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을 적는다고 기분은 나아지지 않아요. 변화의 옵션에 '변화하지 않음'이 있다면 그 상태가 맞아요. 특정 사건에서 설득력 있는 원인을 찾기엔 너무 누적되었습니다. 시간의 길이과 사건의 수는 비례하기 마련이니까. 사건은 잊혀지거나 흐려질지언정 사라지지 않아요. 지금은 마치 정신을 차려보니 갯벌에 발이 빠져가며 느리고 힘겹게 온갖 짜증 섞인 혼잣말을 내뱉으며 걷고 있고 곧 물이 들어와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협감을 느끼고 있어요. 한때는 병원 방문, 의사 면담, 상담 치료 같은 걸 진지하게 고려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의심이 높아진 상황에서는 그조차 찰나의 계획으로 지나갔어요. 다시 말하지만 원인을 찾는 일은 의미가 없어 보여요. 작정하고 특정한다면 가능은 하겠지만 특정 이벤트가 정확한 원인으로 내면의 법정에 세우기엔 기존 용의자들 리스트를 열거할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변호사들도 앞다투어 부당한 혐의라고 핏대를 세울 거예요. 상황을 감지하고 있고 묘연하고 침울한 불쾌감이 지속되는 이상 개선의 실마리를 찾아야 합니다. 나아지지 않으면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릴지도 몰라다. 이미 그러고 있는 중이고. 심장이 마치 끓는 냄비의 바닥 같은 느낌으로 유지되는 것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외부 자극을 억제할 수 있나. 외부의 자극이라는 게 있는가. 누적된 내면의 오염이 걷잡을 수 없이 넘치고 있는 것인가. 불안이라고 불러야 한다면 어떻게 도려낼 것인가. 불안을 적는다고 불안이 줄어들지 않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10대 때 처음 만난 애들과 주말 대낮의 영화관에서 관람했던 데이비드 핀쳐 감독의 세븐의 오프닝 시퀀스에서는 깨알 같은 수기로 가득한 일기장 장면이 나와요. 영화 내용에 의하면 그것은 연쇄살인자의 기록입니다. 그가 살해한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었고 그중에 영화에서 노출된 건 대중교통수단에서 마주친 한 남성에 대한 지독한 불쾌와 혐오감에 대한 기록도 있었어요. 연쇄살인자가 그렇게 엄청난 양의 기록을 한 뒤 기분이 나아지거나 상쾌해졌다면 굳이 의미와 과시를 부여한 중장기 플랜 하에 살인을 연재하듯 진행하지는 않았겠죠. 기록의 여부가 침울한 기분을 완화시키는데 얼마나 도움이 됩니까. 그저 이렇게라도 적어서 더 큰 폭력을 막았구나 정도로 위안 삼는 정도겠죠. 노화, 채무, 인간관계, 횟수를 세는 일조차 무색해진 낮의 대화, 수면 부족, 누적된 피로, 미래에 대한 무계획, 비교적 낮은 재정상태에 대한 조바심... 이런 것들 때문인가요. 이유를 찾는다면 이유가 있겠지만 그걸로 그만입니까. 한때는 과녁이 없는 허공으로 활시위를 당기는 행위에 대한 작은 쾌감을 느끼기도 했어요. 물론 지금의 불안과 다른 비유긴 합니다. 지금은 전소된 오두막집의 잔해를 둘러보며 화재 원인을 찾아보고 있지만 도무지 찾을 수 없는 상태이기도 해요. 원인을 모르니 다시 불길에 휩싸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먼저 휩싸이고. 결국 무지에서 오는 불안. 어디서 기인했는지 모른다는 점에서 더 확산되고 복잡해지며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 불안. 모두가 선생인 시대에 이런 글을 읽는 누군가는 어디서 보거나 누구에게 들었는데 그런 불안은 평생 안고 가야 하는 거래요, 아마추어도 베테랑도 다들 그런 불안을 안고서 불안과 친구가 되어서 불안과 동반하며 살아가야 하는 거래요... 어휴... 이럴지도 모르겠네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여정에서 처음 만난 괴물이 내 무릎에 앉아있는 걸 그저 받아들여야 하나. 불안과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이라도 활성화시켜야 하나. 불안의 나이, 부모님 병세, 가족력, 출신, MBTI, 좋아하는 미드, 음악 취향, 주말에 뭐 할 건지 이런 걸 물어보며 랄라라 휴게소도 같이 들러가며 호두과자라도 같이 까먹으며 놀아야 하나요. 모든 것은 언제든 끝나죠. 가끔은 가까운 좋은 것들을 제대로 관찰하지 못하고 놓친 채 불안에만 치중하여 기회비용을 날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초조해요. 세상 모든 운이 내 것인 적은 없었죠. 노력한 만큼 예상치를 얻은 것도 아니고. 좋은 것들은 대부분 좋은 것들이 내게 알아서 날아온 것들이었어요. 시도와 노력을 간과한 것은 아니지만 얼마나 벽과 치는 탁구처럼 들인 힘만큼 반사되어 돌아왔을까. 그런 건 거의 없어요. 운도 불운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는데 그중엔 자신도 끼어있어요. 거대하고 육중한 어둠이 목과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아요. 고통은 경험 후에 너무 지독해서 쉽게 자동 삭제 되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매번 어떻게 이렇게 낯설고 새롭게 느껴지나. 사실 농담이 그립긴 해요. 다정한 대화도. 둘은 섞여 있고 비슷해요. 여기까지 쓰다 보니 결핍의 실루엣을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모두 그립고 일부는 시간이 지나면 채워지지만 다시 비워지고 어떤 것들은 오래 비워지고 더 오래 채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내면을 이렇게 긴밀하게 해석하는 것도 드문 일이긴 하죠. 불안, 공허, 그리움, 연민. 넷은 섞여 있고 엉겨 있고 겹쳐 있어서 폐와 뇌와 혈관을 가득 채우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