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요선 Oct 24. 2024

"살아야 할 이유들은 너무 많아"

<죽음과 소녀>, 헤라르도

오늘은 새벽 5시 30분에 조깅을 했다. '갓생'같은 걸 살고 싶어서는 아니고 불면증 때문이다.


요즘 들어 부쩍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다. 이 날은 새벽 4시부터 잠에서 깼고 무슨 짓을 해도 다시 잠에 들 수 없었다. 날이 밝기만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새벽 5시 30분이 되었다. 아직 어둡기에 인적 없는 주택가를 나설 생각에 처음에는 겁도 났다.


기우였다. 거리는 인적 없지 않았다. 지하철역이 있는 큰 도로변까지 장년 여성 분들 꽤 여럿과 거리를 함께 걸었다. 그들은 이른 시간 출근하는 차림이었다. 출근 시간과 간편한 복장으로 추측컨대 청소 노동자 내지는 식당 노동자로 보였다. 파마머리를 한 비슷한 차림새를 한 여성 분들을 뒤에서 보고 있자니 어딘가 귀엽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들의 씩씩한 걸음. 그들을 따라 걷자니 왠지 모르게 나도 씩씩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동네에 있는 작은 공원 주변을 주로 뛴다. 작은 공원은 붐비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얼추 봐도 2-30명 정도가 나와 운동 중이었다. 운동기구가 있는 쪽은 거의 꽉 찼다고 봐도 무방했다. 여자 혼자 이 시간에 나와서 운동하는 걸까 봐 쫄았는데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모두들 참으로 부지런하다는 말이 나왔다. 정말로 모두들 열심히들 산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아직 동이 트기 전이라 활기찰 정도는 아니지만 도란도란한 말소리들이 여기저기 들리는 정도는 되었다.


나는 씩씩하게 걸었다. 이럴 때면 앞으로 잘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이 느껴진다. 그리고 내 나이였던 젊은 엄마가 왜 그렇게 새벽마다 목욕탕에 다녔는지를 알 것도 같았다. 계속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


겨우 30분 달리기이지만 마치고 나면 뿌듯하다. 이제 어스름한 새벽이 지나고 아침이 올 것이다. 따뜻한 물로 샤워할 생각. 집으로 가는 길이다.


그리고 동이 트기 전, 인적 드문 어둠 속에서 우두커니 홀로 앉아 있는 한 사람의 뒷모습을 보았다. 저 사람은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까 궁금해하며 지나쳤다.

매거진의 이전글 성공도 실패도, 행복도 불행도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