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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제이 Oct 10. 2024

내 친구 TV가 키워낸, 요즘 어른이

다시 새롭게 보는 (TV) 드라마

30대 중반의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렇게 생일을 맞이하고 나면 더는 물러날 곳도 없이 확실하게 30대 중반이 되어버린다. 내가 꿈꿨던 30대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떠올려보면, 일이나 외형이 떠오르는 게 아니라 늘 드라마 속 주인공이 생각났다. 



그만큼 10대 시절, 한창 성장하던 청소년을 키워낸 것이 책이나 교육이 아니라 TV 드라마였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OTT가 워낙 대세로 자리 잡아 시간 맞춰서 텔레비전 앞에 둘러앉는 일이 고릿적 이야기가 되어 버렸지만, 분명 퇴근길을 당기고 야자를 땡땡이치게 만들던 드라마가 시절엔 가득했다. 엄마아빠와 둘러앉아서 보던 주말극도 그랬고 사극도 그랬다. 


하지만 그 시절 마음을 흔드는 건
언제나 16화, 20화짜리 미니시리즈였다.



학창 시절 책 읽기와 거리가 멀었음에도 늘 글쓰기를 할 수 있었던 건 8할이 드라마였다고 생각한다. 월화, 수목, 금요, 주말. 요일별로 봐야 하는 드라마가 방송사마다가 그득했다. 바쁜 스케줄 속에서 겹치는 드라마라도 있을라 치면 주말에 재방송까지 챙겨봐야 하니 참 바쁘지 않을 수 없는 삶이었다. 



인기 드라마는 다 챙겨보면서 중학교, 고등학교 매년 중간고사, 기말고사 도합 12번의 시험을 잘도 치러내고 어른이 되었더니 세상이 바뀌었다. 학번 앞자리가 0에서 1로 넘어가는 대학시절을 보냈다. 그때 당시 가장 유행했던 드라마는 MBC에서 하는 선덕여왕이었는데, 기숙사에 둘러앉아 본방을 보며 "미실"을 따라 하던 끼 많은 남학우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본방사수라는 말이 그때만 해도 어색하지 않았다. 무한도전키즈가 세상을 점령하던 시절이었다. 그때 김태호 PD가 만들어놓은 창의력 넘치는 텔레비전 세상에 녹아들어 무한한 창조와 새로운 도전을 탐내던 청소년과 청년들이 지금은 사회의 중심이 되었다. 


화면과 자판으로 나누어져 접히던 핸드폰이 어느 순간 터치가 되는 바형태의 모양이 되더니, 이제는 슬슬 디카와 MP3 기능을 넘어 더 많은 기능을 갖추게 되었다. 그 끝은 인터넷. 핸드폰에서 누르면 요금폭탄으로 사달이 날 것만 같았던 인터넷이 결국 그 장벽을 깨고 손 안으로 들어왔다. Y2K의 분기점을 나눠본다면 분명 나는 그 시점을 꼽을 것이다.



손안에 인터넷이 되면서, UCC를 넘어 유튜브의 세상까지 빠른 속도로 넘어왔다. 더 이상 시간 맞춰 DMB를 켜지 않아도 되었고, 다운로드 영상으로 컴퓨터에서 드라마를 보는 세상이 되었다. 본방을 사수하지 않아도 충분히 좋아하는 콘텐츠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때가 된 것이다. 


한동안은 그래도 여전히 본방사수의 메리트가 유지되었다. 마지막 드라마 최종화를 보고 다음날 아침 와글거리는 강의실, 술집, 학원에서 대화 나누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러나 미드가 넘어오고, 케이블이 생겨나고 볼거리가 넘치고 시간은 점점 모자라고 이제 각자의 생활에서 여유가 있을 때 영상을 골라보면서 더 이상 '어제 그거 봤어?'는 통용되지 않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제 '요즘 뭐 봐?'로 대화의 포문을 시작한다. 


내 감상을 큐레이션 좌표 삼아 추천을 하고 서로 취향을 공유한다. 더 많은 주제와 더 많은 인물들이 드라마와 영화와 책 속에 등장해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와 듣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 콘텐츠를 취사 선택할 수 있다. 그러면 나는 내가 원하는 세상 안에서 즐거움만 취하면 된다. 고로 세상은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지만 내가 보는 세상은 더 협소해지고, 더 간결해진 걸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의 취향을 오롯이 존중해 준다면 문제 되지 않을 일이다. 너의 세상과 나의 세상이 다르다는 걸 인정한다면 취향이 다르고 각자의 세상이 아무리 좁고 날카롭고 다르다 해도도 세상에 일어날 분란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 안에 갖둬둔 취향과 생각을 더 공고히 하고 다른 이의 세상을 부정하기에 이른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평가와 감상만이 진리라는 생각도 가진 듯이 행동한다. 




꼰대도 많았고, 젠더감수성도 떨어지고, 구시대적 발상도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를 그리고 옛날 드라마를 그리워하는 건 지금에 없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 무언가를 설명해 보려 글을 쓴다. 


지금은 촌스럽다고 할 개성이거나, 이제는 어딘가 위험해버린 이웃 간의 정일지도, 혹은 요즘엔 없는 깍두기를 배려하던 우정 같인 걸지 모르겠다. 곰곰이 떠올려본다면, 이전엔 존재했지만 지금은 다 사라져 버린 것들이 TV 드라마에는 아직 남아있을지 모르겠다. 


미디어 매체는 시절의 문화와 시대상을 담을 수밖에 없으니, 지금 보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말이나 범법행위가 될만한 행동들도 다분할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드라마로, 영화는 영화로 즐겼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그 감상을 먹고 자라 성숙한 '어른이'가 되어 버린 지금 새롭게 드라마를 다시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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