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보다 솔직 발칙한 삼순이의 맛

내 이름은 김삼순

by 민제이

19년 만에 기자회견이란 말을 보았을 때, 시간이 벌써 그렇게나 흘렀다고? 눈을 의심했었다. 웨이브 뉴클래식 프로젝트를 통해서 새롭게 공개된 인기 TV 드라마 시리즈. 앞으로도 줄줄이 라인업을 두고 있지만, 제일 먼저 선정된 드라마가 [내 이름은 김삼순]이었다. 이 드라마가 첫 스타트를 끊는다는데 이견을 가지는 사람이 있을까? 밀레니엄 시대를 관통해서 살아본 사람이라면 그 시절을 관통했던 드라마가 매 해마다 신드롬을 일으켰고, 삼순이는 그중 가히 독보적이라고 볼 수 있었다.


20% 시청률을 넘기는 게 인기 드라마의 시작이었던 때가 있었다. 요새는 20% 시청률을 초대박으로 친다는데, 결국 시청자는 똑같은데 채널이 많아지고 볼거리가 많아져 파이가 조각조각 나버린 셈이었다. 비싼 케이블 를 설치해야만 하루 종일 뮤직비디오가 나온다던지, 건강/뷰티/요리에 관련된 트렌디한 채널을 볼 수 있었다. 이 드라마가 방영했던 2005년엔 중학생이었다.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학생 주제에 공부나 할 것이지 케이블 TV는 언감생심이었으니 공중파 3사 드라마라도 볼 수 있음이 감사할 뿐이었다.


다시 말해 대부분 사람들이 고를 수 있는
드라마 선택지는 3개 중에 하나였다는 것


[내 이름은 김삼순] 이 드라마가 시청률 50%를 넘어 사람들에게는 대 히트 드라마로 기억되었다. 실제로도 방영 시간에 사람들이 길거리, 호프집 텔레비전에 보여 앉아 보는 장면이 뉴스에 나오기도 했고, 드라마에 나온 책 [모모]도 불티나게 팔렸다. 돼지인지 토끼인지, 곰인지 알 수 없는 삼순이, 삼식이의 인형이 정품도 모자라 짝퉁으로 온 거리를 휩쓴 기억도 난다. 그 시절엔 그랬다. 뭐 하나 가 잘되면 1절, 2절에서 끝나지 않고 요즘 말로 흔히 뇌절까지 가는 사태. 사람들이 기억하는 인기 드라마 신드롬이란 건 그런 것이었다.




줄거리.

30살 파티시에 김삼순. 가족과 살던 집이 담보로 넘어가게 된 상황으로 인해 급전이 필요했던 삼순은, 예기치 못하게 얽혀 일하게 된 자신의 레스토랑 사장 '진헌'과 계약 연애로 5천만 원을 얻게 된다. 과거 첫사랑을 잊지 못해 연애를 피하던 진헌은 삼순을 핑계 삼아 어머니의 잔소리를 피하지만, 이내 갑자기 사라졌다 다시 돌아온 첫사랑 '희진'을 만나게 되면서 마음이 복잡해진다.




그때도 삼순이 열풍을 두고 사람들은 "솔직한 여자의 반란"과 같은 헤드카피를 썼었다. 이전 드라마 여 주인공들이 남자 주인공들에게 휘둘리고, 끌려다니고, 신데렐라가 되었다면 삼순이는 이 클리쉐 공식을 다 깨부수었다는 소리다. 이 전후로 당찬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드라마가 꽤 많았다. 그전까진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캔디'형 주인공이 대세였다면, 삼순이는 여기에 좀 더 과하게 솔직함을 얹은 사람이었다.


지금이야 너~무 어린, 서른 살의 김삼순. 드라마 프롤로그만 봐도 그 당시 삼순이를 설명하는 단어들은 참 고리타분하다. 노처녀인 가진 것 없는, 심지어 이쁘지도 않고 뚱뚱한, 이름도 투박한 김삼순. 그녀가 가진 것 중 유일하게 빛나는 건 '파티시에'라는 직업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 마저도 '빵 만드는 사람'으로 치부되어버리고 말 세상이었다. 지금은 디저트에 큰 의미를 담는 사람이 많아졌다. 한 조각에 위로를 받고 찾아다니면서 먹을 정도로 잘하는 집은 문 열자마자 완판을 하기도 하니, 서른 살에 삼순이가 지금 가게를 열었다면 대단히 성공한 여성 CEO가 아닐까 싶다.


