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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굴작가 Dec 20. 2020

심신 미약? 함무라비 법전이 필요한 시대

"심신 미약이니 우발적이니 이것저것 핑계 대며 감형받을 생각하지 마라. 까불이로 벌 달게 받을 때까지 끝까지 가겠다"
"우리 할머니가 심신 미약이었다. 진짜 심신이 미약해서 소 잡는 것만 봐도 쓰러지는 분이었다."
"사람이 화가 나면 길가다 차바퀴를 발로 차는 게 우발적인 거다. 우발적으로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 <동백꽃 필 무렵> 용식이 대사  -


2019년 가을~겨울에 걸쳐 방영된 KBS 40부작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은 시청자들의 엄청난 사랑을 받으며 연말 연기대상에서 각종 상을 휩쓸었다. 탄탄한 스토리와 가슴을 후벼 파는 명대사들이 인기 비결이었는데, 연쇄살인범 까불이를 검거하는 과정에서는 심신 미약 과 우발성을 앞세워 범죄자의 인권을 우선시하는 법의 문제점을 지적해 사이다란 평이 있었다.


진짜 심신 미약자는 누구인가

특히 심신 미약은, 얼마 전 출소한 조두순 사건으로 과연 음주로 인한 심신 미약 인정이 타당한가에 대한 논란에 불을 지폈다.

심신 미약(心神微弱)이란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를 말한다. 이에 따라 범행을 저질렀을 당시, 정신질환 혹은 술에 취한 상태라면 의사 결정 능력이 저하되어 책임능력이 떨어진다고 보아 대한민국 형법 제10조 2항에 의해 처벌이 감경될 수 있다.

범죄를 저지르는 와중에 변별력이나 의사결정 능력이 정상인 사람이 어디 있나. 그리고 술 먹으면 누구나 변별력이 떨어진다. 술에 취한 상태라고 봐주는 거면 음주 운전은 왜 그렇게 철저히 단속하는 건가? "음주로 인해 사리분별이 어두워져서 운전대를 잡았으므로 감형!"이라고 봐주지?!!

심신미약자의 정의를 다시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술에 떡이 되어 진상을 부리다 못해 가해를 한 걸 심신 미약이라고 포장하지 말자. 피해자야말로 가해자 때문에 심신에 장애가 생겨버린 사람이다.


조두순은 왜 12년인가?

조두순의 경우 법원은 피해자의 연령과 범행의 잔혹성에 근거해 무기징역을 선택하고도, 범인의 나이가 고령(당시 56세)이며 평소 알코올 중독과 통제불능으로 인한 심신 미약 상태가 인정된다는 이유로 형법 제10조 제2항에 따라 형을 감경하였다.

고령이라서 봐주고, 알코올 중독이 뭐 잘한 거라고 봐주고. 뭐 이렇게 범죄자한테 봐주는 게 많은가. 피해자는 그럼 "에이 재수가 없어서 심신 미약자에게 걸렸네요" 하고 말라는 것인가? 나날이 늘어가는 심신미약자의 강력 범죄를 미리 예방하지 못한 당국의 책임은 무엇인가?

문제가 되었던 '감경한다'라는 조항에 대해 논란이 거세지자 "감경한다"는 "감경할 수 있다"라고 바뀌었다고 한다. 감경할 수 있다라니. 알코올 중독이 되고 통제불능이 되도록 자신을 내버려 둔 죄, 가중 처벌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함무라비 법전대로 하자

내 상식으로는 동의할 수 없는 범죄자에게 친화적인 법들.

나는 복잡한 법 모르겠고, 그냥 피해자가 괴로운 만큼, 아니 조금  더 가해자가 괴로으면 좋겠다. 나영이가 평생 배변 주머니를 차고 살아야 하는 영구 장애를 입었는데, 조두순한테 따뜻한 콩밥을 주고 시원하게 볼일 보게 해서는 안된다는 거다. 심신 미약이고 책임주의고 어려운 말 필요 없이 나는 피해자 위주의 접근을 원하고, 인과응보를 원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냥 함무라비 법전대로 해라.




12/12  조두순 12년 복역 끝 출소, 호위를 받으며 안전하게 집으로 귀가

12/12는 또 다른 십이십이 사태라고 명명하고 싶을 지경이다. 12월 12일, 12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조두순은 따스운 아이더 패딩을 입고, 한 손에는 귤을 쥔 채 공권력의 경호를 받으며 관용차에서 내렸다. 뒷짐을 진 채 죄송하다는 빈 말만 남기고 안전하게 귀가했다. 전과 17범에 한 어린이의 인생을 무참하게 망가뜨린 악마는 그렇게 다시 사회로, 그것도 피해자가 사는 동네로 돌아왔다. 그리고 피해자는 가해자를 피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나영이는 지켜주지 못했으면서 조두순은 지켜주는 나라.


12/17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으로 누명 쓰고 20년간 복역한 윤성씨 무죄 판결

조두순은 중국이었으면 사형이었을 죄를 짓고 고작 12년을 복역했다. 반면 윤성 씨는 이춘재의 범죄를 누명 쓰고 20년간 젊은 시절을 감옥에서 보내고 이제야 풀려났다. 경찰, 검찰, 법원이 진심 어린 사과와 보상금을 준다한들 그의 인생에 봄날이었어야 할 청춘은 감옥에서 다 지나가 버렸다. 사회에 있었어야 할 사람은 감옥에 있고, 감옥에 있어야 할 사람은 사회로 나왔다.


코로나로 생계가 어려워져 계란 한 판을 훔친 사람은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 미성년자 성폭행범 고영욱은 징역 2년 6개월을 살고, 조두순은 12년을 살고, 무고한 사람은 20년을 살았다.


죄와 벌을 다시 생각한다.

어떤 기준과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낸 결과물인가?


지난주에 접한 뉴스들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이 서글퍼지게 한다.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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