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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요선 Jan 10. 2024

발을 또 다치고 말았다

직장 4년차의 소회랄까

오른쪽 발목을 접질렸다. 집에 있는 발목 보호대 두 개로 최대한 발목을 보호하여 절뚝이며 병원을 찾았다. 의사 선생님은 아주 잘하고 왔다고 칭찬해주었다. 발목을 종종 접질리기 때문에 관련한 장비가 이미 집에 있어 다행이었다. 여느 때처럼 주사 맞고 끝나겠거니 예상했는데 인대가 파열되어 깁스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것도 4주나! 이 말을 듣고 내가 제일 먼저 육성으로 내뱉은 말은 "조때따"였다. 4주씩이나 정말로 해야 하냐고 묻는 나에게 담당 선생님은 그렇지 않으면 습관적으로 발을 접질리게 될 거라고 했다. 이미 그러고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결국 3년 6개월 만에 다시 깁스를 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술 먹고 계단에서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깁스 신세를 지냈는데, 그 뒤로 자주 오른쪽 발목을 접질렸다. 유난히 몸에 비해 손목과 발목이 가는 편인 이유도 있다. 습관적 발목 부상은 내가 굽이 있는 신발을 잘 안 신게 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3년 6개월 전 그때가 떠올랐다. 그때 나는 목발을 짚은 채로 절뚝이면서 오랜 기간 연애했던 친구와 헤어졌고, (그 친구가 당시에 부축해서 차에 태워줬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회사 면접도 보러 다녔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오퍼에 흥분했던 기억이 난다). 군산에 있는 친구집과 해남에 있는 할머니집도 방문했다. 목발을 짚고서 참 열심히 돌아다녔다. 잘 살아보려고 말이다.


덕분에 보호대만 차도 될 때쯤 나는 본격적으로 회사라는 곳에 다니게 되었다. 이전 경험이 있었기에 구직 기간은 사실 1달 정도로 길지 않았는데 마음이 지옥이었다. 그래서 원하는 회사에 합격하여 아주 기쁜 마음으로 출근했었다. 한. 동. 안. 은.


당시에는 성수에 회사가 있어 오가는 길도 재밌었고, 공유 오피스도 깔끔하니 좋았다. 똑똑한(!) 회사 동료들에게 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당시에 정말로 그렇게 생각함) 성장하고 싶었고, 커리어에 대한 포부도 있었다. 초기 스타트업이라 늦게까지 일하는 분위기였던 곳이기도 했지만 새벽 3시까지 일하고, 강의도 듣고, 세미나나 스터디에도 참여했다. 내 일이 아닌 것도 찾아서 했고, 남이 신경 쓰지 않는다 해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첫직장에서 수습기간 3개월 지나고 상향된 오퍼를 받았기에 나름 인정받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곳에서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도망치듯 이직을 하게 되었다)


직장 생활 4년차가 된 지금은 강남권 일대로만 회사를 다녀 어딜 가나 재미가 없고, 공유 오피스는 흠잡을 데 없이 깔끔하지만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곳은 이제 안 가고 싶고, 똑똑하다는 기준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커리어에 대한 포부 또한 사라졌다. 네트워킹도 지쳤고, 무슨 말을 들어도 시큰둥하다. 공부 또한 안 하고 있다. 해야 하는 일 하고, 주어진 일 끝내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난 1년은 이제까지 해오셨던 대로 일 하신 것 같아요. 올해는 야심 찬 목표를 세웠으면 해요. 그래야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큰 성장이 있으실 거예요."


지난 1년 회고 미팅에서 대표님에게 들었던 말이다. 해왔던대로. 맞다. 




"저는 믿음을 갖고 진심으로 잘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 프로젝트를 맡기고 싶어요. 그 사람이 믿지 않는 일은 시킬 수 없다고 저는 생각해요. 이 일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하시면 빨리 다른 일 하겠다고 말해주세요. 그런데 저는 될 것 같고, 충분히 잘하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못 할 이유가 없는 것 같아요."


오늘 앞으로의 방향성 관련한 미팅에서 대표님과 나눈 이야기이다. 심지어 나에겐 기회이기도 하다. 어쨌든 월급 받으면서 창업에 준하는 경험을 해볼 있는 프로젝트이고, 보상의 업사이드도 열려 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해보지 못한 종류의 일이기도 하다.  


마침 나는 다시 깁스를 하고 있고, 마침 회사가 성수로 이사까지 가게 되었다. 초심(?)을 찾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타이밍이 있을까. 습관적인 발목 부상도 이제는 방지하고 싶고, 관성적으로 하게 되는 직장 생활도 바꿔볼 때이다.


사실 잘 할 수 있을까 싶긴 한데 일단 졸라 열심히라도 해보겠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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