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집에 놀러 온 중학생 사촌 동생이 하루 종일 유튜브로 BTS를 본다. 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라테는..'을 시전 했다.
"라테는 말이야... 서태지였어. 오죽 인기가 많아서 문화 대통령 아니겠니."
그런 나를 보고 옆에 있던 아빠는 말한다.
"라테는 말이야.. 나훈아지. 추석 때 방송한 거 봤지? 테스 형 난리 났잖아."
각 세대마다 그 시절을 평정했던 스타가 있다.
나 때는 서태지였고, 아빠 때는 나훈아였다. 듀스를 좋아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남진을 더 좋아한 팬들도 있겠지만 각자의 개취(개인 취향)에 의해 사춘기 시절 마음속에 둥지를 튼 최애 스타는, 여생 동안 신앙처럼 받들고 수호하게 된다. 그래서 서태지가 컴백했을 때 컴백기사 댓글에 엑소 팬들이 서태지를 까내리는 걸 보고 나는 참을 수 없었다. 업무 중 자리를 박차고 화장실로 이동해 키보드 워리어로 변신했다. "서태지 같은 진정한 뮤지션과 기획사에서 만들어진 아이돌을 비교하지 말라"며 부들거렸다. 내가 나훈아가 왜 대단한지 모르겠다는 회의감을 보이면 아빠는 '나훈아가 대단한 이유 100가지'는 정도는 말해줄 수 있다는 기세로 최고임을 설득하려 했다.
"BTS가 왜 그렇게 난리인 건데? 뭐가 그렇게 좋아?"
"잘 생겼고.. 노래도 너무너무 좋고.. 춤도 너무너무 잘 추고.."
"그렇게 잘생기고 노래 잘하고, 춤 잘 추는 애들이 한 둘이야? 이렇게 세계적으로 인기 있을 정도냐고"
"BTS는 달라."
그러니까 뭐가 그렇게 다른 거냐고.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사촌 동생의 눈은..그냥 사랑에 빠진 눈이었다.
대체 BTS는 뭐가 다른거야?
최정상 후배들과만 합동 무대를 하는 서태지가 BTS랑 무대를 같이 했었다. 그래서 알고 있었다. 서태지가 보는 눈이 있으니까 BTS가 대단하긴 하겠지. 노래도 몇 개 알고 있고, 지민이 얼마나 춤을 잘 추는지, 진, 뷔, 정국이 잘생긴 것도 알고 있다. 랩몬스터 아이큐 높은 것도 안다. 근데 그렇게 잘생기고, 노래 좋은 아이돌은 널리고 널렸다고. 대체 BTS는 뭐가 다른 거야. 마케터로서 알아야 한다,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었다. '세계적'스타가 된 이유. 물론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다. 멤버 각자의 역량이 뛰어나고, 방시혁이 멤버 각각의 재능을 믿어주고 잘 살려줬다.유튜브를 잘 활용하고 소통했다.
머리로만 그러려니 이해하고 있던 것들이, 나에게도 가슴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왔다.
심심해서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이번 주 화제가 된 '꼰대희'를 정주행 하는데 꼰대희가 BTS의 Life goes on 리액션하는 영상이 있었다. 전형적인 아재의 반응을 하는 꼰대희를 보며 낄낄대다 문득 잘생긴 진과 뷔의 얼굴에 시선을 멈춘다. 노래도 되게 좋네? 한 번 더 듣기 위해 BTS Life goes on을 검색했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영상을 몇 개 보자 유튜브 알고리즘은 나에게 BTS가 나온 영상을 계속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아버렸다. BTS가 성공한 이유. 잘 생기고, 작곡 잘하고, 노래 잘하고, 춤 잘 추고는 기본이다. 성공의 재료는 갖추어져 있었고 부스터가 필요했다. 유튜브를 포함한 SNS를 통한 소통. 정확히 말해 그 친밀감을 주는 소통의 포맷은 MZ세대를 정확하게 공략했고 그 방대한 양은 유튜브의 로직을 꿰뚫었다.
