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의 언제나 입병을 달고 산다. (내가 말하는 입병은 볼록 속아났다 사라지는 혓바늘 따위는 쳐주지도 않고 지름이 최소 5미리는 넘어가고 보통 10미리는 우습게 넘기는, 의사 선생님이 내 얼굴만 봐도 “입병은 좀 어떠십니까?” 라고 물어볼 정도의 커다란 구내염을 뜻한다.)
조금만 무리하면 피곤해서 입병이 생기는 것은 물론이고, 컨디션 관리를 잘해서 저절로 입병이 생기지 않으면 이를 닦을 때 칫솔로 찌르거나, 심지어는 자다가 혀를 깨물기도 해서 꾸준히 입병의 총량을 최소 1~2개로 유지하고 있다. (지금도 혀에 아래 위로 어금니 모양을 닮은 입병이 사이좋게 자라나 있다) 이쯤되면 입병이 입안에 당연히 존재하는 기관인것처럼 느껴지고, 입병이 없으면 내가 뭔가 인생을 설렁설렁 대충 산것같은 죄책감마저 들 정도이니, 나에게 입병은 뗄레야 뗄 수 없는 데스티니가 아닐 수 없다.
입병을 이렇게 달고 살다보니 입병 치료제라고 쓰여진 약이란 약은 거의 다 써봤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데, 오늘은 거기에 대해서 쓰다가 어떻게든 찾아서 결론은 디자인으로 한번 가보도록 하겠다.
*어쩌다보니 입병약 리뷰가 될 것 같은데, 지극히 개인적인 리뷰이니 이 글을 너무 믿지는 않으시면 좋겠다*
첫번째로 이야기할 입병약은 연고형 입병약이다.
연고형 입병약은 극적인 치료효과보다 입병 위에 발라서 덜 아프도록 보호막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는데, 가장 유명한건 ‘오라메디’다. 오라메디는, 잘 발리지 않고, 발라도 잘 붙어있지 않고 쉽게 떨어져서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그리고 비슷한 연고제로는 ‘페리덱스’ 가 있는데, 페리덱스는 오라메디에 비해 묽어서 발림성이 좋지만 그만큼 잘 닦이기도 해서 금방 다 쳐먹어 버리기 일쑤다. 그리고 예전에 다니던 이비인후과 선생님이 독일에서 구해왔다는 엄청 비싼 연고를 잠깐 써본적이 있는데,(지금 생각해보니 프로폴리스가 주 성분으로 들어있는 연고였던것 같다.)발림성도 좋고 달콤하고 시원한 느낌은 있었지만, 이것도 극적인 효과는 없었다. 연고형 입병약은 평상시에는 주로 자기가 먹어서 닦아버리기 쉬우니, 자기전에 바르고 자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잘때 조금은 편한 마음(무언가 치료를 시도했다는 안도감)으로 잠들 수 있다.
두번째로는 찍어서 바르는 입병약인데, 대표적으로 알보칠이 있고 유사한 이름으로 성분이 비슷한 제품이 많이 나와있다.
이런 약들은 입병을 ‘지져버린다’고 표현하는데, 외부 상처에 과산화수소를 바르는 것처럼 극심한 고통이 있지만, 이내 평안을 찾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단점은 말 그대로 그 ‘찰라의 고통’이 너무 극심한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나, 사람들이 많이 모르는 또 하나의 단점이 있는데, 입병은 안으로 푹 파이고 그 자리에 상처가 생기는데, 알보칠을 바르면 겉의 상처는 빨리 없어지지만, 푹 파인것은 치료가 안돼서 오히려 더 큰 궤양으로 번지는 경우가 몇번 있었다. 이때는 입병의 따가운 통증이 욱신거리는 다른 통증으로 변하는데(피가 나기도 한다), 알보칠을 그만 쓰면 이내 회복된다. (의사 선생님이 알보칠을 그만 바르라고 해서 얻은 경험이다)
세번째로는 가글하는 제품들인데, 헥사메딘과 탄툼액, 아프니벤 큐 등이 있다.