2005년엔 삼순이가 가진 보잘것없는 스펙들이 '그래 나 못났다!'라고 말할 수도 없는 때였다. 뒤떨어지는 스펙들을 숨기기 급급한 세상. 모난 사람들을 쉬쉬하면서 대세인 사람들만 '평균'의 삶을 산다고 말했다. 그런 세상에 삼순이가 짠 하고 나타나, 내 세상은 네 기준과 달라!라고 외치며 '평균'의 선을 다 와장창 부숴버리니, 인기가 없을 수 없었다. 그녀의 당돌함을 세상이 사랑했던 건, 삼순이가 그냥 솔직해서가 아니었다. 그녀의 말에는 '자기애'가 기저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이유로든, 조건이든, 어떤 상황이든
난 그냥 '나'로서 지금 괜찮아!라는 '자기애'




여기저기서 놀림받아 싫어했던 자신의 이름도, 결국 사랑하게 된 삼순. 삼순은 나만 사랑하는 여자가 아니라 타인도 자신만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랑'과 '공감'이 많은 사람이었다. 희진이 찾아와 자신이 사랑하게 된 남자를 채가더라도, 그 남자가 갈팡질팡 못해 애매한 양다리를 걸치게 되어도, 삼순은 스스로를 깎아내리지 않았다. 누군가를 원망하지도 않았다. 그저 죽은 아버지를 떠올리며 소주 한 잔을 삼키며 심장이 딱딱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희진이 불치병으로 인해 진헌을 떠났다가 돌아온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몸이 좋지 않아 진헌을 만나고 난 후에도 계속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을 때. 삼순은 무슨 마음으로 희진을 위한 죽을 끓였을까. 희진이 한 숟갈이라도 먹길 바라는 마음으로 죽을 끓인 삼순의 마음은 '이타심'보다는 이 모든 상황을 안으려는 '자기애'라고 생각되었다. 어떤 사람은 그런 삼순에게 "참 오지랖도 광활하다"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 자기애가 이기심으로 발동하지 않는 걸 보면 삼순은 분명 성숙산 어른이 아니었을까.


X세대 삼순의 솔직함이 MZ 세대 솔직함과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남을 내려야 내가 올라가는 게 아니라, 밑바닥에 있는 내가 괜찮으니까 네가 지금 어디에 있던지 '우리, 다 괜찮아'라고 말하는 사람. 나에게 부당한 논리를 펴는 사람이나, 괴롭히는 직장 동료에게도 시원하게 직언을 날리면서도 끝끝내 유머러스하게 마무리지어 토달 수 없게 하는 매력까지. 말문이 막혀도 삼순이가 하는 말에 기분이 나쁠 순 없었다. 기분이 나쁘면 그건 내가 잘 못 말한 거고, 웃어넘기고 만다면 그건 삼순이 말이 맞다고 나도 인정하고 있었단 뜻이다.




끝으로 삼순이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는 모습도 너무나 부러웠다. 자신의 머리카락을 싹둑 무례하게 잘라버린 남자에게 직접 만든 케이크로 싸다구를 날리면서도 고고하게 '내가 만든 거라 비싸지만 너 준다'라고 말하는 당당함. 심지어 그 케이크가 너무 맛있어서 진헌이 생크림을 얼굴에 잔뜩 묻히고도 그녀의 뒤를 쫓아 길거리 캐스팅을 하게 만드는 실력까지. 사람들이 '빠..빠띠 씨에가 뭐야?'라고 하던 시절에도 자기가 만든 케이크 한 조각에 사람들이 울고 웃으며 위로받길 바라는 마음까지. 직업인으로서 먼저 인생을 살아낸 언니로 닮고 싶단 생각을 다시 보며 하게 된다. 물론 이제는 내가 삼순이보다 더 나이가 많이 들어버려서, 어린 삼순이가 더 대단하게 보이는 건 덤.


내가 지금 사는 세상에서 그 시절에 삼순이처럼 따뜻하지만, 당당하게 못할 말 없이 사는, 그런 프로 마인드를 갖춘 직업인으로 오래 일하고 싶다.




첨언.

지금 이 시대로 다시 드라마를 찍는다면, 삼순이가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는 씬에 '아이브'의 '러브다이브'를 불러주면 기갈나게 잘 맞을 것 같다. '나르시시스트'부분부터 '숨참고 러브다이브'까지. 삼순이와 딱 맞는다.




사진 출처. 드라마 공식홈페이지 (https://program.imbc.com/samsoon)

관련 영상. https://youtu.be/rYUlNg65csQ?si=87Z8Z8opLgDchTs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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