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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싸 Jan 09. 2024

지구야 미안해, 인간이라서...

베르나르베르베르 <행성>

고양이가 주인공인 책이라니까 냉큼 와서 앉은 우리 고양이.



 세계문학을 가까이하겠다는 올해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 도서관에 가고 있다. 하지만 세계문학만 너무 보면 탈이 날까 싶어 현대문학과 비문학도 적절히 섞어서 빌려오고 있는데, 오늘은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함께 빌려 온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행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아마 이 표지를 보고 반사적으로 책을 집어 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했을 것 같은 책이라니. 가슴이 쿵쾅거렸다. 이 시대의 이야기꾼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의 이야기니 당연히 재밌게 잘 읽힐 텐데 게다가 고양이가 주인공이라니… 나는 그런 생각으로 성급하게도 2부작 인지도 모르고 1권만 홀랑 빌려와서 단숨에 다 읽었다. 그리고는 그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밤새 데굴데굴 구르다가 지쳐 겨우 잠들고 다음날 눈 뜨자마자 도서관에 가려다가, 아 맞다 출근을 해야 된다는 생각에 가뜩이나 싫은 회사생활을 더 원망했었다.


 이 이야기 <행성>은 고양이 바스테트를 주인공으로 한, <고양이>, <문명>에 이은 3번째 시리즈다. 반지의 제왕으로 치면 3부 <왕의 귀한>쯤 되는 이야기랄까. 그도 그럴 것이 마치 <왕의 귀환>처럼 그동안 전작들을 통해 쌓인 서사를 바탕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지 3분도 안 돼서 전쟁에 돌입하여 독자를 몰입하게 만든다. 하지만 나처럼 이 이야기가 시리즈인지 모르고 이 책부터 처음 읽은 독자들도 적절한 회상과 대사들을 통해 무리없이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시작하자마자 엄청난 위기가 찾아오고, 주인공급으로 보이는 캐릭터들이 막 죽어나가고, 사전 서사 빌드업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 위기-절정-결말로 치달리는 전개. 마치 최근의 웹소설 트렌드를 보는 것 같았다. 서사를 쌓지 않고 이렇게 독자적으로 완벽하게 읽힐 수 있다니. 이게 이야기꾼 베르나르베르베르의 힘인가 싶어서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략의 줄거리는 이마에 USB를 심어 인간과 소통할 수 있게 된 고양이 바스테트가 인간들의 욕심과 불통으로 인해 디스토피아가 된 세상을 구한다는 이야기이다. 다양한 인간들의 군상과 그들의 욕심, 소통의 부재를 보면서 오늘날 인간의 모습을 정말 잘 녹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이 세계의 멸망은 인간의 욕심으로 비롯된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국가, 정치, 이념, 종교 등 여러 이유로 서로 반목을 거듭하는 인간들로 인해 세계는 분열하고 멸망에 이른다. 인간이라는 종의 하나로서 함께 지구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든다. 또한,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서 여러 가지 장치들을 통해 언급하며 상호 간의 소통과 이해, 사랑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임을 이야기한다(적의 군대를 상대하는 최후의 방법도 ‘소통’과 관련된 것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그리고 큰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분위기가 어두워지지 않도록 요소요소에 유머코드도 잘 버무려두었다. 특히, 각 동물들의 습성에 따른 성격의 묘사에 감탄했다. 일례로 위기의 순간에 목표물을 조준하는 레이저 빛을 보고 고양이의 본능을 주체할 수 없어 쫓아가다가 죽임을 당하는 고양이들을 보면서는 안타까우면서도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1권에 이어 빌려온 2권도 단숨에 읽고 책장을 덮으며 나도 모르게 나온 첫마디는 “와 진짜 재밌어.”였다.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게 몰입하게 만들고 영화처럼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는 장면들이 실로 대단했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작품이 단순히 재미로만 가볍게 소비되도록 만들지 않는다. 모두 그 안에 자신이 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넣고 그것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이야기 뒤에 숨은 작가의 의도, 메시지를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재미있게 잘 읽혀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아이들의 약이 괜히 딸기맛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주인공 병 걸린 내가 무릎을 탁 치며 공감한 대사 한 문장을 공유한다. 오지랖 넘치는 나의 인생을 농축한 한 문장이 아닌가!


나는 해결책을 찾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야 하는 게 싫다
- 바스테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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