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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교중 Jun 18. 2021

새로운 가족, 외눈박이 고양이 '윙커'


내겐 '영원'이라는 이름의 천사 같은 2살 베기 고양이가 있었다. 녀석은 전형적인 개냥이로 집에 오면 반겨주고 핥아주고 안기고 고롱거렸다. 심지어 '물어와'까지 할 줄 알았으니 나는 반쯤은 강아지를 다루듯 영원이를 예뻐했다.


그러던 지난 1월, 영원이를 잃어버렸다. 품에 안고 동물병원에 가던 길에 지나가는 오토바이 소리에 놀라 뛰쳐나간 이후 종적을 감춰버린 것이다. 고양이를 이동시킬 때는 무조건 이동장을 이용해야 하며, 고양이를 안고 가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고, 더 고양이를 공부하지 않았던 스스로를 자책했다.


그날 이후, 나는 밤낮,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영원이를 찾아다녔다. 전단지를 곳곳에 붙이고 행여라도 누군가의 제보가 들어올까 잠시도 핸드폰을 놓지 않았다. 절박한 심정으로 고양이 탐정까지 고용하여봤으나, 세 차례의 시도에도 영원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교통사고를 당해 왼팔이 부러져 수술을 받았다. 팔에는 15cm가량의 칼자국과 피를 빼내기 위해 뚫었던 구멍 자국 하나가 생겼다.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평소라면 견딜 만큼은 되었을 회사생활도 결국엔 종료해야 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었다.


4월 중순, 퇴사를 하고 아내와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기 시작하고, 몸과 마음이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하자 나는 다시 영원이를 찾아 나섰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와 대화를 하다가 아내가 문득 이런 말을 했다.


"자기는 때론 놓아줄 줄 알아야 해. 회사에서 당했던 일들도, 사고를 당한 일도, 영원이를 잃어버린 일도."


그 말에 나는 눈물이 나기 시작해 한참을 울다가 겨우 아내 품에 안겨 잠을 잤다.


며칠 후, 아내는 새로운 고양이를 보호소에서 데려오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길거리에서 엄마를 잃고 죽어가던 영원이를 살렸던 것처럼, 그런 처지의 고양이를 데려와 돌봐주는 게 영원이에게 사과하는 길이지 않겠냐고 했다. 내가 생각했을 때도 아내의 말은 맞았다. 그래서 우리는 수원시 동물보호소 내 공고를 함께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몸을 웅크리고 있는 작은 털 뭉치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다른 고양이들도 있었지만, 유독 녀석이 눈에 띄었다. 우리는 이걸 콘텐츠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촬영 준비를 하고 보호소에 전화를 걸었다.


근데 보호소에서 예상치 못한 답변을 들었다. 녀석의 한쪽 눈이 크게 손상돼서 실명으로 남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이상하게 그래도 왠지 녀석을 한 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입양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듣고, 그 길로 아내와 함께 녀석을 데리러 수원시 동물보호센터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마주한 녀석의 첫인상은 너무나도 작고 흉측한 몰골의 귀염둥이였다. 한쪽 눈의 각막이 파열되어 눈알이 곪아 심하게 돌출되어 있었다. 아내는 녀석을 보고 달팽이 눈을 가진 고양이라며 웃었다. 녀석은 자기 처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처음 만난 우리 손을 장난감처럼 물어댔다.


입양 서류를 작성하기로 결정하기까지 아내와 나는 별다른 상의를 하지 않았다. 녀석은 이미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 버렸고, 입양서류 작성은 그저 녀석을 데려오기 위한 절차에 불과했다. 센터에 계신 수의사 설명까지 듣고 난 뒤, 우리는 녀석을 가방에 넣어 택시를 타고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얌전히 가방에 들어간 녀석이 잘 있나 보기 위해 가방을 살짝 열어보자, 녀석은 내 눈을 마주치고 마치 고맙다는 듯 눈을 꿈뻑였다.


동물병원에서도 녀석의 눈은 살릴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지금은 너무 어려서 마취가 안 돼 제거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조금 크기를 기다렸다 제거를 진행하자고 하였다. 녀석과 함께 녀석의 새 보금자리인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서로 웃음 가득한 대화를 나누다 녀석의 이름을 '윙커(winker)'라고 짓기로 했다. 한쪽 눈을 제거하면 사람들에게 윙크를 하고 다닐 테니 말이다.


이후 윙커와 함께 한 지난 3주 동안, 윙커는 내게 작은 희망이 되어주었다. 가늠할 수 없는 왕성한 식욕으로 매일 같이 배가 빵빵해지도록 밥을 먹었고, 쉴 새 없이 뽈뽈거리며 집안을 누볐다. 어느새 자기 이름도 알아듣고 부르면 나를 찾아오기도 했다. 고름 가득한 눈 한쪽을 달고 사는 이렇게 작은 생명도, 세상이 그저 신기해 이렇게 티 없이 밝을 수 있는데, 나도 저렇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은 나도 다시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상징이 되어주었다.


마침 오늘 윙커를 데리고 동물병원을 다녀왔다. 그새 몸무게가 60% 넘게 증가했다. 윙커가 주식이었다면 꽤나 우량주였다. 더불어 윙커의 눈 상태가 많이 호전되어 굳이 제거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좋은 소식도 들었다. 실제로 윙커의 한쪽 눈은 깜빡일 수 있을 만큼 부기가 가라앉았다. 염증이 생기지 않도록 당분간 안약만 잘 넣어주면 된다고 했다.


예방접종을 맞고 밖에 나갔다 오느라 피곤했는지 윙커는 지금 자기 키의 5배는 되는 침대 위에 어찌어찌 기어올라가 단잠을 자고 있다. 비가 내려 오랜만에 창문으로 시원한 공기가 들어오는 오늘 윙커에게 또 한 번 행복에 대해 배운 것 같다.


※ 윙커를 데려오기까지의 과정을 영상으로 담았습니다 :

https://youtu.be/52a96lp4p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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