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젤의 도발

데이즈드. 2010년 10월

by 백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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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ADVERTISING FOR CONSUMERS


광고를 보며 웃는다, 광고를 보며 운다, 하지만 광고는 처음부터 당신에게 아무 관심 없었다.

BE STUPID. 2010 칸 광고제는 ‘바보들’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디젤 캠페인의 저 돌아이다운 기개들을 보라. 바보가 되라니. 30만 원을 호가하는 프리미엄 진의 광고라기엔 당혹스러움을 넘어 발칙함까지 느껴지지 않나. 이슈를 생성하기 위해 섹스와 폭력을 파격과 금기의 소재로 삼는 광고는 많았지만, 이처럼 터부시 되는 행위들조차 유머와 감동으로 승화시키며 대중과 평단의 환호를 이끌어낸 적은 드물었다.

사실 디젤의 이런 도발은 처음이 아니다. 계절이 바뀔 적마다 매번 키치적인 감수성과 기괴하고 혼란스러운 설정으로 극단적인 반응을 얻으며 브랜드가 가진 고유의 철학을 널리 알리는데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곤 했었다. 이번에도 역시 고정된 관념들과 과거의 가치관들을 모조리 뒤엎어버린다. 보수적 성향의 주류들과 그들에게 길들여진 군중이 지닌 저열한 계급의식을 호탕하게 비웃는다. 똑똑한 녀석들이 망쳐놓은 세상을 바보들이 뭉쳐 재건하겠다는 선동의 메시지로도 해석될 정도다. 디젤의 고향은 이탈리아 북동부의 작은 시골이지만 그들의 메시지는 국적과 국경의 한계를 무너뜨렸다. 마니아들이 디젤, 디젤 하는 이유가 다 있었다. 투철한 B급 정신을 향한 동참의 의미였을까? 매회 크리에이티브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던 칸은 디젤의 이번 캠페인을 옥외광고 부문 그랑프리로 선정했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가장 ‘아이러니한 판타지’들의 경합인 국제 광고제. 일정한 시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기상천외한 상업적 퍼포먼스들이 모여 브랜드 기여도와 창조성, 완성도 등의 기준을 통해 평가받는다. 마치 국제 영화제가 그렇듯, 수많은 관계자들이 한 곳으로 모이고, 세계의 광고인들은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광고업계의 바이블 중 하나로 꼽히는 <광고 불변의 법칙>를 통해 수상 여부와 마케팅 성과의 상관관계는 반비례에 가깝다고 주장한 전설적인 카피라이터 데이비드 오길비의 일갈도 있지만, 다양한 접점을 통해 전달되는 한 컷과 한 줄을 통해 소비자의 인식과 승부하는 광고의 입지는 어느새 대중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아 나날이 견고해지고 있다.

‘아이러니한 판타지’란 표현을 쓴 것은 그 시작이 고귀한 예술적 영혼의 발화를 위해서가 아닌 대부분 해당 기업과 단체의 이익 추구를 위한 상업적 광고들이라는 점에서다. 팔려고 만들고 알리려고 광고한다. 금전적 이익에 대한 기대 없이는 어떤 아이디어도 무의미하다. 쇼를 하는 것도(SHOW), 사람을 향하는 것도(SKT), 또 하나의 가족을 자부하고(삼성) 심지어 사랑한다는 말조차도(LG) 널리 알려 투자 대비 판매 수익을 더 높이 올리기 위해서다. MBC <뉴스데스크>의 클로징 멘트와 사극 <동이>의 오프닝 타이틀 사이를 메우는 찰나의 판타지들은 15초마다 끊임없이 교체된다. 웃고 감동하며 공감한 후엔 충성도가 쌓이고, 지성과 이성이 견딜 수 있는 구매욕구엔 균열이 생긴다. TV 앞에 가장 많이 몰리는 시간대를 정해 가공할 물량으로 쏟아붓는 메시지의 포화 속에서 설득되지 않기란 결코 쉽지 않다. 대중심리학의 천재, 괴벨스의 말이 5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여전히 무시무시한 건 그가 히틀러의 오른팔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거짓말도 반복하면 믿게 된다.”는 이 믿어지지 않는 얘기를 누구보다 우리 스스로가 경험을 통해 학습해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광고에 열광하고 신뢰하고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한순간이나마 그것이 전달해준 현실도피 이미지 때문이다. 소유에 대한 욕망은 전부터 도사리고 있었고, 광고는 말과 글로 꺼내지 못했던 이유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준다. 갖지 못한 자에게 소비의 정당함을 부여해주고, 이미 다른 -경쟁사의- 것을 가졌거나. 가질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이에게 도태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끝날 길 없는 욕망의 사다리를 오르고 있는 소비자에게 광고는 설탕이 잔뜩 묻은 도넛을 매단 줄을 당기며 유혹한다. 누군가는 쟁취하겠지만, 욕망은 허기와 같아 매번 빈곤 모드로 리셋되고 만다. 생산과 소비 사이를 잇는 뫼비우스의 띠, 광고는 이 게임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임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BE SM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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