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개굴작가 Dec 13. 2020

재택근무 중 발톱을 깎았습니다

월요병이 치유되었습니다.


지난 월요일 아침, 출근을 하려고 신발을 신는 순간 알림이 하나 도착했다.

"근무하시는 층에 코로나 검사자가 있으니 금일은 재택근무해 주십시오."

꺄!! 나는 아무렇게나 신발을 벗어버리고 안방에서 머리를 말리던 남편에게 쪼르르 달려가 소식을 알렸다.

"코로나 검사자가 있다는데 그렇게 좋아해도 되는 거야?"

맞다. 나는 몇 초간 눈을 감은 뒤, 코로나 검사자를 위해 기도했다. 꼭 음성이길 바라며, 감사하다고.

말로만 듣던 재택근무를 나도 해보는구나. 남편은 부러움 담긴 눈흘김을 하며 뒷모습도 우울하게 현관을 나섰다. 나는 바로 갑갑한 브라를 벗어던지고 훌렁한 맨투맨 티와 수면바지 갈아었다. 귀걸이 반지까지 빼버리고 머리도 질끈 묶었다. 해방감이 느껴졌다. 거울 속에 웃음 짓고 있는 나를 쳐다보았다. 영락없는 퇴근 후의 모습이었다.


재택근무라니. 검사자께는 송구하나 나는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월요병은 말끔히 사라졌고, 나는 유유히 커피포트에 물을 끓였다.

집 컴퓨터로 회사 망에 접속했다. 메일이 쌓여있다. 재택근무라고 해서 일이 줄어든 건 아니었다. 하지만 번거로운 출퇴근 길이 없어지고, 남들 시선 의식해서 예쁘게 화장하고 옷을 입을 필요가 없어 그것만으로 많은 수고로움이 덜어졌다.



재택근무 중 발톱을 깎았습니다.


대면으로 쉽게 소통할 수 없다 보니 전화 통화를 하거나 메일을 자꾸 써야 하는 귀찮은 구석이 있었다. 표정과 말투를 모른 채, 텍스트만으로 업무 지시를 받다 보니 배경과 진의를 추측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자꾸 와서 말 시키는 동료도 없고, 오다가다 눈에 보이는 김에 쉽게 일을 던지는 부장님도 없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소소한 장점들이 있었다.


상사 눈치, 동료 눈치 안 보고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다.

메일을 쓰다가 발톱이 거슬려서 바로 그 자리에서 쭈구려 앉아 깎아버렸다. 점심을 먹은 후 시원하게 트림을 하고, 배가 꾸룩 꾸룩 신호가 왔을 때 옆 칸에 누가 있을까 봐 조마조마하지 않고 집에서 시원하게 일을 볼 수 있다. 회사라면 자칫 인사팀에 고발될 만한 문제지만, 집에서는 '직장인 매너'를 신경 쓸 필요가 없다.


회사에서 점심을 먹은 후에는 책상에 엎드려 낮잠을 잤다. 소화가 안 되는 건 물론이고, 혹시나 정신 줄 놓고 자는 내 얼굴을 남들에게 들킬경이 쓰인다. 하지만 집에는 누울 자리가 있다. 피곤하면 잠시 침대에 누워서 모바일로 업무를 확인하면 된다. 또 옆사람 신경 안 쓰고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일을 할 수 있다.


물리적인 출퇴근이 없으니 일상생활과 업무가 분리가 안 되는 느낌이긴 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확실히 덜 피곤하다는 것이다!  눈치 보는데 쏟는 에너지가 상당했을까? 똑같은 시간을 일했는데 확실히 피로가 덜하다.


물론 워킹맘들의 사정은 다르다. 아래 사진이 모든 걸 말해준다.





업무 집중력을 잃지 않도록 본인이 컨트롤을 할 수 있다는 전제 하, 재택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대안임이 틀림없다. 사회적 매너를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일하는 환경. 주 1회 정도는 정착되길 바란다.

재택근무 첫 경험, 나는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인스타그램을 지우고 브런치를 시작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