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정신의 빈 곳

by 백승권

"허물어진 정신의 빈 곳에

글을 기워 메운 적이 많았어요.

서늘해진 폐부 깊은 구석에

뭐라도 써서 채워야 했어요.

더 아픈 일을 해야 아픈 일이

덜 아파질 것 같았거든요.

겪은 고통이 기록으로 옮겨질 때

고통은 줄어들 줄 몰랐어요.

고통은 영역은 확장되어서

좀 더 보편적인 존재가 되었고

기정사실화 되었죠.

곧 죽을 줄 알면서도 꽂는

진통제 주사 바늘 같았습니다.

마비된 신경은 느끼지 못했고

이제 끝이구나 체념하니 뺨이 떨렸어요.

그런 상황에서 남겨진 기록들은

글이 아니라 판화 같았죠.

지금은 덜해요. 몸 이곳저곳 조각칼로 파냈더니

통감을 감지하는 신경마저 기능을 잃었거든요."


저는 괜찮아요.

저 글을 쓴 저는

저가 아니어서.


저는 여전히 아직도

저가 누군지 모른 척합니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