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구독'중

콘텐츠 생산자와 소비자가 '매체' 없이 직접 만나는 구독 시스템에 대하여

by 김송희

중학생 때 나는 윙크와 윙크 동생 밍크, 그리고 파티를 구독했다. 만화 잡지였는데 한달에 두번 1일과15일 그것이 발매되는 날에는 문구점에서 그것들을 들춰보다가 집에서 하루 이틀 기다리면 받아볼 수 있었다. '구독'을 하면 잡지를 며칠 더 늦게 받아보는데도 '밍크 친구들'이라고 불리며 잡지의 일원이 되는 것이 좋아 구독을 유지했다. 물론 구독자에게만 주어지는 부록들(일러스트 책받침이나 엽서, 문구류)도 매혹적이었지만. 이후 구독한 것도 주로 잡지였다. 고등학생 때에는 키키나 에꼴을, 대학 때에는 시사 주간지와 드라마틱이라는 이름의 TV매거진을 구독했다. 쓰고 보니 과거 구독했던 잡지들 중 상당수는 지금 휴간이거나 자취를 감췄네. 아 슬퍼라.


캡처.PNG 일러스트_조예람

'구독'이라는 말은 신문이나 책, 잡지를 사 읽는다는 의미가 있음에도 지금은 유튜브에서 더 자주 쓰인다. 넷플릭스 월 정액결제를 하는 것도 구독이라고 하던데, '이 컨텐츠에 관심이 있어서 돈을 내고 정기적으로 보는 게' 요즘 시대의 정기구독의 의미가 된 모양이다. 나 역시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고, 넷플릭스도 결제하고 있지만 매일 받아 보는 정기구독 콘텐츠가 따로 있다. 매일 메일로 글이 도착했다고 알림이 뜨면, 신이 나서 메일함에 들어간다. 우우편함이 아닌 메일함에 꽂혀 매일의 메일링 서비스, 이랑의 '앨리바바와 30인의 친구친구'와 소사프로젝트의 '매일마감'을 나는 구독하고 있다.