잘생기고 춤 잘 추는 매력남들 무한 도전
무한도전. 희대의 명작인 예능인데 BTS의 영상들을 보면 그에 못지않게 재미있다. 그들은 한없이 멋있거나 신비롭지 않다. 무대 뒤에서 그들이 장난치는 모습, 밥 먹고 수다 떠는 모습 등을 유튜브로 볼 수 있다. 서로의 캐릭터가 뚜렷하고 개그감이 상당하며, 무엇보다 그들끼리의 케미가 상당히 좋다. 절친한 고등학교 친구들이 노는 모습 같다고나 할까. 진은 그 귀공자 같은 얼굴로 아재 개그를 하고, 뷔는 도도한 얼굴로 사투리로 욕을 하고, IQ가 148인 랩몬스터는 실수로 아직 공개하지 말아야 할 내용을 스포 해버린다. 무한도전 잘생긴 오빠들 버전이다. 연예인의 도도함이 없이 구수하게 노는 그들. 보고 있으면 흐뭇하고, 웬만한 예능 저리 가라다. 특정 방송에 출연해서 적응 못하고 어색해하는 모습 없이, 절친한 그들끼리의 일상을 재미있는 포맷으로 일상의 면면을 보여주니 요즘 말로 '내적 친분'이 생겨버린다.
방탄 TV
빅히트와 팬과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의 환상의 콜라보
유튜브에 방대한 양의 영상을 올리고 직접 BTS와 소통하면서 팬들은 내적 친분을 느낀다. 공유 버튼 하나로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그들도 팬이 된다. 또 스스로 2차 영상을 가공하기도 한다. BTS의 영상을 볼 수록, 유튜브는 BTS의 영상을 추천한다. 빅히트가 영상을 만들고, 팬들이 2차 영상을 만들고, 유튜브는 알고리즘으로 끝도 없이 추천하고. 그러면 또 팬이 늘고. BTS는 유튜브의 특성을 정확히 이용해 MZ 세대를 공략했고, 그게 먹히자 그들이 인기는 유튜브 알고리즘과 트위트 리트윗을 타고 순식간에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서태지의 신비주의 vs BTS의 내적 친분 전략
나 때는 신비주의가 먹히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아이돌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지 않았다. SNS도 없던 시절이라 TV와 라디오말고는 그와 닿을 길이 없었고, 그래서 서태지의 집 앞에서 밤을 새우는 소녀 팬들이 많았다. 닿을 수 없기에 더 신비롭고 귀한 존재가 되어 가치는 더 올라갔다. 한마디로 애가 닳게 하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세상이 변해 이제는 신비주의를 택했다가는 아웃 오브 안중이 되기 십상이다. 누가 먼저 빨리 대중과 내적 친분을 쌓고 팬덤을 공고히 하느냐의 싸움이다. 물론 실력과 매력과 인성이 받쳐줘야함은 물론이다.
BTS는 달랐다.
출중한 노래 실력, 춤 실력 외에, 한 명 한 명의 겸손한 인성과 절친한 케미와 예능감.
무대 위 화려한 퍼포먼스 외에, 슈퍼스타 답지 않은 친근한 오빠들 같은 인간미 느껴지는 일상.
그리고 그 모든 매력을 알게 하는 유튜브 콘텐츠들과, 잊을 수 없게 계속 추천하는 유튜브 알고리즘.
나도 이제 ARMY다.
출근길에는 BTS의 출근길 사진을 보고, 업무 하다 화가 날 때는 진의 직캠 영상을 켠다. 콜라를 마실 때나 초콜릿을 먹을 때와 같은 기분 전환 효과가 있다. 남편과 투닥거린 후에도 BTS를 본다. 이렇게 나도 BTS에 입덕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