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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부디자이너 Dec 15. 2020

코로나 시대의 유학을 후회하냐고 물으신다면.

영국 세인트마틴 디자인 석사 과정 일기 #1


2019년 9월 13일, 런던 도착하자마자 보았던 파란색 하늘, 빨간 버스들!


 나는 작년, 그러니까 2019년 9월 13일, 영국 세인트마틴의 Narrative Environments 라는 석사 과정을 공부하기 위해 런던에 도착했다. 당시에는 당연히 코로나는 없었고 예상도 할 수 없을 때였다. 나는 내년의 나를 상상하지도 못한 채 서울에서 짐을 한 가득 이고 런던 거리 한복판에 도착했다. 그제서야 유학을 온 실감이 났던 기억이 난다.


'아직 집도 못구했는데 어쩌지....?'


 낯선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집주인들과의 미팅을 하고 살 집들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가족은 물론이고, 지인도 없는 낯선 도시에 도착해, 처음 보는 에어비앤비 주인의 옆방에서 잠을 자려고 하니 마음이 너무 싱숭생숭했다. 도착하자마자 잠을 열두시간 넘게 내리 잤다. 잠을 자면서 '이렇게 낯선 곳에서 어쩌려고 그래? 외롭지는 않을까?' 라는 걱정들을 했던 것 같다.


템스 강 건너편에서 바라 본 London eye, 걱정들을 날려주는 듯한 런던의 9월 날씨

다행히도 내가 런던에 도착해 있을 당시, 출장 및 여행으로 런던을 찾은 한국의 학교 동기와 친구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을 만나 밥도 먹고, 같이 시내를 돌아다니며 관광객처럼 초반의 런던을 즐겼다.

가끔은 혼자 집을 보러 돌아다니며 '어쩌다 이 먼 곳까지 와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게, 내가 어쩌다 영국까지 오게 되었을까?


영국 석사를 오게 된 이유


이야기는 3년 전으로 되돌아 간다. 나는 한국 대학에서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한 가구회사의 쇼룸 전시 디자이너로 일을 3년 반 정도 하고 있었다. 늘 마음 속에는 두루뭉술하게 '공간 기획'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했다. 공간디자인 에이전시로의 이직도 준비했고, 다른 기업의 공간 기획 직군도 지원을 했지만 결과는 그렇게 좋지 않았다. 학교 동기들의 이야기도 듣고 사회에서 이런 저런 경험을 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공간 디자인 에이전시의 환경은 그리 좋아보이지 않았다. 새벽 4,5시까지 일하는 것이 과연 내가 원하는 미래일까?


그렇게 한국 디자인 업계에 대한 도피일지도 모르는 디자인 유학 준비가 시작되었다. 디자인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해외에서 취업을 해보고 싶었다. 내가 학교에서 배웠던 진정한 '디자인'업무를 하고 싶었다. 그림을 그려내고 예쁘게 만들어내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해 생각하고 기획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외를 가서 경험을 쌓고 돌아오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고, 그 당시의 나는 내 그릇을 넓히고 싶었고 성장하고 싶은 갈증이 컸다.


 무언가 다를 것 같다는 환상도 있었음을 지금은 인정한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디자인과는 전혀 상관 없는 정산, 발주 등의 업무들로 철야를 하며 찌들어있었고, 내가 원하는 성장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고 싶었다. 그렇게 퇴근 이후, 주말의 나의 시간들은 유학을 알아보기 위한 시간들로 채워졌다. 퇴근하면 영어학원에 갔고, 주말에는 유학을 알아보느라 교수님을 만나거나 유학을 준비하는 친구들을 만나 같이 이야기를 나눴다.


일요일 카페에서의 유학 준비 학교 리스트, 유학 준비 과정들은 필요 요청이 있을 시 브런치에 공유하고 싶다 :)


미국, 영국, 유럽 각지의 학교들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내가 여태까지 모은 돈들을 추려보기 시작했다. 내가 모은 돈으로는 미국 학교는 어림도 없었다. 영국은 그래도 예산 상 1년 정도는 가능할 것 같기도 했다. 유학을 이미 떠난 학교 선배들, 동기들에게도 연락을 하고 이런 저런 질문들을 했다. 학교 교수님께도 찾아가서 고민을 털어놓고 추천서의 사인을 부탁드리기 시작했다.


