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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우유 Jan 18. 2022

What We See, We Become

나이 서른셋이 되며 먹는 감정의 서른세 끼
#연대감



What We See,

We Become


 〈캡틴 마블〉이라는 영화가 나왔을 때쯤으로 기억한다. 우연히 주인공 브리 라슨Brie Larson이 캡틴 마블 코스튬을 입고 있는 어린 여자아이를 환한 미소로 바라보고 있는 사진을 보게 됐다. 비슷한 시기에 이런 기사도 접했다.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의 활약이 연일 보도되던 시기에, 여자 초등학생들이 ‘외교부 장관’을 장래 희망으로 꼽았다는 기사였다. 기사에선 이를 ‘이례적인 일’로 표현했다. 자라나는 여자아이들이 장관으로서의 강경화를 보지 못했다면 아마도 외교부 장관이 되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캡틴 마블〉이 없었다면 코스튬을 고를 때 갖가지 공주 드레스들만이 유일한 선택지가 됐을지도 모르는 것처럼.


 어느 가수는 독립서점을 꾸리는 일에 뛰어들어 자신의 큐레이션으로 책을 소개한다. 그의 서가에는 여성과 시, 비거니즘을 다룬 책들이 더러 꽂혀 있다. 생전 운동이란 것과 가까이 살지 않다가 마흔쯤 러닝의 맛을 알게 되었고, 러닝하다가 사 먹는 하드의 맛에 꽂혀 하루에 한 번씩 ‘오늘의 하드’를 인스타그램 피드에 소개하기도 했다.


 내가 아는 사람 중 말을 가장 맛있게 할 줄 아는 어떤 작사가는 기혼인데 자녀가 없다. 그는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 ‘저출산이 문제인데 왜 아이를 낳지 않냐’는 어느 꼰대의 핀잔에 ‘국가의 숫자를 위해 아이를 낳을 수는 없잖아요’ 하고 받아칠 줄 알고, ‘가슴이 따뜻한 여자가 좋다’며 은근슬쩍 성희롱성 드립을 날리는 출연자에게 ‘저도 중심이 선 남자가 좋다’고 위트 있게 반격할 줄 안다. 하고픈 일을 부업으로 시작했다가 부업에서 본업을 뛰어넘는 수입을 발생 시켜 본업을 그만둘 수 있었을 정도로 능력치 역시 탄탄하다.


 어린 나이에 자신의 글을 ‘구독’하게 하는 메일링 서비스를 시작한 작가도 있다. 그는 그 일로 학자금 대출을 상환했으며, 두툼한 책을 펴냈고, 그 책은 곧 날개 돋친 듯 팔렸다. 후속작과 더 많은 일감이 따라온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는 또한 비건인의 삶을 살며 동물권과 기후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을 전시해 세간의 관심을 환기하기도 한다.


 소셜 미디어 덕분에 알게 된 어느 PD도 있다. 그는 대기업에서 근무하다가 그 안에서의 삶은 본인이 원하던 것이 아님을 깨닫고, 알을 깨고 나오며 책을 한 권 펴냈다. 퇴사 후엔 실제로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하며 지속적인 글쓰기를 위한 모임을 만들기도 하고, 서로의 분노와 희망을 나누는 클럽을 만들어 여성으로서 연대하며 글쓰기를 지속할 수 있는 장을 열어주기도 한다. 사회 제도와 여성에 관한 본인의 글을 엮어 목소리를 내는 데도 주저함이 없다. 마침내 원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그는 치열하게 생업에 종사하는 오늘도 이 시대에 필요한 의제를 공유해 현실 감각을 또렷하게 새길 수 있게 도와준다. 누군가의 소원 없이도 그의 삶은 늘 지금처럼 치열하고 충만할 것임을 예감하게 한다.


 영국의 총리였던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된다What we think, we become고. 생각이 곧 말이, 말이 곧 행동이, 행동은 습관이, 성격이, 운명이 되기 때문에 생각이라는 초석을 잘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절대 우리가 생각하지 않은 대로는 될 수 없다는 말로도 바꿔 말할 수 있겠다.


 ‘What we see, we become.’


 앞서 말했던 ‘What we think, we become’이라는 문장을 비튼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보는 대로 된다. 우리는 우리가 본 것, 우리가 아는 것만 생각하게 되니까. 우리가 무엇을 보는지가 결국 우리가 살아갈 다양한 삶의 양태를 구성하게 될 것이다.


 소셜 미디어 번성의 순기능으로 다행히 우리가 찾아낼 수 있는 롤모델이 아주 많다. 비 유명인부터 유명인까지, 닮고 싶은 롤모델들은 도처에 깔려 있다. 비혼인 여성, 기혼이나 자녀가 없는 여성, 전문직 여성, 흔히 여성의 것이 아니라고 여겨졌던 직업을 택해 생존 중인 여성…….


 더 많이 보고 싶다. 닮고 싶은 여성들을, 내가 되어야 할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을. 내가 살아내야 할 남은 시간을 위해서. 그들이 곧 내가 말할 언어가 되고 그 언어가 내 세계를 확장하게 될 테니까. 내가 만날 수 있는 모든 여성들의 손을 붙잡고 권하고도 싶다. 우리 게을러지지 말고 롤모델을 찾아 나서자고. 그렇게 우리의 미래를 세공해 나가보자고 말이다.




* 조금 더 긴 버전은 이렇다.

Watch your thoughts, for they become words. Watch your words, for they become actions. Watch your actions, for they become habits. Watch your habits, for they become your character. And watch your character, for it becomes your destiny. What we think, we become. (생각을 조심해라, 말이 된다. 말을 조심해라, 습관이 된다. 습관을 조심해라, 성격이 된다. 성격을 조심하라, 운명이 된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된다.)

https://youtu.be/uZi0vLAhzgQ?t=45

해당 부분이 등장하는 구간은 45초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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