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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리 Dec 27. 2017

‘한국형 판타지’를 보여주다

- 영화, <신과함께> 리뷰 -

 19일날, 영화가 개봉되기 하루 전 시사회를 통해서 ‘신과 함께’를 일찍 만나볼 수 있었다. 영화를 보기 전 감상은 솔직히 우려가 8할이었다. 예고편으로 봤을 때 원작과 너무 다르기도 했고 주인공인 김자홍의 직원이 회사원이 아닌 소방관이라는 설정부터가 억지감동 짜내기로 흐르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난 후 전체적 소감은 ‘예상 밖의, 잘 만들어진 한국형 판타지 영화’였다. 이 문장을 통해 개인적으로 느낀 영화의 장단점을 찬찬히 살펴보자.     





우선 이 영화는 예고편 담당자가 시말서를 써야하는 수준이 아닌가 싶다. 예고편만 봤을 때 느낀 거부감은 첫째, 원작과 판이한 설정. 둘째, 오글거리는 CG였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봤을 때 원작과 다른 설정은 오히려 영화의 플러스 요소가 됐으며 CG는 매우 안정적이었다. 영화의 스토리는 원작의 굵직한 설정만을 따왔다고 보면 될 정도로 전개가 꽤나 다르다. 스포가 될까봐 자세히 쓰진 않겠지만 원작의 각기 다른 두 인물의 얘기를 묘하게 엮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2시간 내외로 한정된 영화의 러닝타임으로 봤을 때, 필자는 이런 각색이 영화화를 위한 현명한 묘수라고 생각했다. 원작을 본 사람은 알겠지만 웹툰에서의 스토리 전개는 계단을 밟아나가듯 하나씩 차분하게 진행된다. 그런 스토리 전개를 영화에 그대로 재현했다면 어땠을까. 웹툰에서는 이야기 전개의 토대가 될 안정적 ‘기승전결’이 영화에선 지루한 설정 나열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걸 파악한 감독은 ‘시각적 재미’라는 영화의 특성을 십분 살렸다. 영화는 시작한지 10분도 안돼서 생경한 지옥의 풍경과 개성 있는 캐릭터들을 전개시키며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재미 중 반 이상이 일곱 개 지옥을 구현한 완성도 높은 시각효과가 아닌가 싶다. 긴 러닝타임이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준 1등 공신이었다.  



   


배우들의 출중한 연기력도 이 영화의 장점 중 하나다. 특히 두드러졌던 배우는 단연 김동욱이이었다. 이 영화의 감독은 영화 <국가대표>의 감독이기도 하다. 김동욱 배우의 캐스팅 비화를 들어보니, 감독은 “이렇게 잘하는 배우가 왜 놀고 있을까?”싶은 마음에 그를 김수홍 역으로 지목했다고 한다. 영화를 보고난 나의 소감도 마찬가지. “이렇게 잘하는 배우가 왜 그동안 스크린에서 뜸했을까?”싶을 정도로 연기를 잘한다. 영화의 부족한 부분을 배우들의 연기가 부드럽게 채워주는 느낌. 특히 후반부의 장면은 많은 사람들이 ‘신파’라고 지적할 수 있겠으나 김동욱의 연기가 이런 감상을 송두리째 삼켜버린다. 나중에 감정이 진정되고 나서야 ‘맞아, 그건 좀 과하긴 했어’라고 느낄 수 있겠지만, 영화를 보는 그 순간만큼은 김동욱의 절절한 연기가 관객들의 날카로운 시선을 유려하게 가려버린다. 여기에 더불어 사랑스러운 배우 김향기의 연기도 매우 돋보이는 요소다. 귀엽고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스토리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가다가도 어느 땐 놀라운 집중력으로 영화의 중요한 부분에서 아역배우로서 다져진 내공을 명확히 드러낸다.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신형철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이라는 책의 한 구절이다. 영화의 캐릭터들은 완벽한 선인도, 완벽한 악인도 없다. 모두 어느 정도의 이타심과 어느 정도의 이기심을 동시에 가진,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들’이다. 이런 개성 있는 캐릭터들의 향연도 영화의 큰 매력 중 하나였다. 단호한 표정으로 “저는 귀인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김자홍의 입체적인 면이 ‘정의로운 의인’ 프레임에서 벗어나 영화의 축을 재미있게 비틀어주는 요소라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전체적 소감이 ‘한국형’ 판타지 영화라고 느껴졌던 이유는 역시 내용적 측면에 있다. 이야기의 감동요소를 위해 중간 중간 개연성이 부족한 부분이 여실히 드러났다. 작중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도 과한 설정으로 느껴진다. 여느 한국 영화들이 그렇듯 ‘신파’라는 비판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이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는  도전적인 시도라는 점에 있다. 원작이 있는 영화는 시작부터 우려와 걱정을 안고 시작한다. 특히 <신과 함께>처럼 팬층과 독자층이 두터운 원작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감독은 과감하게 스토리를 각색하며 ‘영화’라는 매체의 장점을 살리는 방향으로 도전했다. 그리고 ‘신파’라는 양날의 검을 적절히 사용했다는 점이 돋보인다.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크린을 바라보는 눈이 촉촉해져버리고 마는, 가장 대중적인 소구를 활용했다. 뿐만 아니라 영화 사이사이에 웃음코드도 적절히 섞음으로써 관객들의 감성을 언제 어디서 공략할 지를 잘 계산한 영화라고 느꼈다.   


분명한 사실은 한국 영화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 불모지’에 가까웠던 한국 영화계에서 <올드보이>와 <괴물>이 혜성처럼 등장하며 한국 영화의 급진적인 새 지평을 열었고, 2016년 개봉한 <부산행> 역시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모범을 보여줬다. <신과 함께> 역시 ‘국산 판타지 영화’의 긍정적인 사례로 꼽히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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