가서 차도 한 잔 했던 터라 연락을 드려봐도 좋을 것 같았다. 새로 생긴 에이전시이기에 내가 충분히 어필한다면 휴학기간 동안 잠깐이라도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선배에게 연락을 드리고, 간단한 면접 겸 식사를 하고 나서, 나 포함해 4명 규모의 공간 디자인 에이전시에 휴학기간 동안 잠시 일을 해보기로 했다. 여태껏 동경해왔던 선배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다니, 설렘을 감출 수 없었다.


입사 전의 나는 내가 원하는 일을 하게 된다면, 밤을 새우던, 오랫동안 일을 하던 지루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연봉도 크게 중요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동경해오던 일만 할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하루하루가 설렐 까만을 생각했다.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공간, 그것을 만드는 일, 그리고 나은 결과물을 위해 하루 종일 생각하고 옆의 동료와 힘을 모아 작업을 완성시키며 밤을 새우는 시간들이 과연 그리도 괴로운 시간이 될까? 4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금세 허물어질지 모르는 위험한 생각을 지니고 나는 소규모 에이전시로 향했다.


그 당시 에이전시에 입사하기 전날 나와 늘 진로 고민을 나누던 친한 언니는 내게 말했다.

"그 설레는 감정은 너무 소중하기에 잘 기억해두었으면 좋겠다. 일의 슬픔에 휩쓸려 떠내려 보내지 않고."


그렇게 설레는 입사 첫날, 감각적인 사무실 인테리어와 한남동이라는 위치는 나를 더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다. 동경하던 선배는 따뜻하면서도 단단하신 분 같았고 배울 점이 참 많아 보였다. 같이 일하는 직원들도 감각적이고 자신의 일에 열정적인 사람들 같았다. 이런 필드에 드디어 발을 담그게 되다니..! 앞으로 밤을 며칠을 새더라도 지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가끔 사무실을 벗어나 한남동 주변 카페에서 회의를 하기도 했다.


아직도 입사 첫날 퇴근하면서 했던 다짐은 잊히지 않는다. 이곳에 열정을 다해봐야지, 최선을 다해봐야지 같은 치기 어린 다짐들을 혼자 되뇌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고, 첫 디자인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그 에이전시에게는 중요하면서도 잘한다면 앞으로도 많은 일들을 더 따올 수 있을만한 프로젝트였다. 대표인 선배는 물론이고 소수의 직원들이 의기투합하여 프로젝트에 임했다.


처우

사실 나에게도 에이전시는 처음이었고, 대표인 선배도 후배를 뽑아 고용한 적은 많지 않은 일이었기에 여러 채용에서의 과정들, 처우 협상, 인사 면담과 같은 과정들이 순탄치가 않았다.


내가 최소로 생각하는 일에 대한 보상과 에이전시에서 생각하는 보상의 격차가 꽤나 컸다. 대기업에 있는 감사팀과 인사팀의 존재는, 마치 전쟁터에 나갔을 때 갑옷과 같은 존재가 되어주는 것이었다.


환경 : 인하우스 vs 에이전시

인하우스 기업에서 일하는 것과 에이전시에서 일하는 것은 많이 달랐다. 인하우스는 기업이 어느 정도 정한 디자인 가이드라인이 있어서, 그 안에서 디자인을 하면 되었다. 내부에서도 타임라인이 있기는 했지만, 에이전시처럼 외부의 갑이 멋대로 스케줄을 조정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에이전시는 일을 따와야 회사 자체가 생존할 수 있는 구조이기에, 경쟁이 치열하며 퀄리티에 대한 기준이 무한대로 높아질 수밖에 없다. 무한대로 높아진 기준에 따라 당연히 디자이너의 퇴근 시간도 무한대로 미루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적성 : 디자인하다 = 기획하다 vs 모델링하다?

또 에이전시에서 디자인 프로젝트를 하면서 나는 내가 어떤 곳에 강점이 있는지를 깨달았다. 허공에서 떠다니는 아이디어들을 모으는 일, 리서치와 기획 단의 일들, 아이디어들을 조합해 논리적 흐름으로 만들어내는 일들은 내가 좋아하고, 잘 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공간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가장 필요한 일, '특정 공간의 디자인을 여러 가지 시안으로 빠른 시간 내에 만들어 내는 일', '긴 고민 없이 다양한 형태로, 세련되고 감각 있게 Alt 1, Alt 2의 공간 디자인으로 뽑아내는 일' 들에는 시간이 좀 걸렸다. 그리고 내가 그런 일들을 조금은 힘들어했다.


그 일을 직접 해보는 것 밖에는 답이 없다.
결국 문제의 원인은 나,

내가 어떤 곳에 강점과 약점이 있는지 알게 되었다는 이성적인 판단만 하면 되는데, 자꾸 나는 내가 약점이 있다는 사실에 힘들어했다. 내가 그토록 그리고 바라던 일과 내가 맞지 않다는 사실, 내가 되고 싶은 이상향에 내가 맞지 않다는 사실에 절망감도 느끼고 화가 나기도 했다. 그래서 더더욱 나 자신을 자책하며 야근을 했고, 쉽게 넘길 수 있는 일에 더 상처받기도 했던 것 같다.


