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개발자가 되고 싶은가
영국의 밤이 깊어지고 겨울 안개가 짙게 드리워지는 저녁.
Brunch에서 읽은 몇 개의 글이 문득 "개발자 스타일"이란 편견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게 만들었다.
흔히 말하는 '개발자 스타일'이라는 선입견은 아래와 같다.
밥먹듯이 야근을 하고
낮보다 밤에 업무 집중이 잘되며
밤늦게/새벽에 퇴근하고 늦게 출근하고
복부비만을 쉽게 접하 수 있으며
스테이크와 와인보다는 치맥을 즐기고
정장보다는 캐주얼한 청바지, 티셔츠, 후디등을 즐겨 입으며
세련되기 보다는 투박하며
(다수 앞에서의) 미팅/발표를 좋아하지 않고
(여러 사람과 어울리기보다는) 개발자들끼리만 몰려다니는 것을 더 즐겨하는
이러한 스타일들 말이다.
난 개인적으로도 위 스타일들이 대학교 때부터 참 맘에 들지 않았는데, 일단
1. 밥먹듯 하는 야근과 이유 없는 야근이 싫었다 (필요에 의한 야근은 제외)
2. 어쩔 수 없는 야근이 아닌_ 반복되는 습관성 야근은
A) 업무가 말도 안되게 많거나 (실제로 오랫 동안 - 특히 2015~2016년에 - 겪어봤다)
B) 스스로 관리를 못해서
라고 생각하므로, A이건 B이건 맘에 들지 않았다.
캐나다/미국에서 5년 정도 살았고, 15년부터 영국에 살고 있지만, 이 나라들의 개발자의 삶은 우리 나라에서 흔히 말하는 전형적인 개발자의 삶과 매우 다르다.
Western culture에서의 개발자들은 대부분 자기 개발을 중요시하고, 본인의 스케줄은 스스로 관리한다.
가장 큰 다른 점이라면, 늘 볶아대고 닥달하는 상사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상사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감언이설을 하기 보다는 성과로 이야기 한다.
(외국기업도 큰 기업일수록 정치는 존재한다. 단, 100% 개발업무만 한다면 그것에 연루될 필요가 별로 없다는 점이 다르다.)
국제화/SNS 세상인지라 이런 상황이 한국에도 많이 알려지다 보니, 최근에 해외로 진출하는 개발자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첫째는 개인의 삶, 가족들과의 시간을 회복하고 싶은 것이고, 둘째는 연봉상승을 위한 것이며, 셋째는 더 나은 경력 개발을 위함이고, 넷째는 추후 나의 자녀를 위한 것이리라.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원하다 보니 이를 위한 정보공유 까페/동호회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고, 이 중 몇몇은 꽤 좋은 정보와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것 같다.
개발자들에게 - 해외진출이 가장 좋은 (혹은 유일한) 방법인가? 다른 대안은 없을까?
매니저들에게 - 왜 인재들을 잃어야 하는가? 개선의 여지는 없을까?
엔지니어들이여_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 보자.
반복되는 야근이 싫은가? 혹은 할만한가?
야근하고 늦게 출근하는 것이 오히려 편한가?
혹은 늘 정시 출근하고 업무시간에 더 빡세게 일하더라도 저녁식사 전 퇴근하는 것이 좋은가?
(외국계 회사는 근무시간 중 업무강도는 국내기업보다 훨씬 세다)
청바지, 티셔츠, 후디가 편한가? 세미정장/정장에 때로 넥타이도 매는 것이 더 좋은가?
미팅이나 프리젠테이션을 좋아하는가? 혹은 그런 자리는 피하고 홀로 or 소그룹으로 코딩/연구하는 것이 좋은가?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과 방식을 파악하고, 자신에게 맞는 회사를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개발자건, 영업을 하건, 기획을 하건, 스타일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다.
업무 스타일도, 옷 입는 스타일도, 음식 취향이나, 선호하는 취미/운동도 다를 것이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혹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당신은 '개발자'인가?
'개발자 스타일'이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고, 존재해서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도 않을 뿐더러, 회사 입장에서도 직원 각자의 개성과 능력이 존중될 때 각 개인의 능력이 십분 발휘되어 회사도 더 발전할 수 있다.
물론, 팀 스타일이나 회사 스타일과 내 스타일이 맞지 않는다면?!
내가 맞추던 그들이 맞추던 누군가는 맞춰야 한다.
직원 입장에서 나에게 잘 맞는 회사/팀을 찾는 것도, 회사/매니저 입장에서 잘 맞는 직원을 찾는 것도 또한 중요하다.
(이런 연유로 외국계 기업들은 같이 일할 팀 멤버들에게 직접 면접에 참여하도록 하고 실제로 결정권을 준다.)
우리 모두 미용실을 전전하면서 내 헤어스타일을 잘 만져주는 Hair Stylist를 찾아가지 않는가?
Note : 미국에서는 '고객 거부권'이 있어서 고객이 원해도 각 매장에서 거부도 할 수 있다 ;)
글을 쓰다 보니 삼천포로 빠지게 되었지만, 뒤쳐진 개발 문화는 우리나라에서도 개선되는 추세이고
개발자에 대한 선입견 역시 시대가 변하고 세대가 바뀌면서 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요새 세대들은 자기 주장도 강하고 합리적이다. 부디 더 나은 개발문화, 사회문화, 직장문화를 만들어 주기를 바라며. 부디 회사의 (특히 큰 회사들일수록 더한) 꼰대문화는 사라지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