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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

by 백승권

아무것도 무너지지 않을 때부터

이미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었어


아무도 비명 지르지 않을 때부터

이미 모두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고


아무도 넘어지지 않을 때부터

이미 모두가 쓰러져 피 흘리고 있었고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때

이미 모두가 알고 있었지


너만 몰랐어


너만 눈을 감고

너만 귀를 막고


너만

너만 그렇게 모든 그림자 사이에서

느긋하게 웃고 있었어.

거기 그렇게 서서.


너가 미운 게 아냐.

그저 경이로워서 그래.


너의 무관심이 어떻게

너의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지

그저 궁금해서 그래.


어떻게 되면 알려줘.

꼭 보러 갈게.

소식은 듣게 되겠지만

어떤 결말일지 직접 보고 싶다.


보고 싶어.

이런 식으로라도 보고 싶어요.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그렇게라도 볼 수 있다면


멸망을 원해.

두 손 모아 간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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