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 성해나, 예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고등학교 교사 곽은 고전 읽기 수업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독서를 통해 보편적인 교양과 바람직한 인성을 가르치고 싶어 한다. 고전을 열심히 읽을 뿐 아니라 마르크스에 대해 설득력 있는 논술을 써내는 은재 같은 우등생은 곽에게 빛과 소금 같은 존재다. 수능 시험에 나올 문제집 풀이가 아닌 독서를 통해 청소년의 인격 함양을 꾀한다는 점에서 곽은 좋은 선생님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독자로서 곽을 완전히 지지하긴 어렵다. 그가 무지한 학생들을 향해 뇌까리는 속마음이 이중적이기 때문이다. 문학과지성사에서 계절마다 세편의 소설을 선정해 출간하는 <소설 보다> 시리즈의 2023년 겨울편에 수록된 김기태의 <보편 교양>은 이처럼 지극히 평범한, 보편적인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한다.
<소설 보다> 시리즈는 단편소설 다음에 작가의 긴 인터뷰를 수록하는데, 김기태 작가는 일반적인 소설에서 주인공으로 다루는 문제아나 체제 밖 탈주자가 아닌 체제에 완벽히 적응한 선생님이나 모범생 은재를 통해 보편적인 인물들의 지극히 현실적인 복잡성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한편 성해나의 소설 <혼모노>의 주인공은 박수무당 문수다. 문수가 모시던 장수할멈이 어느 날 어린 ‘신애기’한테 옮겨가버리며 문수는 갑자기 신을 잃어버린다. 점을 보러온 사람들에게도 아무것도 예지해주지 못한다. 할멈을 극진하게 모셨으나 하루아침에 직업을 잃게 된 것과 마찬가지인 그는 할멈의 말대로 더이상 ‘혼모노’(진짜)가 아니다. 성해나의 <혼모노>는 무당 세계를 사실감 있게 그릴 뿐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질시를 굿판의 칼춤으로 승화시키며 한편의 영화적인 이미지를 완성시킨다.
예소연의 <우리는 계절마다> 역시 자기 의지로 삶을 진척시킬 수 없는 아이들의 무구함과 이유 없이 고장나버리는 삶의 슬픔을 그렸다. 작가들은 자신이 창조한 인물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가혹한 시련을 줘 미안하다고 인터뷰에서 밝히지만, 사실 이 세 소설의 미덕은 인물들이 사실적이면서도 ‘혼모노’라 독자들이 마음을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올겨울에도 <소설 보다>는 여전히 이 작은 소설집의 가치를.
책속에서..
“언젠가부터 ‘가르치다’라는 말의 뉘앙스가 나빠졌지요. ‘왜 날 가르치려고 해?’ 같은 문장만 떠오릅니다. 그런데 가르치는 게 그렇게 나쁜가요. 서로 가르치고 배우고 영향력을 주고받고 함께 변화하지 않고서 어떻게 더 좋은 세상을 만들까요.” 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