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화, 한새마, 박상민, 김유철, 홍정기, 정혁용, 박소해 지음 / 나
연극 전용 소극장 무대 한가운데서 시체가 발견된다. 공무원으로 일하며 연극 활동을 병행하던 젊고 잘생긴 남자가 피해자다. 유서가 발견됐으며 피해자가 죽음을 암시하는 전화 통화를 한 기록이 남아 수사 방향은 자살로 향한다. 한편 사건 보고서를 읽던 오 형사는 의심스러운 점을 발견하고, 피해자 주변을 탐문하기 시작한다.
<한국추리문학상 황금펜상 수상작품집 2022·제16회>의 수상작 <그날, 무대 위에서>는 형사과장이 시체가 발견된 연극 무대를 자세히 바라보는 데서 시작한다. 객석을 비추는 빛과 주검 위로 쏟아지는 푸른색과 보라색 빛, 피해자의 차림새와 주변에 흩어져 있는 유품들, 소극장에서 연극 무대로 향하는 계단과 동료 연극인들의 발걸음까지 선연하게 그려지는 묘사는 읽는 이가 마치 그 무대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올해로 16회를 맞이한 한국추리문학상은 그해 발표된 단편 추리소설 중 한편에 ‘황금펜상’을 수여해왔다. 2022년 수상작품집은 수상작과 우수작 등 총 7편의 소설이 저마다 소재와 개성이 달라 그해의 추리·미스터리 소설의 계열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 오히려 매력으로 다가온다. <그날, 무대 위에서>가 범죄 트릭을 깨나가는 추리 과정과 남성 피해자 주변 여성들 사이의 역전된 관계를 반전으로 심어두었다는 점에서 정통 추리소설의 묘미를 맛볼 수 있다면, <마더 머더 쇼크>는 컬트영화를 보는 듯한 독특함이 돋보인다. 산후우울증에 걸린 여성 화자가 분열적으로 쏟아내는 혼잣말은 독자조차도 아이의 생사 여부를 파악하기 어려워 충격적이다. 강제된 모성을 미스터리의 기제로 삼아 칼날로 칠판을 긁는 듯 뾰족한 공포감을 심어준다.
조선시대 의병을 주인공으로 한 역사 미스터리 <산>은 미시적인 개인사와 선 굵은 한국사를 수려하게 엮어낸 소설로 당장 영상화가 시급해 보인다. <무고한 표적>과 <무구한 살의> 역시 독자가 화자를 신뢰하기 어렵도록 플롯을 짜 궁금증을 유지시킨다. 캐릭터와 서사로 힘 있게 독자를 끌고 가는 7편의 수록작은 ‘서사가 지닌 힘’을 증명해내며 오랜만에 소설 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책속에서
너무 사는 게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은 견디며 살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에게는 찾아야 할 사람이 있었다. 내 생각이 맞든 아니든. 이제는 도망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결심을 굳히자 멀리서 장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쓰메 소세키를 읽는 소녀>, 28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