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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릭 Jul 08. 2021

LG는 왜 아이폰을 팔려고 하는가?

LG 휴대폰, 끝내 마침표를 찍다.

2021년 6월 31일

엘지가 공식적으로 스마트폰 사업에서 철수를 발표했다. 이로써 1995년부터 시작된 엘지의 휴대폰 사업은 장장 26년의 역사 속에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이전부터 매각과 관련된 루머는 지속적으로 제기되었으나, 무려 23분기의 적자를 기록함에도 불구하고 엘지는 스마트폰을 접지 않았다. 무엇이 이들을 여기까지 버티도록 만들었고, 무엇이 이들을 이 시기에 스마트폰 사업에서 정말 철수하도록 만들었을까?



스마트폰 도전

앞서 언급한 것처럼 LG의 스마트폰 사업 철수는 때때로 들려오는 루머였다. 한때는 세계 3위를 차지할 정도로 성공했던 LG의 몰락은 스마트폰 시대에 들어서면서 시작됐다. 이미 스마트폰 시장 초기에 맥킨지 리포트를 통하여 스마트폰 진입에 늦어졌다는 이야기는 업계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들어봤을 법한 카더라다.


물론 당시 맥킨지가 LG의 결정에 나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맥킨지에 모든 책임을 돌리기에도 무리가 있다. 이와 같은 여러 카더라는 많지만, 그중에서도 사람들에게 가장 왜곡된 상태로 전달된 정보라면 "LG가 스마트폰 시장에 진입을 늦게 했다는 점"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LG전자는 아이폰 등장 이전에도 포켓 PC를 비롯한 여러 제품을 시도했다. 다만, 이를 주력제품으로 끌고 가지 않았거니와 여기에 사활을 걸 정도로 중요도를 높게 책정하지도 않았다. 2007년 아이폰의 등장 이후로 스마트폰 시장에는 큰 변화가 생겼고, 더 큰 틀로는 휴대폰 시장 자체가 요동치는 시기였다. 이 혼돈의 시기 속에서 제조사들은 선택을 강요받았다. 스마트폰에 All-in 하느냐? 피쳐폰을 유지하되 스마트폰에 분산 투자하느냐.


2021년에 와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이 당시 2007 ~ 2008년에 맥킨지가 "피쳐폰에 집중하는 게 좋다"라는 보고서를 냈다는 점을 비웃는 건 매우 결과론적인 이야기다. LG 정도의 규모가 되는 기업한테 당장 잘 나가는 피쳐폰을 드랍하면서 조잡하고 완성되지 않은 '안드로이드 OS'가 차후엔 성공할 테니까 이걸 콕 집어서 만들라고 하는 건 그 누구도 믿기 어려운 결론이다. (여러 번의 기적이 터졌다는 게 문제지만..)


참고로 이 시기에는 삼성도 옴니아를 내놓고 처참한 실패를 하는 등 거의 모든 제조사들이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영역 속에서 헤매면서 자신만의 결론을 도출하는 시기였다. 누구는 스마트폰의 가능성보다 피쳐폰이 발전하는 게 더 가능성이 있다면서 터치폰을 만들었고, 누구는 당시 OS 시장 점유율 1위인 Windows Mobile이 미래라면서 Windows Mobile 스마트폰을 출시하는 기업도 있었다.


초기 스마트폰을 보면 아이폰과 삼성의 갤럭시 S를 제외한 거의 모든 안드로이드 폰이 물리적인 키보드를 탑재하며, 기업마다 모두 다른 하드웨어 버튼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미완성 상태였다. 블랙베리를 비롯한 기존 스마트폰 기업들은 소프트웨어 키보드는 절대적으로 하드웨어 키보드를 대체할 수 없을 것이라는 보수적인 입장을 취했고, 초기 안드로이드도 소프트 키보드를 제공하지 않았다.

LG전자 "안드로-1"

그래서 필자는 LG의 초기 스마트폰 진출이 절대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삼성전자는 아이폰을 보기 전까지 Windows Mobile이 들어간 옴니아를 포기하지 못했고, 초기에 안드로이드를 가장 잘 활용한 HTC는 이미 Help This Company로 전락했다.


삼성이 옴니아에서 갤럭시 A 그리고 갤럭시 S를 출시했다면, LG는 "안드로-1"에서 "옵티머스" 그리고 "G시리즈"를 탄생해낸다. 두 회사가 초창기에 내놓은 스마트폰은 엉성하고 미흡했다. 그도 그럴 것이 피쳐폰과 스마트폰은 근본부터 다른 제품인데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내놓는 제품이 완성도면으로 높을 리 만무하다.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는 애초에 피쳐폰에선 존재할리 없는 개념이고, 컴퓨터처럼 휴대폰을 미래까지 감안해서 스펙을 짜야한다니... 이 얼마나 어려운 조건인가. 초기 안드로이드는 6개월마다 대규모 업데이트로 뒤엎어지는 상황이였는데, 이런 상황속에서 하드웨어에 맞춰서 최적화를 해달라? 개발자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다.


