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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요선 Mar 04. 2024

좀 더 덤벼봐!

상담의 효용을 느끼고 있고, 많이 좋아졌고, 더 좋아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물론 충동감과 무기력함, 그에 따른 폭주하는 패턴과 관계 맺기에서 오는 자잘한 상처들이야 늘 있겠지만 말이다. 덕분에 어느 정도 일상생활은 잘 갈무리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 자신감은 장밋빛 낙관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고 현실적인 맥락에서의 판단이기도 하다. 내가 나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좀 더 나아진 것도 분명 있으나 30대라는 나이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범주의 삶으로 진입하는 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가 속해있는 환경, 만나게 되는 사람들, 그 사회에서의 애티튜드를 어느 정도 익힐 수밖에 없는 나이가 되었다. (집단이 가지고 있는 특성과 사회적 제스처들이 있어서 그 적응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스타트업에 있다가 대기업 간 친구들로부터 종종 듣는다.) 일 때문에 비교적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범주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기도 하고 이 틀을 벗어난 사람들을 나 역시 만날 이유도 필요도 굳이 없다.


이상적인 관점에서도, 현실적인 맥락에서도 이제 나는 내 일상을 잘 갈무리할 수 있겠다 싶었다. 안정적인 수입, 유대감을 느낄 수 있는 친구들, '내가 생각하기에' 이상적인 일을 할 수 있는 환경과 (약간의) 재능이라는 3박자가 만들어낸 결과이다. (물론 이것들 역시 불안전한 토대 위에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걸 생각하면 다시금 고통스러워진다^_^) 어쨌든 이제 나는 나의 이 충동감과 무기력함만 더 잘 다루어내면 될 줄로 알았다.


상담 선생님께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 본 이야기들이 있다. 각인되었으나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장면들. 흡-하고 숨을 들이쉬게 만들었던 기억들. 내가 다룰 수 있는 주제들도 점점 확장되었다. 이건 좀 말하기 부끄럽지만, 하면서 꺼내놓았다. 꺼내놓고 보니 별 거 아니었던 일도 있었고, 그냥 지나가는 에피소드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상처가 되었던 순간들도 있었다. 선생님에게 꺼내놓고 보니 다른 친구들과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이야기를 하고 또 주석을 달면서 나는 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선순환을 만들어냈다. 나는 내가 '솔직해졌다고' 그래서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상담을 통해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면.


오늘 상담은 비교적 마일드한 주제, '왜 나는 열심히 하지 않는가'로 포문을 열었다. 검사결과지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내가 그간 왜 그렇게 고통스러웠는지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나의 기질은 자극추구성향이면서, 위험회피도 높은 성향이다. 자극추구 성향은 매력적이고 재밌고 새로운 걸 좋아한다. 위험회피 성향은 쉽게 말해 겁이 많다는 소리이다. 그래서 내가 엑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고 있는 거였다!


그다음 성격적 특성으로는 자율성과 자기 일치감이 너무 낮은 편이다. 그래서 자기에 대한 신뢰도가 낮고, 나로서 잘 살고 있다는 감각이 없다. 연대감도 낮은 편이다.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거라고 한다. 동시에 사회적 민감도는 매우 높다. 기질적으로도 까다로운 편인데 성격도 개발이 잘 안 되어 있다는 말이고, "내적으로는 액셀을 밟으면서 브레이크도 밟아서 이도저도 못하는데 사회적 민감도(외부 안테나)는 높아서 바깥만 보는 거예요"가 총평이다. 일을 저지르고 자기 처벌을 하는 내 패턴이 여기에서 기인하는 것이었던 것이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덕분에 결과적으로 좋았던 점도 있는 것 같다. 나의 이 까다로운 기질과 성격에 비해 오랜 친구들이 있고 회사도 다니고 그래도 나쁜 애는 아니라는 이야기를 듣는다는 게 그 증거이다. 일을 저지르고 또 후회하니까, 겁이 많아서 정작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으니까, 남 눈치는 또 많이 보니까 그랬던 것 같다. 또 내가 이렇게 혼란스러우니 뭔가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명확하고 엄격한 사람을 동경하는데 그것 역시 내가 보는 시각에서 유효할 뿐 누군가에게는 남 생각 안 하고 막말하는 사람일 수 있다는 것도 이제 깨닫게 되었다. 눈치 보지 않고 폭주할 수 있어서 그렇게 취하는 걸 좋아했다는 것도. 각자에게 어려움이 있듯 나에게도 어려움이 있는 것이고 성격은 개발의 영역이니 그걸 개선해 나가면 되겠거니 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이제 시작이라고 했다. 그리고 여전히 내가 자기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 내담자에 속한다고 했다. 어떤 이야기를 하다가도 일정 이상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능숙하게 말을 돌리거나 상황에 대해 설명하거나 거리를 둔다고. 감정에 대해서는 아예 말하지 않는 편이라고 했다. 이제 조금씩 말을 하기 시작하는데 대부분 청소년기에 그치고 유년기에 대해서는 두 장면밖에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엄마 이야기도 겨우 이제 시작하는 셈이며 오빠와 아빠에 대해서는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고 한다. 거기다 나는 감정을 다루는 데에 있어 굉장히 미숙한데 말을 잘하는 편이고 진솔해 보이는 제스처를 하니까 속이고 넘어가기 쉬운 편이라고.


사실 난 다 말한 줄 알았다. 그런데 상담은 무언가를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남한테 하지 못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솔직하게 말하면 되는 건 줄로만 알았던 나는 나의 콤플렉스와 치부를 다 드러냈다고 생각했는데도 아니라니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어떤 발화이든 의식적인 선택의 영역이기 때문일까? 선생님은 나의 기질과 성격 특성 때문에 가면을 너무 많이 써서 본인도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모를 거라는 게 핵심이라고 했다. 내가 이야기하는 어느 정도의 수치심, 어느 정도의 콤플렉스 말고 훨씬 더 깊은 것이 있을 거라고. 어느 정도 부족한 나, 어떤 콤플렉스가 있는 나, 그 정도로는 끝나지 않는다고.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무서워지기도 했다. 내가 어렴풋하게 인지하는 문제, 혹은 내가 회피하는 문제뿐 아니라 내가 모르고 있는 문제까지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유년기의 상실과 청소년기의 혼란으로 인해 지금의 문제를 가지게 되었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연기를 하고 싶어 했다는 것까지는 '이해했다'. (물론 실제로 연기를 하면서는 또 엄청나게 다양한 문제들이 벌어진다.) 또 내가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가 있고 동시에 자만심도 있는데 이 정도의 사회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니.


임상심리사로 일하고 있는 친구에게 털어놓으니 친구는 "좀 더 덤벼봐"라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굳이 없다. 당장 죽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잘 누리고, 부족한 점을 개선해가기만 해도 사는 데에 아무 문제 없(을 것 같)다. 그니까 이건 진짜 내가 작정하고 덤벼야 하는 일이다. 나는 좀 망설이고 있다. 그냥 이렇게 살아도 사실 아무 문제없는데...그냥 이 정도까지만 하고 앞으로는 계획만 좀 더 세우고 살면 되지 않을까? 그냥 배달 좀 덜 시켜먹고 술 마실 때 조심하고 남자 만날 때 지랄만 안하면 되잖아. (말하고 나니 좀 어려운 거 같네;;) 아니면 진짜 이제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임해야 하나? 정말로 무언가를 기어이 파헤쳐서 끝을 가봐야 하나? 그러면 뭐가 남을까?


사실 답은 이미 나와 있고 그러면서도 망설이고 있다. 이것도 다 내 기질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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