당시의 나는 일에 나 자신을 너무 투영하고 있었다. 동경하던 선배의 존재도 너무 이상화시키고 있었다. 나는 당시, 회사 대표이자 선배의 안 좋은 피드백 한 마디도 참을 수가 없었다. 그 당시에 필요했었을 피드백 한 마디 한 마디가 내게 큰 상처가 되었다. 상처를 받으며 힘들게 일하는 나를 지켜보는 선배도 얼마나 답답하고 가슴이 아팠을까?


과거의 나는 얼마나 그 '일'을 직접 해보지 않고 바라고 원하기만 했는가? 현실적인 부분은 일절 고려하지 않고, 그 일만 할 수 있다면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가? 해보지도 않고 잘할 거라고 생각한 나 자신, “일”이라는 돈을 벌어야 하는 영역에 “좋아함”이라는 개인적인 영역을 너무 많이 투영하고 싶어 했던 이기적인 욕심. 일은 일일 뿐이라는 명확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했던 오만함.


나 자신에게 진작 물어봤어야 했다. 그 일을 일용계약직으로 계약할 만큼이나 좋아하는가? 매일 새벽 2시까지 할 만큼 좋아하는가? 또, 아무리 밤을 새우며 내 모든 노력을 쏟아부어도 성과가 안 나온다면, 그때도 좋아할 수 있나? 일은 과연 나 자신인가?


이 경험으로 나는 여러 가지를 얻을 수 있었다. 그중에서 기억하기 위해 몇 가지만 요약해보고 싶다.


첫째, 동경은 칼이 될 수 있다.

'좋아 보이는 것', '끌리는 것'만으로 직업이, 일이 될 수 없다. 현실적인 부분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멋지고 감각 있는 작업물을 만들어낸 건축가, 모두가 손뼉 치는 기획서를 발표하는 기획자 등 반짝이고 빛나는 이상적인 모습 만을 봐서는 안된다. 그 직업에 진짜 발을 들여놓았을 때 그 일상을 채우는 것은 외부적인 이미지가 아닌, 일의 현실 그 자체다.

화려한 무대 위에 서기 위해 댄서들은 매일 수십 시간을 땀 흘려 가며 한 동작만을 반복해야 할 것이다. 하나의 건축물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건축가는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시간도 없이 새벽 내내 컴퓨터 앞을 지켜야 할 수도, 먼지 나는 현장 속을 뛰어다니다가 건강이 상할 수도 있다.   


둘째, 그 일을 직접 해보는 것 밖에는 답이 없다.

에이전시에서 새벽 3시에 퇴근하는 퇴근길의 택시 아저씨와 나눈 대화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우연치 않게도 택시 아저씨도 젊은 시절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을 하셨다고 했다. 아저씨의 따님도 디자인을 하고 싶어 하는데 자신은 말릴 수가 없다고 했다. 손에 쥐어줘야 나에게 맞는지 아닌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지 판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학을 선택한 2019년부터 3년 간 이곳저곳에 나를 담가 보면서 정말 많은 것들을 느끼고 나를 더 잘 알게 되었다. 새로운 선택지에서도 당연히 단점들이 존재하겠지만, 여태까지 겪었던 단점들의 반복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맞는지 안 맞는지는 직접 해봐야 안다. 잡플래닛도, 현직자의 인터뷰도, 신문의 기사들도 물론 많은 도움이 되겠지만 절대 확답이 되지 못한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가장 약한 사람인지, 내가 견딜 수 없는 환경은 무엇인지? 하지만 이런 정도의 보상이 주어진다면 인내할 수 있는 사람인지는 직접 부딪혀 봐야 알 수 있다.


이 모든 과정들은 내게 자양분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유학을 떠날 때 용기를 냈던 한 발자국이 나를 더 잘 알게 되는 여정의 시작이 되었던 것처럼, 이 경험은 내가 앞으로 진로를 선택할 때의 방향을 더 확실하게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직이 되었든 새로운 출발이 되었든, 아직 답을 모르는, 내게는 너무 중요한 문제들을 마주하겠다고 선택한 모두에게 용기를 전한다.


이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책의 한 구절로 마무리하고 싶다.


어쩌면 '좋아하는 일'이란 물 위에 떠 있는 부표 같은 것인지 모른다. 직업이나 직장의 이름으로 표현되는 부표. 그 부표 아래에 버티고 있는 일상이, 실제의 시간을 채우는 관계와 활동이 어떤 모습인지 우리는 결코 미리 알지 못한다. 그것은 도달하기 전에 알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목표에 가닿았을 때, 더 이상 옮겨갈 다른 곳이 없을 때 생생한 현실의 감각으로 다가오는 것은 부표가 아니라 그 아래의 일상이다. 실제의 삶을 규정하는 것은 닿기 전엔 완전히 미지의 것이었던 일상이다. 그제야 우리는 알게 된다. 부표는 그곳에 머무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곳을 바라보는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제현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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