이런 구독 시스템이 낯선 분들을 위해 조금 설명하자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드는 콘텐츠 생산자가 구독자를 SNS로 절찬 모집하고, 구독자에게 구글폼을 열어 글을 받아 볼 메일 주소와 입금자명을 등록하게 한다. 구독 의사가 있는 사람은 계좌입금이나 페이팔과 같은 결제 시스템으로 구독료를 내는데 보통 1만원 내외의 금액이다. 이후 생산자들이 한달동안 (거의 매일)부지런히 메일로 콘텐츠를 보내주는 서비스다. 대표적인 것이 '일간 이슬아'가 있고, 이후 구독 프로젝트가 확산되어 지금은 여러 개인 창작자들이 구독 서비스 운영한다. 김현진 작가나 정가영 감독처럼 개인이 혼자 글을 써서 콘텐츠를 배송하는 프로젝트가 있는가 하면 내가 구독하는 소사프로젝트와 앨리바마와 30인의 친구친구는 여럿이서 콘텐츠를 함께 생산한다. 특히 앨리바마와 30인의 친구친구는 30일 동안 글을 쓰는 사람이 다르다. 영화감독이자 음악가이자 수필가이기도 한 이랑이 구독자 모집을 알리고, 메일링하고 있지만 매일의 콘텐츠 생산자가 달라 여러 명의 다양한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 제작하는 서비스답게 메일 상단에는 '앨리바바와 30인의 친구들'만의 CM송도 함께 배송된다. 이랑의 1집 앨범에서 <너의 리듬>과 <욘욘슨>을 좋아했던 나는 그와 닮은 앨리바마 CM송을 들으며 즐거이 글을 읽는다. 콘텐츠의 성격도 다양해서 때로는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과 글이, 때로는 낭독 오디오북이, 어느 날에는 소설이나 시와 같은 문학이 배달되기도 한다. 물론 이런 메일링 구독 서비스의 기본이 되는 글은 주로 에세이이다. 나는 이것들을 받아보면서 ‘매일’ 나 아닌 누군가의 일기장을 받아보는 느낌을 받는다. 이 일기장은 사적이지만 훨씬 보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러스트레이터 이다의 소사프로젝트 '매일마감'은 좀 더 소수의 친구들이 모여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함께 프로젝트를 하는 친구들은 원래 '존잘모임'이라는 스터디 그룹의 일원이었다고 한다. 원래 일 때문에 만났지만 '우리 이런 거 해보면 어떨까'라고 한 친구가 제안하자 ‘나도 그런거 하고 싶었어’라며 모두 참여하게 되었다. 이다가 만화를 그리고 편집하고 PDF를 제작하며 친구인 모호연, 깅, 지민이 글과 그림을 함께 그린다. 콘텐츠는 평소 시키는 사람이 없어서 하지 않았던,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어떤 요일에 누가 연재를 할지 회의로 정했다. 주제가 서로 겹치지 않게 조율을 한 후 코너가 빌 때에는 외부 필자를 섭외해 원고를 받는다. 트위터에서 소사프로젝트의 구독자 모집글을 본 나는 당시 마시던 커피를 모니터에 뿜을 뻔 했는데, 마감 노동자에게 '매일마감'이 얼마나 무모한 도전인지 알고 있기에 이들이 마감을 어길 시 행하겠다고 내세운 벌칙이 너무 무섭고도 웃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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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구독자가 신문사나 잡지사가 아닌 개인이 하는 프로젝트에 한달에 '만원'을 입금하고 구독을 하려면 신뢰가 필요하다. 입금을 했는데 글이 배달 안 되고 펑크를 낸다거나, 콘텐츠 대신 '죄송합니다. 오늘은 몸이 안 좋아서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라는 사죄의 메일이 와있으면 어쩌나. 그러니까 이 구독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생산자에 대한 신뢰가 바탕에 있어야 한다. 구독자가 입금을 하고 구독 시스템에 참여하는 순간 이들은 곧 소비자가 된다. 그래서 '소사 프로젝트'는 마감을 못 지킬 시 '자한당(자유한국당)에 5만원 입금(정치기부)! 엉덩이로 이름쓰기 영상 만들어서 배포하기' 라는 무시무시한 벌칙을 내놓았다. 실은, 이들이 마감을 지키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자한당에 5만원 입금'이라는 상징적이면서도 풍자적이고 웃긴 벌칙 덕분에 더욱 이 프로젝트를 애정하고 믿고 구독할 수 있게 되었다. '매일마감'은 한달의 마감이 끝난 후 소사프로젝트의 친구들이 모여서 라디오를 녹음하고 팟캐스트로도 올리는데, 들어 보니 이 벌칙은 친구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자기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오늘 수영 안 가면 자한당 5만원'이라고 정한 후 아무리 힘들어도 꼬박꼬박 운동을 가게 된 친구를 보고 '우리도 저런 강제성을 가지고 매일마감을 하자'고 약속을 했다고. 편집장인 이다에게 이런 구독 시스템을 시작하게 된 이유를 물으니 "클라이언트에게 작업을 받아서 마감을 하는 경우 창작자 의도보다는 기획자 의도가 강하게 들어가요. 저도 일을 할 때 자아 스위치를 끄고 작업을 하거든요. 외주를 받아서 작업을 하는 것이 생계 수단이죠. 하지만 메일링은 중간에 그 무엇도 없이 직접 독자에게 전달하니 그 방식이 매력적이었어요. 작가가 시도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시도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나 역시 글을 쓰고 마감을 하는 노동자이기에 이들이 매일 마감을 하고 콘텐츠를 만들어 구독자에게 직접 배송하는 시스템이 얼마나 힘든 작업인지를 알고 있다. 그래서 메일함에 성실하게 들어오는 이랑과 이다의 글을 보면서 감탄하며 용기를 얻는다. 이야기의 힘을 믿는, 친구들이 모여서 만드는 따뜻한 글과 그림을 아침마다 열어 보며 만원이라는 구독료와 콘텐츠의 상관관계 혹은 가성비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손에 잡히지 않는, 인쇄되었거나 DVD로 제작하지 않은 물성 없는 콘텐츠에 우리는 얼마의 돈을 지불할 수 있을까. 브런치나 블로그에서 이미 무료로 좋은 글을 볼 수 있고, 유튜브에 무료로 볼 수 있는 영상 콘텐츠가 이렇게나 넘쳐나는 세상에 내가 매일 받아보는 글에 한달 만원을 쓰는 것은 헛된 소비일까.


매체의 청탁이 없어도 생산자 스스로 판을 벌리고 ‘누가 찾아주지 않아도 상관없어! 내가 직접 만들어버리자!’의 패기가 느껴지는 씩씩한 기획들, 더구나 여성이 주체가 되어 운동하거나 일하거나 매일 가족이나 친구 관계에서 겪는 에피소드를 엮어낸 마감노동자들의 글을 보면서 나는 매번 공감하고 만다. 지난달에 급히 은행에 달려가 이 두 개의 연재에 입금을 한 내 머리를 쓰담쓰담해주며 오늘 아침도 기꺼운 마음으로 배달된 글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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