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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구 Oct 27. 2019

주 52시간 제한과 생산성

구글에서의 자율적 책임과 생산성

'주52시간'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여러 곳에서 말이 많다.
재밌는 것은 법정 근로시간은 주당 40시간인데 '주52시간'을 가지고 더 많은 찬반 토론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와 관련된 모든 토론에 있어 중요한 것이 ‘자율적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영국에서 근무했단 경험과 구글에서 현재 경험하고 있는 것을 토대로 업무 생산성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한다.


주 52시간 근무시간 제한을 두어야 하는가?

어제(10월 26일) 장병규 4차산업위원장이 자신을 위해 일할 권리을 국가가 막으면 안된다며 대정부 권고안을 내놓았다. (기사 원문)

지적한 문제의 핵심은 주 52시간제는 노동자의 기본권을 보호한다는 중요한 측면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획일적, 일률적으로 적용되면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찬성] 이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에서 먼저 살펴보겠다.

그렇다, 주 52시간의 획일적, 일률적 적용은 의도하지 않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현재 구글에서 일하고 있는 경험을 토대로 해당 입장에서 설명을 해 보겠다.

우선 구글에서는 누가, 언제, 어디서 일하는지를 체크하지 않는다.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면 되는 것이고, 내 일의 생산성은 내가 책임진다.

내가 일하는 과정에서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다. 결과는 결국 나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때로 52시간 이상 근무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필요는 내가 스스로 결정하며, 내가 원할 때 얼마든지 추가 근무를 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의 성과를 높이거나, 내가 꼭 해야할 일을 넘어서 내가 하고 싶은 추가적인 일을 할 수도 있다.

필자는 실제로 위와 같은 이유로 종종 주 52시간 이상을 일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내 직장상사나 동료가 원해서가 아니라 철저히 필자의 필요성에 의해서 필자가 스스로 결정한다.

이 때 내가 최소 40시간, 최대 52시간의 근무시간 제약을 받는다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될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사실 회사는 늘 work and life balance를 강조하며 휴가사용을 장려하고 여러 복지제도를 두고 있으며, 필자의 상사의 경우 주말 출장의 경우 늘 평일 대체휴가를 쓸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고마운 상무님 :)


[반대] 이번엔 반대하는 입장에서 살펴보겠다.

필자가 1999년도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병역특례요원으로써) 시작했을 때에는 IT업계에서는 야근과 특근이 성행(?) 했다.

이는 병특을 마치던 2002년도까지도 그대로였는데, 이로 인해 당시 IT업계는 (특히 개발자는) 3D업종으로 통했다.

심지어 업무를 마쳐도 상사들의 눈치를 보느라 퇴근을 할 수가 없었고, 업무는 늘 (40시간에 절대 끝낼 수 없도록) 과다하게 주어졌으며, 토요일 출근은 당연한 일이었고 때로는 일요일까지도 출근을 해야 했다.

이로 인해, 당시 여친사귀는 것이 불가능했을 뿐 아니라 친구들 만날 시간도 없었다.

오전 9시 출근해서 일찍 퇴근하면 10시, 늦으면 자정을 넘겼는데 집에오면 뻗어 자기에 바빴다.

당사자의 의사를 100% 무시한 이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는 주당 최대 근무시간 52시간 도입은 꼭 필요해 보인다.

이로 인해 당시 약 3년여간 실력이 일취월장한 것은 의도치못했던 보너스이긴 했다.


사실 위 2가지 예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주 52시간 근무 찬/반'은 절대적으로 맞다거나 절대적으로 틀릴 수가 없다.

상황과 환경에 따라, 근무하는 직장이나 직종에 따라, 근무자에 따라, 근무하는 회사나 팀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일괄 적용한다는 것은 사실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일부 업계(회사)에서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왜 정부는 이를 일괄 적용했을까?


과다 근로(주당 8-90시간)를 원치 않는 상황에서 경험해본 필자로서는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초기의 근로자 과잉보호라고 예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당시 필자는 첫 근무했던 회사에서 6개월을 근무하고 이직했는데, 이직사유는 간단했다.

그렇게 주당 90시간을 일하며 회사를 계속 다니기 싫었고, 당시 너무 사람답지 못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일요일에 회사 이사한다고 강제출근시켜 일요일에 짐나르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이제 IT업계가 상당히 변했다.

2019년 현재, 2000년대 초반에 있었던 그런 과다근로는 상당히 많이 사라졌다.

(아직 남아있는 곳도 있다는 건 알고 있다. ㅠ)

오늘과 같은 상황에서는 천편일률적 적용은 피해야 하지 않나 싶다.

게다가 최근 몇 년동안 한국의 스타트업 환경 및 이에 대한 투자상황이 많이 좋아지면서 성공하는 스타트업들을 많이 보게 된다.

또한 스타트업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일에 대한 열정을 가진 경우가 많다.

일이 재밌고, 퇴근하고도 업무 관련된 모임이나 스터디를 진행하면서 실력을 쌓아 나간다.

