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즈드. 2010년 11월
LOST IN FASHION WORLD
패션 광고는 무엇일까? 우리는 제대로 보고 있는 걸까?
‘패션’ 하나로 수많은 케이블 채널과 프로그램이 유지되는 요즘 같은 때에. “난 패션에 관심 없어.”라는 말은 “난 잘 먹고 –안 입고- 잘 자기만 해도 행복해.”라는 말과 같다. 동화책 유일의 스트립 퍼포먼스로 기록되는 ‘벌거벗은 임금님’ 같은 대인배가 아니라면, 어느 누가 무엇을 입을지 고민하지 않고 삶의 질을 논할 수 있나. 활짝 웃는 금발 모델이 프린트된 패션 매거진의 표지를 넘기기 전부터 신경이 곤두선다.
군중의 시선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는 일만큼 쾌락적인 일은 많지 않다. 패션 광고는 이러한 욕망을 활용한다. 모든 욕망은 현실의 한계를 뛰어넘지만 그중에서도 아름다움을 향한 욕망은 사막에서조차 옷차림을 신경 쓰게 만드니까. 패션 광고는 현재의 모든 흠을 가릴 투명망토를 제안하고 무지의 틈을 노려 의도된 정보를 노출함으로써 망설임과 결제 사이의 거리를 좁힌다.
인간의 인형화를 촉진시키는 모델들. 지구에 없는 선과 면으로 이뤄진 옷들. 시침 뒤에 소우주를 숨겨 놓은 시계들. 스위스에 비밀계좌를 가진 부호들을 위한 가방들. 이동이 아닌 감상을 위해 만들어진 듯한 신발들. 이곳에 균형은 없다. 평등은 없다. 평화는 없다. 남은 건 약탈과 저축 사이에서 궁리하는 빈자의 판타지뿐.
일부 패션 광고에서는 처연함이 느껴진다. 의도를 알 수 없는 표정과 움직임들, 포토샵의 흔적이 과감하게 남아있는 이미지들, 아무리 크게 키워도 읽히지 않는 브랜드 로고까지. 페이지는 빠르게 넘어가고 매장의 위치는 메모되지 않는다. 패션이란 원래 ‘상식적으로 판단하기 힘든 영역’이라는 명제 하에 이 광고는 오로지 해당 브랜드의 ‘열정적 지지자들만을 위한 것’이라는 추측을 더하면 이해 못할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잠재적 소비자로서 최소한의 논리와 당위를 요구하는 게 고결한 예술성에 흠을 내는 무례한 행동이 아니라면 조용히 묻고 싶다. 주목받지 못해 소멸하는 브랜드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 수백 벌의 코트를 팔아야만 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 광고는 소비자와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며 매출과 직결되는 가장 뜨거운 통로인데. 주목받지 못한 광고에게 변명의 여지는 없다. 물량이든 크리에이티브든 결과로 말해지는 법이다.
소비자들은 얼마나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을까? 얼마 전, 티아라쇼에서는 오리지널과 이미테이션의 로고를 서로 바꿔 달고 소위 ‘쇼핑 좀 한다’는 여자들에게 보여주었다. 여자들은 오리지널(이라고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이미테이션)을 보고 소재와 컬러와 품위와 자연스러움과 고급스러움을 말했고, 그 반대(실제로는 오리지널)를 향해 도저히 입을 수 없는 것이라며 폭언을 퍼부었다. 나중에 진실을 들었을 때의 그 당혹스러운 표정이란. 우리는 이들과 다른가?
매달 매거진을 장식하는 패션 광고들 중 로고를 서로 다른 것으로 바꾸어 놓았을 때 그것을 알아챌만한 감식안을 지닌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광고란 그저 그런 -대부분 눈에 띄지 못하는 나와 상관없는- 사진과 문구들의 집합일 수밖에 없으니까. 소비자와 광고. 찰나의 소통에 성공하지 못하는 건 단지 서로가 운이 없어서 만이 아니다. 성공한 광고 캠페인들은 하나같이 소비자의 욕구를 연구하는 데 가장 많은 공을 들인다. 쏟아지는 광고 덕에 매거진이 더욱 두꺼워지는 F/W 시즌. 옥석이 가려질 시간이 오고 있다. 어떤 패션 광고가 시선을 사로잡고 지갑을 열게 할 수 있을까? 정답은 다음 달 카드 명세서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