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우리의 20세기> 리뷰 -
넘실대는 푸른 파도, 마트 주차장 한복판에서 불이 붙은 포드 자동차. 종잡을 수 없는 영화의 첫 장면은 이 영화의 전체를 말해주는 듯하다. <우리의 20세기>는 1979년, 셰어하우스에서 20세기의 끝자락을 살아가는 세 명의 여성과 한 명의 남성, 그리고 소년의 이야기다.
대부분의 영화는 뚜렷한 한 줄기의 주제의식을 가진다. 하지만 이 영화는 보는 이들에게 여러 가지 생각의 물꼬를 던진다. 그 갈래는 인생, 사랑, 가족, 꿈, 페미니즘과 같이 다양하다. 때문에 영화를 보고 난 어떤 이들은 “이 영화는 뭘 말하고 싶은 거야?”라며 혼란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 영화는 <우리의 20세기>라는 제목처럼 ‘우리’의 삶을 잘 반영한다. 삶은 나무와 같아서 하나의 줄기로 뻗어나가지 않는다. 인생을 말하다 보면 사랑과 가족 얘기를 빼놓을 수 없고, 그 곁에서 항상 꿈을 생각하게 되는 것과 같다.
영화의 여러 주제 의식만큼이나 주인공들의 캐릭터도 각기 다르다. 때문에 그들은 곧잘 서로 부딪힌다. 대공황 시대인 1920년대에 태어난 도로시아는 대항문화에 심취한 아들 제이미를 이해하기 어렵다. 제이미는 자신에게는 속 얘기를 전혀 들려주지 않으면서 간섭만 하려 드는 엄마가 야속하다. 아들의 일탈이 걱정됐던 도로시아는 함께 사는 포토그래퍼 애비와 제이미의 소꿉친구 줄리에게 제이미의 인생교육을 부탁한다.
하지만 인생은 가르친다고 배워지는 교육 같은 게 아니다. 가르쳐도 알 수 없고, 맘대로 배워지지도 않는 인생 속에서 각기 다른 삶은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워 보인다. 녹록지 않은 세상과 상실의 아픔을 겪으면서 자신의 외로움과 슬픔을 외려 숨기게 된 도로시아, 젊은 나이에 암이라는 시련을 맞게 되고 그 속에서 여성의 삶을 고민하는 애비, 허무하고 소모적인 관계 속에서 진실한 우정과 사랑을 갈구하는 줄리, 그리고 사람을 만나는 데 서툰 윌리엄까지. 이런 그들의 인생은 서로 가르치고 배우기에는 그 명암이 너무도 뚜렷하다.
그럼에도 영화의 막바지에서 그들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들을 이해하게끔 만든 건 교육도, 배움도 아닌 ‘부딪힘’이다. 각기 다른 삶이 부딪힐 때, 그 부딪힘으로 갈등하는 순간과 서로를 몰랐던 마음의 빗장이 느슨해지는 순간이 교차된다. 도로시아와 제이미, 두 세대의 갈등이 극에 달하는 순간 도로시아는 제이미에게 “네가 나처럼 살지 않기를” 바랐다고 털어놓는다. 도로시아가 전남편을 왜 좋아했는지 이해하지 못하던 윌리엄은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도로시아의 전남편처럼 왼손으로 주식시세를 적으며 오른손으로 그녀의 등을 긁어준다. 부딪힘으로써 만들어진 교집합은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의 창이 된다.
‘서툰 인생을 살아가는 모두를 위해’
영화 포스터에 적혀있는 문구처럼 영화에서 보여주는 주인공들의 갈등과 이해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인생은 절대 마음처럼 흘러가지 않아”라고 하는 애비의 말처럼 인생은 종잡을 수 없고 모든 이들은 서툴다. 하지만 그래서 산다는 것은 멋진 일이 된다. 갈등 속에서 이해가 피어나고 그 순간이 미래의 나와 너, 우리를 만드는 경험은 어느 누가 가르쳐서 배우는 것이 아닌, 자신만이 겪을 수 있는 빛나는 순간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