예산을 모으고, 영어학원을 다니고,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설명글을 다시 영어로 번역하고... 회사 생활과 유학 준비를 함께 하는 것은 생각보다 너무 고되었다. 솔직히 중간에 그만두고 싶었다. 주말에는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링겔을 맞아가며 영어 공부를 했다. 그래도 같이 유학을 준비하는 친구, 선배들이 곁에 있었기에 꿋꿋이 진행을 해나갔다.


회사 퇴근 후 자주 가서 새벽까지 작업했던 망원의 종이다방 카페 (지금은 사라진)


뭐가 그렇게 간절했을까? 솔직히 생각해보면, 회사가 싫고 한국이 싫어서 도피하는 이유도 일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더 폭넓게 원하는 방향으로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컸다.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자꾸 철야를 하고, 알 수 없는 방향으로 가느니 이렇게라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힘든 것이 더 낫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당시 스물아홉이었다. 이대로 회사 생활을 더 하는 나와 유학이라도 가서 해외 경험을 쌓은 나를 비교해보았다. 무언가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또 다른 미래를 그려보고 싶었다. 유학을 가서 후회하더라도 늦기 전에 20대의 마지막의 한 순간이라도 내가 원하는 경험으로 채우고 싶었다. 나는 내가 나중에 내 안에 이야기가 많은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원했다.


그렇게 나는 2019년 9월 런던 편도행 티켓을 끊고 낯선 도시에 이방인으로 도착했다.



유학을 후회하냐고 물으신다면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유학을 후회한다고 묻는다면, 그럼에도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만 발휘할 수 있는 용기와 깡이 있음을 믿는다. 그 용기와 깡들은 저금해놓고 절대 나중에 쓸 수 없고, 그 순간 사용해야 100%, 아니 그 이상을 제대로 누릴 수 있다. 나는 그 당시, 스물 아홉에만 가능한 용기와 깡으로 영국 석사 과정을 이수하기로 마음 먹고 런던행 편도 티켓을 구매한 것이다. 


하지만 당연히 몇 가지 아쉬운 점들은 있다. 지금 다시 되돌아보면, 첫번째로 구체적으로 유학으로 인해 원하는 바를 작성해두고, 그를 한국에서 해결할 수 없는지 좀 더 철저하게 파고들어 체크해보았을 것이다. 물론 나는 해외 취업을 희망해 유학을 선택한 것이었지만, 해외 취업을 통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해외 취업의 장단점은 무엇인지, 한국에서 바로 런던 취업 준비를 하는 방법 등등 다양한 경로들을 알아보았을 것 같다.


두번째로는, 어디서든 돈을 벌 수 있을만한 나만의 컨텐츠를 조금은 개발하고 해외로 떠났을 것 같다. 유튜브도 좋고 글도 좋으니, 내가 어느 정도의 수입을 벌 수 있는 무기를 가지고 해외에 나가는 것은 매우 든든한 에어백이 되어 주었을 것 같다. 런던에서 살아가는 것은 여행이 아닌 생활이었다. 영국 물가는 어마어마 했고, 친구들과 어울리려면 펍, 식당등을 자주 가야했다. 나는 줄어드는 내 잔고를 확인하며 친구들과 사귀고, 홀로 빨래하고 밥먹고 집값을 내며 생활하는 동시에, 어떻게 하면 런던에서 부수입을 만들 수 있을지까지 고민해야 했다.


세번째로는 영어 성적을 받은 이후의 영어 공부를 더 열심히 했을 것 같다. 당연히 아이엘츠 최저 점수는 훨씬 넘겨서 학교에 입학하였지만, 시험과 실생활은 너무나도 달랐다. 물론 그 당시로 돌아갔어도 맨땅에 헤딩하는 방식으로 영어의 산을 넘었겠지만, 지금 다시 유학 준비를 하는 입장이라면 나는 오히려 내 깊은 생각을 영어로 쓰고 바로 말로 해보는 연습들을, 철저히 원어민에 가까운 훈련들을 스스로 했을 것 같다. 학부 과정이 아닌 석사 과정이었기에 나는 산업 혁명, 도시화, 역사적 사건 등 철학적인 주제들을 영어로 바로 표현해야 했고 글로도 써야 했다. 이런 훈련들이 비교적 편안한 한국에서 미리 이루어졌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아쉬운 점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유학을 후회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2019년에 유학을 시작할 수 있었던 그 당시의 용기와 깡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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