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일생까지

폭스바겐 매거진. 2016년 6월

by Gl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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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자동차는 없었다. 태초에는 빛과 사람이 있었고, 이후 사람이 만든 자동차가 사람을 두발 달린 짐승에서 문명의 신기원을 이루는 지구 최강의 정복자로 군림하도록 이끌었다. 인류가 영토확장을 향한 욕망에 꽂혀 더 빠르고 강력한 이동수단 개발에 혈안이 되어 있을 때 자동차는 무기이자 보유 자체가 전략이었다. 몇 개의 큰 전쟁이 지나고 파헤쳐진 땅 위에 다시 매끄러운 길이 들어서면서 자동차는 보다 가까이 일상으로 스미기 시작한다. 전쟁도구에서 생활필수품으로. 자동차와 사람의 간격이 확 줄어드는 순간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자동차가 없는 일상은 상상할 수조차 없게 되었다.


어쩌면 반려동물보다 가까운 인간의 친구. 자동차가 이런 이미지를 갖게 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 브랜드는 단연 폭스바겐이다. 짧은 기간 동안 폭발적 성장을 이룬 자동차 산업이지만 물성은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차가운 금속의 차체와 해가 바뀌며 더해가는 첨단기기와 편의장치로 구성되어 있을 뿐이다.(물론 이것은 엄청난 진보와 노력의 소산이다.) 애초 인간과 다른 성분으로 이뤄졌음에도 자동차는 점점 인간을 닮아가는 인간처럼 느껴지는 대상이 된 배경에는 광고 캠페인의 비중이 결코 작지 않다. 사람들은 차고와 주차장에 있는 자기 집 차를 일상의 파트너처럼 표현하는 광고들에 많은 호감을 느꼈다. 그중에서도 폭스바겐의 광고 캠페인들은 자동차에 대한 이미지를 ‘인간적’으로 바꿔주었고 고객을 넘어 하나의 팬으로 열광하게 만들었다. 자신은 미디어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고? 한번 테스트해보자. 지금부터 소개하는 캠페인들을 경험한 후에도 폭스바겐 브랜드의 팬이 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1. Last Wishes

지난 2013년 8월 폭스바겐의 미니버스 콤비는 라스트 에디션을 끝으로 생산 중단을 발표했다. 세계 곳곳에서 오랜 팬덤을 이끌어온 원조 아이돌의 은퇴 선언과도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폭스바겐 콤비 라스트 에디션의 캠페인 필름 ‘Last Wishes’엔 그러한 아쉬움과 애틋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콤비가 어떻게 태어났고 어떻게 사람들과 같이 지냈는지, 살며 달리며 사랑하는 모든 순간에 함께했던 콤비가 팬들이 직접 찍은 사진들과 함께 재조명된다. 산과 들을 건너고 역사적 순간을 빛내고, 얼마나 많은 희로애락을 함께 했는지 보인다. 015B의 노래 중 한 구절이 떠오른다.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이 아니겠지요.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일 거야.” 지금껏 어떤 자동차의 생산중단 소식도 이토록 눈물겹지 않았다.


2. Companion

단순한 제품이 아닌, 인생의 오랜 동반자. 대다수의 브랜드들은 기능에 한정되어 있기를 원치 않는다.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최대한 오랫동안 고객의 곁에 머물며 삶을 함께 영유하는 것일 테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전 세계에서 폭스바겐만큼 동반자를 자처할 수 있는 브랜드도 드물다. 삶의 순간순간 가장 결정적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폭스바겐 비틀 안에 있던 어린 소년이 함께 앉은 소녀에게 좋아하는 감정을 느끼고, 청년으로 성장하는 동안 (폭스바겐 웨건을 운전하며) 길을 누비고, 결혼 후 컨버터블을 타고 신혼여행을 떠나고, 아이를 낳기 위해 다급히 (폭스바겐 SUV를 타고) 병원으로 향하고, 그렇게 폭스바겐과 함께 아버지가 되고, 다시 아이의 관점에서 폭스바겐과의 여정이 시작되는 것. 한 편의 영상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나와 우리의 삶, 그리고 폭스바겐의 모든 것.