헥사메딘은 치과에서 입 소독하라고 주는 약인데, 입병에도 효과가 좋다. 평소에 이걸로 입병부위를 헹구면 무언가 치료되는 따끔한 느낌과 함께, 고약한 향을 남기고 입병의 통증은 당분간 사라진다. 헥사메딘의 단점은 맛이 없는것과, ‘장기간 사용시 구강내의 정상균층을 없애서 안좋을 수 있다’는 경고문이다. (내가 이거를 많이 써서 입병이 이렇게 안떨어지나...하는 찝찝함이 늘 있다) 그리고 ‘탄툼액’은 민트향이 나는 가글액인데 헥사메딘과 효과는 비슷한데, 입안이 마비되는 효과가 추가된다. 마취약같은 느낌이 든다. 헥사메딘과 달리 민트향이 남지만, 입안이 얼얼해져서 맛을 거의 느낄 수 없다. 식전에는 별로 추천하지 않는다.
아프니벤 큐는 달콤하고 통증도 덜하지만, 그만큼 효과도 덜하다. 위 두 가지에 비해 개인적으로는 가성비가 떨어진다고 판단된다.
네번째는 진료 후 처방받는 먹는 약이다.
여러 병원에서 입병에 대한 처방을 받아보았는데, 입병약은 대체로 진통소염제와 항생제, 위장약으로 구성된다. 병원과 증상 정도에 따라, 약의 종류와 항생제의 용량에 차이가 있었을뿐, 처방은 대부분 비슷했다. 먹는 약은 약을 먹기 시작하면 다른 약들에 비해 효과가 빠른 편이며, ‘내가 적극적으로 치료를 시작했다’는 안도감이 있어서 그런지 통증이 덜한 것 같은 플라시보 효과도 있다. 단점은 ‘내가 이렇게 항생제를 많이 먹어도 되나?’ 하는 불안감(실제로 나중엔 효과가 없어져서 항생제의 양을 늘리기도 했다.)과 병원에 가야하는 수고가 되겠다.
마지막 다섯번째는 평소에 먹는 영양제다.
입병이 많이 난다고 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비타민B나, 프로폴리스 등을 추천한다.
그래서 나는 평소에 비타민B 두종류와 프로폴리스를 꼭 챙겨먹는다. 하지만 서두에 이야기했듯이, 컨디션이 괜찮아서 입병이 안생기면 스스로 자해해서 입병을 만들고야 마니,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정답이다 라고 하지는 못하겠다.
(그 외에 ‘아프타치’라고 하는 붙이는 입병약도 있는데, 이것도 자기전에 붙이면 보호막 역할을 해서 자기 전에 연고를 바르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준다.)
이런 오랜기간 다양한 처방을 연구하며 내린 개인적인 완벽 솔루션은, 일상생활 중엔 가글형 입병약+먹는 약으로 통증을 최대한 줄이며 버티고, 자기전에 연고형이나 아프타치를 써서 아파서 못자는 일은 없도록 막는것이 최선인것 같다. 그리고 거기에 하나 더, 마우스 피스를 물고 자면 자다가 혀를 깨물어서 입병을 만드는 어처구니 없는 일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문득 생각해본다.
내가 입병치료에 대해 연구하고 쏟아부은 시간과 시도들을, ‘나의 디자인’에도 해보았을까? 물론 입병은 ‘치료’라는 궁극적이고 가시적인 목표가 있어서 쉬울 수 있었지만, 디자인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다’라는 이유로 적당히 맞추려고 하지는 않았을까? 그런 ‘적당히 맞춰서 컴펌을 넘겨버리는 작업’에 익숙해져서 디자이너의 심장을 잃어버린것은 아닐까…
갑자기 무언가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끓어오른다. 디자인을 공부하던 학생때처럼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하면서 입병을 치료하는 마음으로 간절하고 끈질기게 도전해보고 싶다. 퇴근하고 애들 밥먹이고 놀아주고 재우고 내가 깨어있다면! 오늘 밤은 꼭 무언가를 해봐야겠다.
- 다음날 회사에서 막간을 이용해서 이 글을 마무리한다. 당연히 어제 밤에는 기절하였다. 우리의 일상은 늘 이렇게 다짐과 좌절이 반복되기에 새로운 하루를 선물처럼 기뻐할 수 있다.
- 이번에도 디자인에 대한 심도 있는 이야기를 들으러 오셨다가 실망하신 분들이 혹 계시다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