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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감 Dec 21. 2017

이야기의 시작

들어가기에 앞서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의 한 공장. 모든 일과가 끝난 불 꺼진 밤 10시의 사무실. 눈 앞에는 기초 영문법 책 한 권. 그때 나의 토익 점수 560점. 21살에 병역 특례병으로 이 공장에 들어와 2년 2개월 동안 일했다. 월급 100만 원 중 60만 원을 저축했다. 그렇게 1600만 원을 모으고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2011년 9월 캐나다로 떠났다.


무슨 큰 뜻이 있어서 떠난 건 아니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운 좋게 병역기간 중 돈도 많이 모았고 가정 형편도 괜찮았다. 부모님 역시 선뜻 다녀오라고 지원해주셨다. 2년 2개월간의 지긋지긋한 시골 공장 생활에 답답함을 느끼고 무작정 더 큰 세상을 보고 싶었다. 어학연수를 간다고 했을 때 주변의 만류도 적지 않았다. 워낙 실패한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외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서, 한국인 하고만 어울려서, 도서관에만 틀어박혀서 등 여러 이유와 핑계로 어학연수 후에 영어 한 마디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었다. 실제로 살아보니 그런 사람이 정말 많았다. 


캐나다에 도착하기 전까지 이러한 실패 사례가 '의지 없는 나약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들과 다르게 나는 반드시 완벽한 어학연수 기간을 보내고 돌아올 것이라는 자신에 차있었다. 캐나다에 도착한 첫날, 비로소 내 '자신감'이 '자만'임을 알았다. 채 하루가 되지 않아 지금 내 밤이 내 가족에게는 낮일 만큼 먼 나라에 왔다. 처음 본 집에서 처음 본 사람들, 처음 누워보는 불편한 침대, 창틈으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 알 수 없는 외로움과 서러움에 가슴 한편이 시렸다.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 굳은 결심을 하고 온 지 하루도 안돼서 내 마음은 물렁해졌다. 내가 의지 없고 나약하다고 생각하던 이들은 그저 보통의 사람일 뿐이고 나 역시 그랬다. 


첫날은 적막했고 가슴이 시렸다. 둘째 날은 조금 더 나아졌고 셋째 날은 그 보다 조금 더 나아졌다. 곧 원래의 쾌활함을 되찾고 외국 생활에 잘 적응해 나갔다. 1년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사람을 만났다. 지금의 아내도 그 시절 캐나다에서 만났다. 이 보다 값진 어학연수가 또 있을까. 5년이 다 된 지금에도 생생히 기억나는 순간이 여럿 있다. 그 기억을 글로 남겨 구체화하고 싶다. 또 혹여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기억이 희미해질 것을 대비해 글로 남기고 싶다. 내 글이 내 기억을 저장하는 일뿐만 아니라 독자의 마음에 무언가 일으켰으면 좋겠다. 무엇이던 좋다. 공감, 기쁨, 열정, 희망, 비판 그 어떤 것도 좋다. 내 글을 읽고 망설이던 어학연수를 결심하면 좋겠다. 이미 다녀온 자신의 외국 생활을 돌이켜 보며 글 쓰기를 시작하면 좋겠다. 내게 또 다른 외국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겠다. 


다양한 이야기를 써볼까 한다. 내 기억 속에 있는 모든 이야기를 꺼내어 정리할 생각이다. 쾌청한 밴쿠버의 여름 하늘, 한 달 중 20일 비를 쏟아내는 밴쿠버의 겨울, 아내를 만난 이야기, 돈 없어 울던 기억, 미국 교통경찰한테 잡힌 이야기, 영어 공부하는 방법, 어학연수에 적합한 성격 등 캐나다 생활이라는 주제 하나에 묶인 여러 가지 이야기를 써 내려갈 것이다. 


그럼, 이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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