3. Signs of Love

광고 안에서 자동차의 기능을 표현하는 방법은 쉽지 않다. 조작 화면과 짧은 카피로 전달하기엔 너무 설명적이다. 또한 그렇게 보여준들 누구도 재밌어하지도 기억에 남기지도 않는다. 폭스바겐의 방식은 어떨까. 버튼을 누르거나 화면을 터치하지 않아도 일정 거리 안의 손동작을 인식해 기능을 제어할 수 있는 Gesture Control의 특징을 전달하기 위해 필요한 건 남녀 두 사람뿐이다. 이들이 처음 만나, 누구나 쉽게 알아챌 수 있는 손동작을 통해 가까워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인사하고 사랑에 빠지고 필요한 생각과 감정을 전달하고. 인류의 영원한 숙제일 줄 알았던 관계와 소통의 문제를 폭스바겐은 손짓만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사람에게 그렇듯, 차에게도 인간적인 방식으로 가까워질 수 있다고 역설한다. 차와 친해지는 방법이 이보다 쉬울 수 있을까.


4. Prom Night

위트는 과장 없이도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다. 개그와 달리 극단적이지 않아야 하고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작용해야 한다. 이것이 성공할 때 브랜드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도 가장 거대한 존재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여기 여자 친구 아빠의 차(폭스바겐 티구안)를 얻어 타고 여자 친구와 함께 무도회를 가는 청년이 있다. 그의 조바심과 불안감은 안 봐도 블루레이다. 게다가 인종도 다르다. 가까워지려고 하면 급정거로 떨어뜨리고, 다시 가까워지려고 하면 급출발로 떨어뜨린다. 하지만 방해만 하는 것은 아니다. 코너링으로 몸이 기울어지는 것을 이용, 뒷좌석에 앉은 두 남녀의 손을 가운데로 로맨틱하게 포개 놓는다. 아빠가 운전대를 만지는 동안 둘은 서로를 만지게 된 상황. 폭스바겐 티구안은 거들었을 뿐이다.


5. The Forecast

1986년 아우디는 콰트로의 힘과 제동력을 표현하기 위해 스키점프대를 거꾸로 오르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20년 후 아우디는 다시 고민했고 외딴집에 거하는 한 노인과 함께 이야기를 시작한다. 폭설로 인해 홀로 연말을 보내야 하는 그의 쓸쓸한 표정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기상악화를 알리는 예보는 정성 들여놓은 식기와 요리를 소용없게 만든다. 테이블 조명이 꺼지고 그는 단념한다. 그때 눈부신 헤드라이트와 함께 문이 열린다. 추위를 뚫고 온 가족들의 표정은 환하고 여유롭다. 마당에 서 있는 여러 대의 아우디 차량. 역동적인 눈길 드라이빙 장면을 보여주지 않아도 아우디는 콰트로를 기꺼이 드러낸다. 이것은 악천후를 다루는 자동차의 힘을 넘어 가족과 가족을 잇게 하는 힘이라고. 인간을 고독에서 구출하고 어둠 속에 온기를 채우는 인간을 위한, 인간적인 힘이라고 묵묵히 전한다.

인간적인 광고 커뮤니케이션은 작위적이기 쉽다. 자동차 브랜드가 공익을 표현하기란 그만큼 쉽지 않다. 하지만 폭스바겐은 능수능란하다. 이것은 단발에 학습된 스킬이 아니다. 부품 하나부터 마케팅 과정 하나하나까지 자신들이 무엇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사용자, 즉 인간의 심리와 시간, 삶 전체를 통틀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충분히 숙고하고 이런 진심이 오랜 시간 켜켜이 쌓여 철학의 범주에 도달했을 적에 가능한 경지다. 옳은 것을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까지 드러내는 것, 그동안의 폭스바겐 광고들은 이것이 오랜 시간 동안 가능했음을 증명한다. 자동차에게 인간의 숨결을 불어넣는 것. 자동차의 기능을 지닌 인간으로 느껴지게 하는 것. ‘사람을 향합니다’는 과거 통신사 광고의 핵심 메시지였다. 이젠 폭스바겐이 주체가 된다 한들 전혀 이상하지 않다.


끝으로 폭스바겐의 미니밴 투어란 광고를 소개하며 글을 정리한다. 앞좌석엔 부모 뒷좌석엔 어린 남매들. Net Cam 기능이 있어 앞좌석에서도 뒷좌석의 상황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오빠의 장난으로 여동생의 얼굴이 케이크 범벅이 되고 이 장면을 Net Cam으로 지켜보던 운전석의 부모는 급출발을 통해 오빠 얼굴도 케이크 범벅으로 만든다. 깔깔깔 웃는 남매. 모른 척하는 부모들의 주먹 악수. 폭스바겐 스타일의 유쾌한 복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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