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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일 수 없는 것. 드래곤 길들이기

딘 드블루아 감독. 드래곤 길들이기

by 백승권

사랑

우정

가족

친구


관계를 정의하는 단어들은

과녁을 빗나갈 때가 많아요


이름을 정해두고

가까워지는 게 아니니까


우린 이렇게 서로 다른데

난처한 상황에서 마주해서

가까워졌다고 그저

우정이라고 부를 수 있나요


우린 이렇게 서로 닮았는데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멀어진다 해서 영영

안 본다고 할 수 있나요


나는 본질이 괴물이고

너는 아름다운 사람인데


서로의 이름을 기억한다고

가족이나 우정이란 말을

슬그머니 올려두어도 되나요


우리가 우리에게 보여준

시간, 노력, 대화, 선물들이 결국

우리가 우리를 정의하는

현재와 미래의 전부예요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날개가 다친 채 추락해서

혼자 남겨졌다면 살과 뼈가 썩어

남김없이 풍화되었을 텐데


너는 어쩌다 나를 발견하여

바로 죽이거나 지나치지 않고

정성껏 물고기를 먹여주고

정성껏 다친 날개를 고쳐주고

정성껏 다시 나는 법을 훈련하며

다시 나를 나답게 회복시키기 위해

너의 수많은 낮과 밤을 쏟아부었죠


우리의 경험을

우리는 잊지 않고 이것이

우리가 우리를 정의하는

현재와 미래의 전부예요


우리는 같이 나는 법에 익숙해질수록

우리는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같은 속도의 바람을 가르며

같은 질감의 삶 속에 공존해요


중력을 힘차게 거스르며

앞으로 가로막는 것들을 화염에 불태우고

거대 악에 맞서 우리를 지켜내죠


과거에 우리가 독립된 개체로서

세상의 오해 속에서 외로이 웅크렸다면

지금은 당당한 한 몸이 되어

원하는 어디서든 날개를 펼칠 수 있어요


길들인다는 것은 결국

길들이지 않는 것


기존의 세상이 고통과 억압으로

길들이려 했던 각자를 해방하고

밀착된 서로의 몸과 마음으로

같은 풍경 속에서 하나가 되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초월하는 것


가장 자연스러운 내가 되어

가장 우리 다운 우리로

완성되는 것


내가 괴물이든

너가 사람이든

과거의 정의에 아랑곳없이

비어있는 페이지를

새롭게 채우는 것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서로를 만들었고

떼어낼 수 없는 서로의 일부가 되어

우리가 만나지 않았더라면 결코

알 수 없었을 아름다운 미래의 하늘을

경이로운 자태로 찬란히 가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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