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과 오해

by Glenn

노력이 오해받을 때 둘을 추상적 영역으로 데려온 후 형태를 지닌 대상으로 바꾼 후 감정을 녹인 변형 과정을 진행시키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오해를 사과처럼 상상할 때가 있어요. 사과 껍질을 손톱으로 하나하나 긁어서 천천히 껍질을 벗기고 알맹이를 거칠게 베고 짓눌러 으깬 후 고온의 불로 태웁니다. 재를 모아서 다시 형체를 만들고 다시 빻아서 입자가 감지되지 않을 때까지 다시 갈고 갈고 갈아요. 그렇게 오해의 그림자가 소멸되면 노력을 데려와 의자에 앉힙니다. 언제든 다시 이런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주지 시켜요. 공정하거나 합리적인 결과로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늘 크다고. 그걸 대비한다고 대미지가 적어지지는 않을 테지만 그래도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타격이라도 언젠가는 날아오겠지라는 긴장감을 지닌 채 지내면...아니지 그 긴장이 불안을 조성하고 불안이 실체처럼 느껴지고 숨통을 옥죄고 사지를 덜덜 흔들리게 할지도 모르지. 노력이 무슨 죄겠어요. 동시간대에 놓인 환경적 변수에 충실히 대응하려고 모든 정성을 들여 집중한 것뿐인데 아무리 개인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도 변수 대응은 한계가 있습니다. 변수의 주체조차 예상 영역 밖에 있을 수 있으니. 하여 노력에겐 책임을 추궁하지 않기로 합니다. 타율을 떠나서 노력은 성과로 도출된 빈도가 많았어요. 어떤 성과는 노력 이상으로 돌아오기도 했고. 어떤 성과는 노력과 아주 먼 시간대에 나비효과처럼 일어나기도 했어요. 하지만 어떤 성과든 노력은 돌아왔다는 점이 인상적이죠. 이 점이 노력을 결코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만듭니다. 지금쯤... 오해는 지옥에 있겠죠. 타르에 감겨 꺼지지 않는 불 속에서. 오해는 그런 대우를 받아도 됩니다. 언데드처럼 언제라도 관뚜껑을 부수고 우스꽝스럽게 걸어와 목덜미를 물어 뜯으려 하겠지만 그때는 또 그때까지 축적된 노력을 방패삼아 싸우고 버텨야죠. 지겹긴 해요. 어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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