첫 번째 시도는 했다. 다음은?

확실히 삼성이 LG보다 제대로 된 방향성을 봤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갤럭시 A를 출시한 이후, 삼성은 바로 한계에 직면한다. 그래서 차후작인 "갤럭시 S"에서는 상당히 많은 부분을 아이폰에서 배운듯한 결과물이 나왔는데, 이게 대성공을 거둔다.


갤럭시 A가 단순 안드로이드가 들어간 옴니아였다면, 갤럭시 S부터는 정말로 유일하게 당시 아이폰에 대적할 수 있는 제품이라고 평가한다. 아직까지도 사람들이 말하는 걸 들어보면 상당히 많은 편견이 이 당시에 생겼다는 걸 알 수 있는데, 대표적인 예시로는 "삼성이 성능은 더 좋은데 애니메이션이 구리다"등이 있다.


당시 삼성은 아이폰보다 더 좋은 반도체를 자체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이를 적극 활용하여 아이폰 못지않는... 아니 그나마 봐줄 만한 수준의 애니메이션을 안드로이드에서 구현할 수 있었다. 이 많은 개선점을 스마트폰 시장의 지각변동이 일어난 2008년 후반기부터 갤럭시 S의 출시인 2010년 중반기까지 무려 2년이 안 되는 시간 내에 따라잡았다는 걸 고려하면 이제 왜 삼성이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인지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LG는 그동안 무엇을 했을까? LG도 나름의 스마트폰 시장에서 여러 가지 노력을 해봤다. 2010년 6월에 출시된 "옵티머스 Q"를 시작으로 같은 해 7월 출시 "옵티머스 Z" 그리고 10월에는 보급형 "옵티머스 원" 및 "옵티머스 시크", 12월 출시 "옵티머스 마하". 농담이 아니다, 스마트폰을 제대로 만들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실적 악화를 잡아내겠다고 스마트폰을 저리 찍어냈다.


저렇게 제품군을 막 출시하는데 OS 업그레이드는커녕 소프트웨어 최적화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그럴 리 없다. 물론 삼성도 여러 가지 시리즈 파편화를 안 한 건 아니지만, LG보단 상황이 나았다. 덕분에 LG의 스마트폰 이미지는 나락을 가고, 옵티머스 LTE가 출시될 시기에는 내부에서 "옵티머스" 브랜드를 드롭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2011년 10월에 출시된 "옵티머스 LTE"부터는 LG도 괘나 준수한 스마트폰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것 역시 LG 내부에서 개발 방향성으로 갤럭시 S2를 모티브로 삼았다는 게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

"옵티머스 LTE"(좌), "옵티머스 G" (우)

삼성이 갤럭시 A에서 S로 브랜드를 바꾸면서 큰 개선점이 이루어졌다는 것처럼, LG도 비슷한 사례가 하나 생긴다. 바로 2012년 8월, LG는 "옵티머스 G"를 출시하면서. 제품은 실로 만족스러운 수준이었고, 시장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판매량은 반등했고, LG가 스마트폰 시장에 늦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LG의 화려운 부활은 후속작인 "G2"까지 유지되면서 꽃길만 남은 듯했으나...



몰락의 시작

후속작인 G3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성공을 이어가고 싶었던 LG는 G3에서도 G2의 많은 장점을 계승해서 제품을 만들었는데, 의욕이 너무 과했던 것 같다. 세계 최초 QHD 디스플레이를 탑재하는 듯한 모험적인 시도는 좋았지만 이로 인하여 최적화에 실패했고 발열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는다.


특히 이전부터 지적된 소프트웨어 최적화는 G3에서 심각한 문제로써 대두되었으며, 무한 부팅을 비롯한 여러 가지 악재가 겹치면서 LG의 이미지가 다시 한번 추락한다. G3가 덜 팔렸다면 다행이겠지만, LG 스마트폰 중에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1000만 대 판매량을 기록하는 등의 - 하필 - 놀라운 성적을 보였다는 게 아이러니.


후속작인 G4에서도 고질적인 문제점인 소프트웨어 최적화와 무한 부팅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떨어지는 판매량을 회복하고자 LG는 G5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는데, 이때 문제란 문제는 다 종합한 결과물을 선보인다. 무한 부팅, 디스플레이, 마감, 소재, GPS, 카메라 그리고 등등. "휴대폰을 이렇게 만들기도 어렵겠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제품을 탄생시키고 LG 스마트폰 사업은 사실상 이 시쯤에 막을 내렸다고 봐도 무방하다.


