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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훼 Jun 19. 2024

마음을 진정시키는 차

올해 첫 아샷추를 탔다.

아침에 낮 동안 최고기온이 33도 이상으로 온열질환 발생 가능성이 높으니 야외활동을 자제하고 휴식을 취하라는 안전안내문자를 받고는 양산까지 들고 나섰건만 덥다 못해 뜨거운 날씨였다.

상담실에 도착하니 등으로 땀이 흐른다. 더위 역치가 상당히 높은 내가 땀이 나면 더운게 확실하다.

에어컨을 파워냉방으로 켜두고 청소기를 돌리고 먼지를 닦고 테이블을 정리하다가, 홀린듯이 커피를 내려 아이스티 두봉지를 탔다. 차가운 물과 얼음을 가득 부어 저은 후 한모금 하니 더위가 쑥 가신다.

쌉쌀한 커피맛이 두봉지나 털어넣은 설탕맛의 죄책감을 덜어주는 것 같다. 


출근하면 늘 돌아가는 루틴 중 하나가 정수기와 다과테이블을 살피는 일이다.

정수기를 깨끗이 닦고, 커피머신의 물통을 씻어 새 물로 채워둔다.

전날 아이가 코코아를 타먹었다면 바닥이나 정수기 물받이에 코코아가루가 떨어져 있기도 하고 사탕그릇이 바닥나 있기도 하니 깨끗이 닦고 사탕들을 채워야 한다. 오늘 예약한 내담자를 떠올리며 차를 권하면 보통 뭘 달라고 했었는지 생각하기도 하고, 새로 사둔 티백차가 그대로면 인기가 없는 것 같아 새로운 차로 바꿔야 하나 고민하기도 한다.





날이 아무리 더워져도 늘 떨어지지 않도록 신경써서 채워두는 건 허브티다.

뚜껑이 있는 유리그릇에 "마음을 진정시키는 차입니다."라고 라벨목걸이를 걸어두었는데, 페퍼민트, 라벤더, 루이보스, 캐모마일을 섞은 허브이고 향이 은은하다.


처음 이 차를 준비하게 되었던 계기는 어느 내담자 때문이었다.

불안이 높아져 고민인 분이었는데 어느날 감정이 요동치는 일이 있었는지 상담실에 들어오자마자 한껏 상기된 표정이었고, "차 한 잔 드릴까요?"라고 권하자 "네! 진정되는 걸로! 진정시킬 수 있는 차로 주세요."라고 다급하게 말했다. 그때 다과테이블에는 그냥 대중적인 믹스커피와 녹차와 루이보스, 코코아랑 율무차 등이 있었던 것 같다. 내딴엔 맛있는 커피를 드리고 싶다고 캡슐머신을 가져다 놓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생각지 못하게 마음을 진정시키는 차를 달라니. 적지않게 당황했던 그때가 잊혀지지 않는다.


그러게 말이다. 마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우울하고 불안한 마음을 돌보는 공간인데 마음을 진정시키는 차가 있으면 참 좋을텐데 말이다. 나는 왜 그생각을 못했냐는 말이다.


그 다음날 아로마테라피도 좀 찾아보고, 진정효과가 있는 허브도 찾아보고, 이 차는 좀 예쁜 박스에 넣고 싶어서 유리상자도 찾아보고 그랬더랬다. 다기에 천천히 우려 대접해드리면 제일 좋겠지만 아쉬운대로 티백차를 준비해 마음을 담아 글을 쓰고 담아두었다.


그후로 상담오는 날 긴장되고 떨리는 마음이 드는 분들은 진정되는 차를 달라고 요청하신다. 조심스레 "진정 좀...시킬 수 있게..."라고 말하면 이 차를 드릴 수 있어 반가운 마음까지 들 정도이다. 어떤 내담자는 일이 있어 상담간격이 길어졌던 어느날 비슷한 허브향을 맡으니 상담공간이 떠올랐다고 말해주었는데 그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불안하고 긴장되는 떨렸던 마음을 녹이는 건 따뜻한 차 한잔과 함께 내 마음을 알아주는 대화를 나누어서 일 것이다. 있는그대로 내가 느끼는 감정을 "그럴 수 있다."라고 수용받는 대화, 때로는 감당하기 두려워 피하거나 억눌어두었던 감정을 알아차리는 대화, 그럴 수밖에 없었던 내 마음을 위로해주는 대화가 이루어지는 곳이 심리상담이다. 좋은 기억으로 남은 심리상담이 그날의 허브향기와 함께 기억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그나저나 차 이야기를 쓰려니 묻어두었던 내 꿈들이 생각났다.

하고 싶은게 참 많은 나였는데 전통 찻집을 차리겠다는 꿈도 꿨었다는 걸 글쓰다가 기억해 냈다.

내가 만들고 싶었던 공간은 종이컵에 티백차와 커피머신이 있는 곳이 아니라, 천천히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리며 대화를 나누거나 따뜻하게 다관을 데워 찻잔에 차를 내어주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심리상담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는 내 바람을 잊지 않기 위해 또 잘 적어둬야겠다.

이왕이면 한옥에서..?

하아. 하고 싶은게 너무 많아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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