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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교중 Jun 17. 2021

생일 징크스



한 해는 모든 날짜가 월과 일이 구분되어 정해져 있다. 윤년을 제외하곤 모든 해가 365일로 같은 날짜 공식을 따르기에, 작년에 보냈던 동일한 월과 일을 올해에도 보내게 된다. 이 규칙은 내가 태어난 해의 날짜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평생을 '생일'이라는 이름으로 따라다닌다. 내게 그 날짜는 양력 6월 10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물과 축하라는 보상이 따라오는 이 날을 기다려 마지않지만, 이상하게 내겐 이 날이 징크스와 같은 날이다. 고등학교 시절 심하게 우울증이 와 고생을 했는데, 생일 하루 동안 우울 증세가 급격하게 심해졌던 뒤로부터 그러는 듯하다. 무언가 특별하고 행복해야 할 것 같은 날인데도 마음속 우울함은 떠나지 않으니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생일에 대한 나의 요상한 징크스를 촉발한 것 같다.


그 뒤에도 사실 생일에 대한 좋은 기억보다는 안 좋은 기억이 많다.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던 시절 편도염에 걸려 열이 39도가 넘어가는데도, 억지로 목소리를 내며 수업을 했던 기억서부터, 생일선물과 함께 이제는 행복하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 연인과의 기억, 입기를 싫어하는 폴로티를 다른 연인으로부터 선물 받아 데이트 때 억지로 입고 나갔던 기억들이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각종 SNS에서 생일을 숨기고 괴한에게 쫓기는 공포영화 속 주인공처럼 그저 무사히 아무 일 없이 이 날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이런 내 생일 징크스를 트라우마 수준으로 바꿔준 고마운 곳이 있었으니, 바로 회사였다. 생일 10일 전부터 인트라넷 하단의 생일자 명단에 내 사진과 생일이 떠 있었다. 생일에는 무려 이름과 날짜가 주황색 볼드 처리까지 되어 있었다. 메신저 창과 카카오톡에는 축하 메시지와 마시지도 않는 스타벅스 쿠폰으로 가득한 선물이 흘러들어왔다.


피를 토하며 쓰러질 것 같은 순간은 누군가 케이크를 사 와 다 함께 노래를 불러주며 촛불 연소식을 거행할 때였다. 최대한 놀랍고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사람들이 들이대는 카메라에 환한 미소를 지어야 하는 이 순간의 기분은 뇌가 산소에 과포화되어 온 몸에 코르티솔과 아드레날린을 쥐어짜는 듯했다. 이 짓을 매년 6월 10일 3년 간 반복하자 앞으로는 생일이 오기 전 인트라넷에 생일 정보를 바꿔놔야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정말 다행히 나는 4월 16일 자로 회사를 떠났다.


그런데 이번 생일은 뭔가 달랐다. 1년 4개월 동안 생이별을 했던 여자 친구가 아내가 되어 내 곁에 있어줬고, 내가 정말 갖고 싶었던 선물을 받았다. 생일 전 날에는 부모님이 신혼집을 방문하셔서 손수 만드신 월남쌈을 나눠먹고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를 둘러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생일 당일에는 아내와 함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배가 터지도록 입이 즐거운 음식을 먹고 또 먹었다. 고등학교 시절의 사건 이후로 처음 겪는 '즐거운' 생일이었다.


물론 징크스에서 완전히 해방된 건 아니다. 생일 며칠 전부터 왠지 모를 불안감에 모든 일에 집중이 안 됐다. 생일날 아침에는 신경안정제를 먹어야 할 정도로 불안에 떨었다. 아내는 이런 나를 이해해주었다. 오늘은 아무것도 없는 무사한 날을 보내자며 나를 달래줬고, 내 뇌를 다시금 과산소 상태로 만들만한 그 어떠한 서프라이즈도 준비하지 않아 주었다. 우리는 지극히 평범한 하루에 특별한 저녁식사를 더했을 뿐이었다. 그날 밤 나는 여느 평범한 날과 다를 바 없는 기분으로 잠이 들었다.


나는 앞으로 남은 모든 생일이 꼭 올해만 같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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