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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송희 Mar 28. 2024

절망 속에서 할 수 있는 일

<리빙: 어떤 인생>과 <사랑은 낙엽을 타고>


“앞으로 남은 시간이 6개월, 길어야 9개월입니다.” 검진 후 반신반의하며 최종 통보를 들으러 간 자리에서, 의사가 이렇게 말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우리의 독자가 10대라고 가정해 본다면, 아마도 죽음으로부터 가장 멀리 있는 연령임에도 죽음을 가장 자주 떠올리는 시기일거라고 추측한다. 아니, 적어도 과거의 나는 그랬다. 자주, 죽음을 상상했다. 내일 엄마가 죽는다면? 나는 어떻게 살까. 혹은 내가 죽는다면, 어떨까. 나는 편안해질까, 가족들은 나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2024년이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이 희망찬 새해 벽두에 괜히 어두침침한 이야기를 꺼내서 미안할 따름이다. 그렇지만 1초 정도 상상을 해주시길. 시한부 통보를 받았을 때, 나는 남은 시간을 무엇으로 채우고 싶은지 말이다.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리빙: 어떤 인생>의 주인공 윌리엄스(빌 나이)는 적어도 70대는 넘어 보이는 초로의 신사다. 시청 공공사업과에서 일하는 그의 일상은 단조롭고, 정확한 루틴에 따라 돌아간다. 매일 아침 런던으로 향하는 기차에 오르고 정확한 시간에 출근해 산처럼 쌓인 서류 더미를 검토한다. 1950년대 런던이 배경인 이 영화는 윌리엄스와 그의 동료들이 '영국 신사'다운 정장(둥근 모자 필수)을 입고 기차를 타고 시 외곽에서 런던 시청으로 출근하는 아침 풍경으로 시작한다. 영화는 1.33:1의 화면비와 50년대 영국의 거리 풍경을 고전 영화 같은 앵글로 담는데, 이내 뜨는 타이틀 폰트 역시 옛날 영화를 재현한 듯 하다. <리빙: 어떤 인생>은 1952년작 구로사와 아키라의 <이키루>를 가즈오 이시구로가 각본과 제작을 맡아 만든 영화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부커상과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한 영국 작가인데, <이키루>를 처음 봤을 때부터 이 영화를 영국 버전으로 제작하고 싶었다고 한다. 주인공이 죽음을 선고받으며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지만, ‘리빙’과 원작 ‘이키루’는 “산다”는 뜻을 품고 있다. 죽음을 마주하고서야 산다는 것의 의미를 새로이 발견하게 되는 이야기라는 것을, 제목에서부터 어림짐작할 수 있다. 윌리엄스는 걸음걸이, 꼿꼿한 자세, 흐트러짐 없는 정장에서부터 얼마나 완고하고 재미없는 사람인지 드러나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조퇴를 하고, 무단으로 결근을 한다. 의사로부터 시한부 선고를 받은 다음 날, 윌리엄스는 회사에 출근하는 대신 저금을 찾아서 바닷가 휴양지로 향한다. 거기서 처음 만난 젊은 작가와 어울려 술을 마시고 유흥도 즐겨 본다. 난데없는 죽음의 선고 앞에서 생전 해보지 않았던 일탈을 시도하는 것이다. 


아내를 일찍 여의고 홀로 아들을 키웠지만, 아들과 며느리는 윌리엄스가 속마음을 털어놓을 여지조차 주지 않는다. 며느리와 아들이 “이 집이 답답하다”며 분가하고 싶다고 말싸움을 하는 것을 어두운 방에서 엿듣는 그의 표정은 암담하기보다는 쓸쓸해 보인다.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도 없고, 붕 떠버린 시간을 함께 보내고픈 사람도 없다. 며칠째 무단결근을 하지만 갈 데도 할 일도 없어 공원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직장 동료 마가릿에게 함께 영화를 보러 가자고 부탁을 한 윌리엄스는 회고한다. “어쩌다 (인생이) 이렇게 됐을까?” 시청 공무원으로 성실하게 살아온 그의 삶이 틀린 것일까. 기계적인 일상을 살아가던 남자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갑자기 삶의 의미를 찾아 떠나는… 그런 이야기를 우리는 이미 숱하게 봐왔다. 윌리엄스는 마가릿에게 이렇게 말한다. “놀이터에서 부모님이 부르기만을 기다리며, 행복하지도 슬프지도 않은 애처럼 그렇게 살까봐 두렵다”고.      



