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승권 Feb 27. 2024

미생, 끝

윤태호 작가. 미생


발버둥 치는 삶은 가엾다. 하여 모두가 가엾다. 우리 중 소수만 깨달음에 도달한다. 그렇게 전해진다. 실제 존재하는지 모르겠지만 좋은 지점은 늘 소수의 몫이라고. 운이 좋았죠...라는 소감은 더 이상 믿지 않는다. 현재 기준의 성공의 소감을 운이라고 전하는 이들에게 운만큼 진실성이 느껴지지 않는 단어도 드물다. 궁금하지만 궁금하지 않다. 성공, 원하지만 그게 뭔지 모르겠다. 생각이 많은 자들에게 주어지지 않는 상이라면 성공은 아마도 영원히 내 이름과 같은 문장에서 언급되지 않을 거라는 미리 겪는 작은 서운함 뿐. 아무리 찾아도 모르겠고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아서 소심한 여럿 더 안달 나게 할 뿐. 이제는 영영 채워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조금이라도 맘 편하려고 그렇게 결론 내렸다. 그렇게 살고 있다. 당신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미생이 끝났다. 내 미생 말고. 윤태호 작가가 그리는 장그래의 회사 이야기. 임시완, 이성민, 변요한, 강하늘, 강소라 주조연의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여전히 대사와 밈이 떠도는 작품. 허영만의 비트를 김성수 감독의 정우성 주연 영화보다 먼저 기억하는 것처럼 미생 또한 원작의 깊이와 너비는 2차 콘텐츠와 비견되기 힘들다. 무엇보다 최종에 이르기까지 창작자가 등장시키고 역할을 부여하고 소멸한 조연과 단역들의 존재감이 세세히 걸리는 건, 결국 동질감이다. 어떤 타인도 다른 타인의 인생에서는 잠시 등장했다 사라지는 저런 역할이라는 사실, 미생은 결국 주인공들의 활약과 독백으로만 이뤄진 세계가 아니라는 점이 매주 읽을 때마다 묘한 안도감을 줬다. 창작물이지만 마치 실존하는 듯한 몰입감 속에서, 모든 컷마다 고생하는 타인들을 구경하는 삶. 미생을 보는 순간조차 나는 미생이었다. 광활한 우주의 무명의 별 하나 같은 독자로서. 기억되지 않을 테지만 적정량의 고립감을 덜어낼 수 있었던 직장인으로서, 그래 직장인.


직장인이라는 프레임은 작품 미생과 미생의 견디고 있는 독자를 하나로 묶는다. 사회구성원 중 회사에 소속된 다수가 겪고 있지만 쉽게 말해질 수 없는 보일 수 없는 세세함을 정성스럽고 치밀하게 편집하여 선과 색, 형체와 이야기로 드러낸다. 상황과 관계에 휘말려 옴짝달싹할 수 없는 난감한 처지의 연속, 또 연속. 개개인의 모든 일상이 매 순간 스펙터클할 수 없겠지만 파도가 지나가면 가까이 있던 누군가는 몸이 젖는다. 모두가 파도를 볼 때 누군가는 중심을 잃고 수중에 잠기고 바닷물을 들이마시고 눈에 소금기가 들어가고 팔다리를 휘젓다가 겨우 터덜터덜 모래와 작은 조개껍질 묻은 발과 다리로 혼자 터덜터덜 숙소로 돌아가야 한다. 모두가 파도를 이야기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그 하나의 그림자로 빈방의 문을 여는 누군가가 된다. 미생은 그 누군가의 삶들을 편집하여 컷으로 보여준다. 나와 같은 수많은 무명인들이 그 컷의 일부가 된다. 스스로를 추동할 수 없는 운명, 소속은 훈장이 아닌 족쇄라는 낙인. 미생은 영원히 제대로 구동될 수 없는 톱니바퀴의 톱니들 사이의 먼지를 보여준다. 누가 먼지고 누가 톱니고 누가 부분과 전체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가. 누가 쓸모없다고 여겨지는가. 누가 교체된 부품이 되는가. 직장인들이 겪는 분리불안에 대한 공포가 모든 등장인물들의 표정에 깔려 있다. 그래서 나, 너, 무리의 이야기.


누구나 자신만의 독백을 한다. 형체 없는 무대 위에서 혼자 쏜 조명 아래에서 줄 없는 마이크를 쥐고 리허설을 거치지 않은 음성으로 속마음을 불특정다수의 관객(대부분 늘 자신)을 향해 읊조리고 토로하고 때론 격렬하게 따진다. 마치 짝사랑처럼. 나 말고 다치는 사람은 없다. 늘 내가 제일 힘들다는 안전한 착각을 주입한다. 때로는 이조차도 외면한다. 누군가 구해주길 바라지만 손을 잡기는 싫고 누군가를 구해주고 싶지만 손을 뻗기는 망설여진다. 회사 안에서는 이런 망상이 실시간이다. 구성원 수의 제곱에 제곱에 이르는 개수의 우주가 자욱하게 자전과 공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미생은 그 독백들 중 일부를 캐치해 문학의 지위로 격상시킨다. 그렇게 독백의 주인을 찾아준다. 고민의 주체, 실행의 주체, 그리고 고난과 실패, 시작과 설렘의 주체까지 나로 맞춰준다. 늘 중심을 잃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완결되지 않은 이야기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직장인, 나라는 점을 그리고 나뿐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짐작하고 기대하고 작은 한숨을 내쉬게 해 준다. 작가가 썼다가 지운 이야기, 그렸다가 지운 그림에는 얼마나 더 진하고 애달픈 사연들이 있었을까. 미생의 연재는 끝났지만 독자의 인생은 그럴 수 없다. 사는 내내 이 작품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호도, 가족이라는 사이비 악마집단으로부터 살아남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