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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교중 Jun 05. 2021

꽈배기를 사 온 아내가 자랑스러웠다


말레이시아에서 온 지 얼마 안 된 아내가 에어프라이어로 감자튀김을 만들다 문득 칠리소스랑 함께 먹고 싶다며 마트에서 장을 봐오겠다 했다. 같이 자주 장으로 보러 다녔던 마트이고 혼자 장을 보러 몇 번 나간 적도 몇 번 있기에 나는 잘 다녀오라며 아내를 배웅했다. 한 15분 정도가 흘렀을까? 설거지를 막 마쳤을 무렵 아내가 밖에서 들어왔다. 손에는 웬 종이봉투 하나가 들려 있었다.


내가 봉투의 정체를 묻자 아내는 '도넛'이라고 말했다. 주변에 도넛을 파는 가게가 없어 어리둥절해하던 내가 봉투 안을 들여다보자 거기엔 설탕가루가 입혀진 갓 튀긴 꽈배기가 들어 있었다. 내가 먹을 것 까지 넉넉하게 8개를 사왔다.


한국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아내가 어떻게 꽈배기를 사왔을까 궁금하여 물어보니, 짧은 영어와 바디랭귀지를 동원한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2개에 4,000원이라는 줄 알고 놀랐으나, 알고 보니 4개에 2,000원이어서 8개를 사왔다는 말도 했다. 아내는 자신이 꽈배기를 사온 이야기를 신이 나서 내게 이야기해줬다. 나는 그런 아내의 작은 무용담이 그토록 대견할 수 없었다.


사실 여행지가 아니고서 다른 나라에서 물건을 사는 일은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돈이 걸려 있는 일이기도 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두려움도 크기 때문이다. 아내는 그 모든 두려움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8개의 꽈배기를 성공적으로 구매해 안전하게 집까지 모셔왔다. 그것도 정말 기초적인 수준의 한국어를 동원해서 말이다.


나도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를 미국에서 보냈기에 낯선 가게에서 낯선 언어로 물건을 구매하는 일이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곳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나는 '알버슨'이라는 커다란 마트의 생선 코너에서 연어를 구입했었다. 한국에 있을 적 외식을 하면 늘 우리 가족은 '시즐러'라는 패밀리 레스토랑을 가곤 했는데 그곳에서 늘 먹던 메뉴가 연어 스테이크였던 터라,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을 느끼고자 연어를 꼭 먹고 싶었다.


애석하게도 꼬마인 내게 가판대는 너무 높았고, 영어도 무서웠다. 함께 장을 보러 간 어머니도 다른 곳에 계셨다. 머뭇거리던 나는 마침내 용기 내어 'Excuse me(실례합니다)'를 외쳤다. 얼굴도 기억이 안 나는 흰색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나를 바라봤고, 나는 작은 연어 한 덩이를 가리키며 'This(이거요)'를 외쳤다. 남자는 그 덩어리를 가리키며 이게 맞는지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곧 그 덩이를 꺼내 갈색 종이 포일에 포장해주었다. 그날 저녁, 내 접시에는 내가 주문한 연어 한 덩이가 올라왔고, 식사 시간 내내 내가 연어를 사기까지의 무용담이 이어졌다. 부모님은 그런 나를 그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나는 아내의 자랑스러운 행동에 감탄했고, 우리는 함께 아직은 뜨거운 꽈배기를 설탕이 떨어지지 않도록 호호 불어가며 입에 넣었다. 언젠가 그런 작은 모험들이 쌓여 무언가를 구매하는 행위 자체가 일상적인 일 그 이상도 아니게 될 테지만, 나는 지금의 아내가 그 누구보다 대견하다.


부디 그 작은 모험들이 쌓이고 쌓여 언젠간 버스와 지하철도 혼자 힘으로 타고 여행도 혼자서 다녀올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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