그래도 살아간다

윌리엄스가 즐기지 못한 인생을 통탄해하며 훌쩍 여행을 떠나거나, 낯선 이와 사랑에 빠지거나, 어린 시절의 꿈을 찾아 가수에 도전하는, 그런 내용은 <리빙: 어떤 인생>이 지향하는 바가 아니다. 빌 나이는 위엄있는 연기로 남은 생을 찬찬히 채워 나가는 윌리엄스를 그려내며 따듯한 여운을 영화 곳곳에 뿌려놓는다. 그에 반해 원작에 영향을 준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죽음이 다가오는 시간을 층층이 쌓아 생의 두려움을 탐색하는 소설이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과 <이키루>, 그리고 <리빙: 어떤 인생>에 이르는 일련의 이야기가 직시하는 죽음은 살아온 생을 부정하고, 새로운 감각과 자극으로 남은 시간을 빠듯하게 채우는 것이 아니다. 한 달 넘게 무단결근을 하던 윌리엄스는 마가릿과의 대화 속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고 다시 출근을 한다. 여기서 잠깐, 매일 지겹게 출근해서 서류에 파묻혀서 재미없고 의미 없이 도돌이표처럼 살던 일상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물론, 그게 다가 아니다. 윌리엄스는 남은 시간을, 부서끼리 서로 책임을 회피하다 시간 낭비만 하는 고답적인 관료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남은 생을 충실하게 채워 나간다. 살아온 삶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중 미뤄왔던 것을 ‘해야만 하는 일’로 바꿔내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정지의 상태를 앞두고 과거를 회고하며 새로운 내가 되기보다는, 현재에 머물며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는 것. 윌리엄스는 전쟁 후 폐허로 남아 위험지역이 된 동네 공터를 아이들을 위한 공공 놀이터로 바꾸는 작업을 '필생의 업'으로 매달린다. 지루한 시청 공무원의 삶이 뭐 어떤가. 


잘못된 것은 그의 매일이 아니라, 일을 대하는 태도, 관성대로 내일이 또 올 거라고 생각하고 하염없이 쌓아만 뒀던 서류철 속에 있었음을 발견한 것이다. 관성대로, 답답한 관료주의에 얽매여 공공 놀이터 공사를 계속 반려하는 상사에게 화가 날 법도 하건만 윌리엄스는 끈질기게 상사를 설득한다. 반복되는 거절에 화가 나지 않느냐는 동료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화를 낼 시간이 없거든요.” 내 힘으로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사람이 주체적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은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에 존재한다. 윌리엄스가 신입직원에게 남긴 유서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무엇을 위해 매일 애써야 하는지 목표를 찾기 어려우면, 우리의 작은 놀이터가 완성됐던 순간에 느꼈던 소박한 보람을 떠올려보기 바랍니다.”     




이런 삶에도 희망이 있을까

<리빙: 어떤 인생>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사랑은 낙엽을 타고>을 엮어서 보려 한다. <리빙: 어떤 인생>의 줄거리를 한 줄로 요약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사랑은 낙엽을 타고>은 짧은 소개가 수월치 않은 영화다. 일단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우리가 그간 봐왔던 로맨스 주인공들과 삼억광년쯤 멀리 떨어져 있다. 여기에는 불멸의 도깨비도 없고, 별에서 온 덕분에 미래를 볼 수 있어 수조원의 재산을 축적할 수 있는 외계인도 없다. 무한의 힘을 가진 악마나 재벌남도 등장하지 않는다. 남자 주인공은 공사장 인부이고 여자 주인공은 슈퍼마켓 진열대를 정리하는 계약직 사원이다. 그마저도 곧바로 해고되어 영화 내내 주인공들의 직장은 여러 차례 바뀐다.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복귀작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감독이 과거에 천착해왔던 노동 계급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매우 미니멀한 세트, 무표정한 인물들과 최소한의 대사로 이상한 멜로드라마적 감흥을 불러오는 영화다. 


슈퍼마켓에서 일하는 안사(알마 포이스티)는 유통기한이 지난 샌드위치를 챙겼단 이유로 해고 당하고, 홀라파(주시 바타넨)는 공사장에서 몰래 술을 마시다 해고된다. 위험천만한 공사장에서 홀라파의 음주보다 더 위험해 보이는 것은 허술한 안전 장비다. ‘금연’이라고 크게 쓰여진 벤치에 앉아 당당히 담배를 피는 홀라파에게 동료가 “그러다 가스 터지면 죽는다”고 경고하자 홀라파는 “그 전에 폐암으로 죽겠지”라고 일갈한다. 삶에 그다지 애정이 없어 보이는 무표정한 두 인물은 노래방에서 처음 만나고, 또 한 번의 우연으로 술집 앞에서 마주친다. 두 사람의 두 번째 만남에서 안사는 임금을 받지 못함은 물론 또 한 번 해고된다(안사가 주방보조로 일하던 술집 사장이 경찰에 체포된다). 두 사람은 쉬지 않고 일함에도 빈곤하다. 안사는 전기세가 없이 온 집안의 불을 끄고, 며칠째 식사도 하지 못했다. 안사의 허기를 눈치챈 홀라파가 “커피를 사겠다.”며 “배고플테니 빵도 먹으라”고 제안한다. 이게 이 둘의 첫 데이트다.     

