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싸 Jul 30. 2020

패션

나는 유행, 특히 ‘유행하는 패션’과는 거리가 아주아주 먼 사람이다.

디자이너랍시고 유행에 민감하지 않다는 것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자신의 스타일만 고집하는 꽉꽉막힌 꼰대라는 뜻도 되지만, 그것은 오해. 나는 그래픽디자인의 경향에는 매우 민감하며 새로운 흐름을 잘 받아들이고 적용해보는 열린 마음의 소유자임을 미리 밝힌다. 지금 이 텍스트 편집기 뒤에 깔린 시안이 “뭐라고?”하면서 나를 노려보는것 같은데, 그건 내가 문제가 아니라 10년째 늘 같은 포멧(내가 한 디자인도 아닌) 만을 요구하는 클라이언트의 문제이다. 흠흠.


어쨌든, 이번 글은 아내에게 아침에 인사보다 더 많이 듣는 것 같은 “옷이 없어?”라는 대사에 대한 변명이자, 이렇게 생각을 정리함으로서 스스로를 돌아보고자 하는 목적이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는 말이 있다.

얼굴로서 이미 완성되어있다는 자신감을 빙자한 자뻑 왕자병을 40년간 앓아오고 있는 입장에서, 패션까지 신경쓰는 것은 이미 가득 찬 물컵에 물을 더 부어서 넘치게 하는 것처럼 부질없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나는 의식적으로 패션에 신경을 쓰지 않고, 최대한 수수하게 다니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래야 사람들이 세상은 공평하다고 느낄 테니까(나의 이타심과 인류애는 정말이지 대단하다).

그래서 나는 아침에 출근할 때 입을 옷을 별로 고민하지 않는다. 단지, 출근길 패션을 선정하는 나의 나름의 기준이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가능하면 어제 입은 옷을 한번 더 입는다. (빨래 자주하면 아내가 힘드니까)

 2) 어제 입은 옷을 빨았으면 전에 입었다가 짱박아둔 옷들 중에 찾아서 꺼내 입는다.

 3) 짱박아둔 옷이 없으면 서랍을 열어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옷을 꺼내 입는다.


그러다 보니, 색깔 조합이니 뭐니 다 무시하고 그냥 동네 나온 아저씨처럼 대충 입고 나가게 되는데, 현관문을 나갈때 분명히 자는것 같던 아내가 그냥 인사만 하면 그래도 창피하지는 않은 수준이고, 갑자기 주섬주섬 안경을 찾아 끼면 문제가 있다는 사인이니 긴장을 해야 한다. 왜 진한색 바지에 진한색 티를 입느냐, 왜 같은 색으로 깔맞춤을 하느냐, 거울 안봤냐, 일부러 나 엿먹이려고 그러냐, 디자이너가 왜 색깔을 그따위로 쓰냐 등등… 아내의  이야기는 틀린말이 하나도 없어서 듣는 동안 연신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하게 만든다. 그리고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다시 나가는데, 다음날이 되면 또 비슷한 패턴이 반복된다.  


스스로를 돌보고 꾸미는 것에 인색한 우리들이 많이 겪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이건 삶의 우선순위의 문제다. 자기관리보다 가족에, 먹고 사는 일에 더 집중하고 살아온 부모의 무게. 그 무게에 눌려 우리는 자신을 돌보는 것에 쏟을 에너지가 없어서 옷도 대충입고, 운동도 못하는 통에 점점 볼품없는 아저씨, 아줌마가 되어가고 있는것은 아닐까…

내가, 그리고 그대가 스스로를 보다 더 잘 살피고 돌봤으면 좋겠다.


...아, 멋진 변명이었다.



이 글을 혹시라도 보게 될 아내의 대사가 상상된다.

“자기를 위한다고 예쁜 옷을 안샀어? 사면 뭐해? 조합을 이상하게 하고 다니는데!”


훌륭한 디자인은 각기 다른 요소들을 잘 버무려 ‘어울리게’ 만드는 것이다.

역시 디자인은 평생 공부가 필요한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