필자 역시 그런 시절이 있었고, 현재 다시 그런 시절을 구글에서 맞이하고 있다.


필자도 구글플레이에서 여러 유망한 스타트업들과도 협업을 하고 있는데, 스타트업은 특성상 초기에 달려 최단기간내에 성과를 내서 보여주어야 한다.

이는 투자로 이어지며, 후일 큰 성공의 밑거름이 된다. 직원들의 경우 초기에 조인했다면 스톡옵션 등을 통하여 큰 부를 얻게되는 경우도 종종 보았다.


그럼 성공을 위해서는 모두가 주 52시간 이상의 근무가 필요한가?


오늘 "팀 쿡이 왜 새벽 3시 45분에 일어나나"라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원문기사 링크)

핵심은 일반 직원에서 CEO로 승진한 사람들의 많은 경우,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아야 하고, 많은 것을 알아야 하며, 경쟁에서 이겨야 하기 때문에 업무를 사랑하고, 일 중독이거나, 퇴근 후에도 업무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소설과 영화로 유명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실제 인물인 안나 윈투어도 그렇고, 미국 해군 특수부대인 ‘네이비실’ 출신의 리더십 전문가 조코 윌링크 역시 그러하며, 제프 이멜트 GE 회장도 그러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모두가 그렇게 하루 8시간, 아니 10시간 이상씩 일하면 좋은 성과가 나는가?


모두가 이미 알고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어떤 사람은 적당히 일할 때 더 좋은 성과가 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중간 중간 쉬어주어야 좋은 성과가 나기도 하며, 일부 사람들은 과다한 업무를 하면 스트레스로 성과가 오히려 저하되기도 한다.

또한 이는 하는 업무의 종류와도 큰 관련이 있게 되는데 보통 IT업계에서는 오래 일하는 것이 더 높은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일례로 프로그래머가 그러하고, 디자이너가 그러하다.

실력있는 사람과 실력없는(아니 일 못하는) 사람은 성과에서 100배 이상의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이는 보통 연봉차이로 이어진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구글에서는 업무시간을 아무도 체크하지 않는다.


본인이 맡은 일만 잘 해내면 된다.

협업업무들은 많은 경우 행아웃(Hangouts)과 VC(Video Conference)로 이뤄진다.

행아웃은 사내 메신저이며 gSuite에 포함된 도구로 Google Docs, Sheets, Slides, Calendar와 함께 필수적인 업무 도구이다.

언제 어디서 근무를 하든지 근무 중에는 Hangouts로 연락 가능(reachable)하면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remote work나 WFH(Work From Home)을 자유롭게 사용한다.


필자의 경우도 특히 내가 혼자 진행해야 하는 업무의 경우는 remote work를 할 때 업무효율이 극대화 되는 것을 느낀다.

왜냐하면 내가 집중해서 일하는 도중 방해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테스트 data를 분석해야 할 때, 코딩을 해야할 때, 발표 자료를 만들 때, 초집중 모드에서 다른 사람이 와서 말을 걸면 흐름이 깨지게 된다. 

또한 회사에 있다보면 동료들과의 네트워킹도 중요하기 때문에, 같이 점심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는 등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러한 활동이 의미없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필자는 이러한 시간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구글에서는 이런 social 활동들을 장려한다.

일례로, 동료들과의 Coffee chat을 장려하며 이는 근무시간으로 인정된다.

실제로 이를 통해 성공한 신규 프로젝트 아이디어도 많이 나왔고, 평소 메신저로 풀기 어려웠던 논의를 커피한잔을 하며 해결할 수도 있다.

Ninja Lunch라는 프로그램도 있어 신청하면 Ninja Lunch 신청자들끼리 랜덤하게 점심을 같이 먹을 수 있도록 Ninja Lunch Bot이 스케줄을 정해 준다.

빈도 역시 Daily, Weeekly, Monthly등으로 설정할 수 있다.


필자가 구글에서 근무하며 과거 근무했던 타 회사들 대비 가장 좋아하는 만족하는 점이 바로 이 flexibility이다.

내 업무에 가지는 자율도와 그에 대한 책임, 그리고 flexibility가 구글에서 내가 하는 업무들을 매우 즐겁게 만들어 준다.

짧은 결론 아닌 결론을 지어보자면, 생산성이란 누가 정해준다고 정한대로 되는 것이 아니며, 강제할 경우 언제나 양쪽 중 한쪽에서는 불만이 나올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늘은 주 52시간 제한과 생산성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한번 이야기 해 보았다.

TPM(Technical Program Manager)으로 영국에서 근무할 당시 참 많이 고민했던 주제이기도 하고, 최근 많이 언급되는 주제이기도 해서 현재 구글에서의 경험과 연관지어 다뤄보고 싶었다.


부디 좋은 의도로 만들어진 제도가 초기 시행착오 기간을 잘 거쳐, 더 나은 모습으로 정착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무리 해 본다.


- 2019년 10월 27일, 어느 일요일 저녁.


*본 글은 필자의 상황에 따른 필자의 생각이며, 구글을 대변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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