 


사랑을, 그럼에도 사랑을

남녀 주인공 모두 얼굴에서 감정을 읽을 수 없고, 좀처럼 웃는 법이 없는 이 영화에서 로맨스는 다소 뜬금없이 인물들 사이로 난입한다. 안사와 홀라파가 왜 서로에게 호감을 느꼈는지는 영화에서 중요하지 않다. 쉬지 않고 일하고, 성취 없이 고된 일을 하면서도 생을 굳건하게 살아가는 두 사람이 우연히 마주치고 함께 영화를 보러 간다. 영화가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옆에 있는 사람이 좋아서 웃음이 새어 나오는 그 순간. 무미건조하고 즐거운 일이라곤 도통 없는 괴로운 인생에서 설렘이 피어난다. 첫 데이트에서 영화관까지 간 두 사람은 연락처를 주고받지만, 안사의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홀라파는 홀라당 잃어버린다. 영화 속 달력에 2024년이라는 숫자가 없었다면 관객은 이 영화의 배경이 핀란드의 80년대쯤 되는 것으로 착각할법한 설정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전화번호를 쪽지에 적어주고 그걸 잃어버려서 엇갈리는 남녀라니. 


서로의 이름조차 모르는 두 사람은 다시 마주치기 위해 영화관 앞을 하릴없이 서성이는 수밖에 없다. 휴대폰에 바로 저장을 하거나 인스타그램 DM을 나눌 것이지! 카메라가 안사와 홀라파의 집, 일터만 비출 때에는 시간적 단서를 좀처럼 찾기 어렵다. 고전적인 기법으로 카메라는 움직이고, 감독이 80년대 대표작을 만들던 시점처럼 극을 전개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영화관에도 고전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다. 카메라가 인물이 아닌 핀란드의 고층빌딩을 비출 때에서야 사뭇 익숙한 2024년 도심 풍경이 정체를 드러내고 이 영화에서는 그 현실성이 불협화음처럼 다가온다. 당연하지만 안사와 홀라파에게는 휴대폰이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소통하고, 서로를 잃어버렸을 때조차 SNS나 링크드인을 뒤지는 대신 함께 갔던 장소들을 되짚어간다. 


어찌된 일인지 안사의 일자리는 계속 더 열악해진다. 슈퍼마켓 직원에서 술집 주방보조로, 위험한 금속공장 청소부로. 이 영화가 비참한 주인공의 현실을 보여주면서도, 완전히 절망 속에 침잠하지 않는 것은 인물들이 절망 속에서 비굴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불안정한 일자리와 빈곤 속에서 안사와 홀라파가 고통을 표현하지 않고 고용주 앞에서도 당당한 것이 이 영화의 낭만적 무드와 잔잔한 웃음을 견인한다. 특히 안사는 누구에게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임에도 되려 다른 이를 돕는다. 공장 앞에 버려져 안락사 처지에 놓인 개를 입양하고, 유통기한 지나 버리는 우유를 가져가도 되냐고 묻는 홈리스 청년에게 우유를 나눠 준다. 안사가 따뜻한 품성을 가져서가 아니라 그게 인간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도리라고 믿는 것이 이 영화의 주된 정서다. 안사와 홀라파는 절망 속에서도 연애를 하고, 서로에게 완전히 기대지 않는다. 꼿꼿한 자세로 주어진 삶을 살아가고, 다만 나란히 서서 걷는다. 라디오에서는 끝없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사망자 뉴스가 들려오고, 오늘 먹을 빵이 없고 해고는 당했을지언정, 이 절망적인 세상에서 사랑만이 희망이라고 영화는 또박또박 힘을 주어 말한다. 


하나는 영국의 초로의 공무원이 주인공이고 또 하나는 핀란드의 하위계급 연인이 주인공이다. 이 두 영화의 공통점이라곤 현대의 영화임에도 고전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감흥을 불러일으킨다는 것뿐이다. <리빙: 어떤 인생>은 지금 바로 이 순간을 충실히 살라고, 오늘 하루의 최선이 모여 인생이 된다고 말한다.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절망적인 세상에서 불안해하고 비굴해지지 말라고, 세상이 돌멩이 취급해도 나는 나인 것으로 충분히 가치 있다고, 당신 옆에는 동료가 연인이 서 있을 것이고 우리가 서로를 돌본다면 희망은 있다고 말한다. 새로 갱신된 1년 앞에서, 우리가 새겨야 할 모든 것이 이 영화들에 있는 것 같다.   

   

함께 읽으면 좋을 책

<리빙: 어떤 인생> -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함께 들으면 좋을 음악

<사랑은 낙엽을 타고>- 이브 몽땅(Yves Montand, Ivo Livi) <고엽>(Les Feuilles Mortes)


*고교독서평설 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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