모든 회사가 매년 새로운 제품을 한 개 이상 출시하는 치열한 시장에서 3년 연속으로 똥볼을 차고 있다면, 이미 그 기업의 이미지는 스틱스 강을 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차후작인 G6에서는 그나마 논란이 된 문제점이 다소 해결되었지만, 삼성이 최신 칩셋을 싹쓸이해가서 1년 지난 칩셋을 탑재하는 등의 뼈아픈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이 시쯤에선 LG도 온몸 비틀기를 하면서 사업을 회생하고자 노력했다. 2015년쯤엔 삼성이 S시리즈와 Note시리즈로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는 것처럼 본인들도 G와 V 시리즈를 출시했고, 실제로 G7이후부터는 이상한 도전 같은 거 안 하고 정상적인 휴대폰을 만들고자 지향점을 바꾸는 듯한 움직임도 보였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편견은 굳어진 이후였고, 누데기가 된 기업 이미지를 다시 살리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평가한다. 특히 2018년쯤에는 사실상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이 고착화된 상황이라 소비자들은 본인이 쓰던 브랜드를 쓰면 썼지, 이전처럼 브랜드를 넘나드는 모험을 하지 않게 되었다. 즉, LG에게 더 이상의 기회가 없다는 것.



적의 적은 친구다

이번에 LG도 Wing과 Velvet를 내놓으면서 오랫동안 고민을 했을 것이다. 본인들이 스마트폰을 끌고 가서 성공을 할 가능성이 있는가, 그리고 성공을 하지 못한다면 지금과 같은 점유율을 유지해서 얻는 이점이 무엇이 있는가.


그 결론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LG는 결국 최종적으로 스마트폰 시장에서 완전 철수를 결정했고, 원천기술을 매각하는 것보단 들고 있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LG가 스마트폰을 포기한다면, 그 어마어마한 손실을 감수하면서 까지 여태까지 스마트폰을 유지한 이유는 무엇일까?


LG가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스마트폰을 끌고 온 이유는 무엇보다 스마트폰이 앞으로의 IOT 스마트홈에서 열쇠가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LG 가전은 아직까지 매우 잘 나가고 있고, 삼성과 견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분야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본인들만의 스마트폰을 포기한다는 것은 자체 이코시스템을 사실상 포기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폰 접는 LG 임직원몰서 아이폰 판매…타사 폰 처음 팔아 - 한경닷컴 (hankyung.com)
"“LG,아이폰 팔거야? 말거야?”…밀어붙이는 애플"- 헤럴드경제 (heraldcorp.com)

이러한 이유를 대입해본다면 이제 왜 LG가 애플에게 접근했는지 설명이 가능하다. 혹은, 애플이 먼저 접근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삼성이 구글보단 MS와 동맹을 맺으면서 구글 서비스에 대항하는 것처럼, 스마트폰이 없는 LG와 가전이 없는 애플의 협력은 꽤나 강력한 이코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이상적인 조합이다.


현재로써는 애플에게 부족한 국내 유통망을 확대하는 오프라인 판매점을 제공하는 셈이지만, 지금과 같은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다면 LG의 무기인 가전과 협력할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것. 이를 빌미로 삼성에게도 갤럭시와 LG 가전을 연동하게 하라는 등의 Swing Voter과 같은 포지션을 자처할 가능성도 있다.


거기다가 LG 디스플레이와 같은 일부 계열사는 이미 애플에게 부품을 공급하는 등의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명분도 있고, 실리도 챙길 수 있다면 현재로써 LG에게 애플과의 관계를 강화하지 않을 명분은 없다. (당장 애플이 에어컨을 만들리는 없으니까)


무엇보다 애플은 현존하는 어떤 기업보다 자사 이코시스템을 완성형에 가깝게 만들어둔 기업이다. 단일 스마트폰 판매량에서 압도적인 1위이며, SE를 제외한 모든 스마트폰 라인업이 플래그쉽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기업이기도 하다.


서비스를 필두로 하드웨어에 진출하는 구글, 하드웨어를 필두로 MS와 손을 잡는 삼성, 그리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독식하는 애플의 삼파전은 앞으로도 지속될 예정이다. 앞서 언급한 IOT 스마트홈이 보급되고,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모든 제품이 네트워크에 연결되면 더 험난한 주도권 싸움은 불 보듯 뻔한 이야기다.


스마트폰을 포기하기 전부터 LG가 구글과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준 이유는 이와 같은 전후 사정과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포기한 현재로써 LG가 내려야하는 결정은 누구와 손을 잡고 미래의 산업을 차지할 수 있을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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