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겨울부터 서른까지, 나의 영감에게
혹시 기억하는지, 너를 처음 봤던 그날은 하루 종일 하얗게 흰 눈이 내리던 스물두 살의 겨울이었어.
Song by 박새별 - 그대는 아는지
아니지. 정확히는 스무 살의 겨울. 스무 살이 정말 며칠 지나지 않은 겨울 어느 날. 어려서부터 유달리 감수성이 풍부해 조금만 잘해줘도 짝사랑하는 남학생이 한 달에 한 번씩은 바뀌던 나. 그런 내 인생에 그는 가장 길고 진한, 연애인 듯 연애 아닌 연애 같은 추억을 남긴 사람이었다.
지금이야 SNS가 사람을 만나는 가장 최적의 온라인 공간이지만 내가 대학을 들어갈 때만 해도 가장 큰 온라인 커뮤니티 공간은 단연, 싸이월드였다. 네이트온이 컴퓨터마다 깔려있던 그 시절 네이트는 온/오프라인 커뮤니티의 중심지 같았다. 그래서일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는 대학 합격 발표가 나자마자 입학할 학교 커뮤니티를 찾아 가입하고 누구보다 빠르게 인사글을 올렸다. 그때쯤 각 단과 대학별 학생회들은 발 빠르게 학생회 활동을 할 친구들을 찾고 있었다. 이름하여 ‘오티준비단’. 말 그대로 학생회에서 신입생들을 모아 같이 오티도 준비하고 먼저 선후배도 알아가는 그런 모임이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줄곧 반장과 부반장을 도맡았었고 무엇보다 늘 호기심이 두려움을 뛰어넘는 편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결국 그 오티준비단 모집 공고에 당차게 댓글을 달고 첫 모임날 학교로 향했다.
학교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나와 전공도 다른 그 사람에게 빠지게 된 건 그가 연상의 선배라는 사실보다도 단과 대학의 부회장이라는 배경이 더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스무 살 내 눈에 3살 많은 그는 아주 성숙한 어른처럼 보였다. 때때로 회장보다도 더 차분하고 지혜롭게 상황을 이끌어가는 모습에 자꾸만 시선이 갔다. 이제는 십 년도 더 지나 버린 기억이기에 내가 어떤 순간에, 어떤 이유로 그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혹은 왜 그에게서 헤어 나오지 못했는지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 다만 지금까지도 분명한 건 내 인생을 스쳐 지나간 수많은 남자들 중 그는 내가 가장 열렬히 사랑한 남자라는 점이다. 나는 20대의 절반을 그를 사랑하는 데 다 쏟아붓고도 그와 정식으로 연인이 되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 뒤에 다른 사람과 몇 번의 연애를 거쳤다. 그럼에도 내가 그에게 느꼈던 설렘이나 진한 여운은 다른 사람에게서 다시 느낄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 누구도 그만큼 좋아하지 못했고 그건 내가 그때만큼 누군가를 순수하게 온 마음을 쏟으며 열렬히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이쯤 되면 내가 좋아한 게 그인지 아니면 그 시절의 나인지도 잘 모르겠다.
새하얀 피부를 가진 그 사람은 키가 큰 편도 아니었고 건장한 체격을 가지지도 않았다. 안경을 끼고 책을 보는 모습이 더 자연스러운 인상이었지만 학생회실에서 주로 보는 그의 모습을 어쿠스틱 기타를 치며 흥얼거리는 모습이었다. 반듯한 가정에서 자란 게 티가 나는 태도와 말투가 돋보이는 사람. 그는 큰 소리로 말하기보다는 차근차근 말하는 편이었지만 그 말에 논리가 명확해 사람들을 잘 설득시키기도 했다. 그런 그와 대화를 나누는 걸 참 좋아했다. 그러다 보면 그는 시답지 않은 농담을 던지다가 좋아하는 노래를 추천해주곤 했다. 잔잔한 발라드를 좋아하는 그의 취향은 늘 내 취향과는 영 딴판이었다. 그럼에도 추천해 주는 곡들을 하나씩 듣게 된 건 그가 느끼는 감정을 온전히 공감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싸이월드 BGM으로 알게 된 많은 가수 중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건 ‘박새별’의 노래들이었다. 이유는 아주 단순히 우리 단과 대학 클럽 BGM으로 박새별의 ‘Can you hear me?’가 등록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루에도 열 번씩 클럽을 들락날락하는 나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그 노래를 들었다. 그래도 박새별이란 가수가 좋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잘 알려지지도 않은 실력파 싱어송라이터 가수. 왠지 세상에 ‘나’와 ‘그’만 알 것 만 같은 기분에 그 뒤로도 박새별이 앨범을 내면 꼬박꼬박 첫 곡부터 마지막 곡까지 챙겨 들었다. 어렴풋한 기억에 그의 군대 면회 선물로 첫 번째 정규앨범을 준비했었다. 그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며 설레는 마음을 안고 떠났던 인생 첫 번째 홀로 지방 여행. 그저 바리바리 사간 음식들을 나눠 먹은 것뿐인데 돌아오는 길에 그가 건네준 편지 하나가 좋아서 배시시 웃으며 대구 거리를 거닐었다.
참 신기하게도 박새별의 노래들에는 넘쳐흐르는 사랑의 감정을 벅차오르게 쓴 노래가 많이 없었다. 그녀는 잔잔하게 사랑을 읊조리고 삶의 흐름을 노래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녀의 노래를 들을 때면 어쩔 수 없이 늘 그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세 번을 고백하고도 거절당했는데 매번 또 그냥 다시 친구인 듯 선 후배인 듯 그렇게 지내버리는 우리의 관계는 연인은 아니었지만 분명 친구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많이 좋아했고 그는 자신을 그렇게나 무작정 좋아하고 따르는 나를 단칼에 잘라버리지 못했다. 나도 어렸고, 그도 어렸다는 걸 나이가 꽤 많이 들고 또 다른 사람과 사랑을 주고받으며 지내다 보니 인정하게 되었다. 왜 내 마음을 받아주지 못한 건지 이유를 찾기 위해 방황했던 숱한 순간들도 다 지나고 ‘이유 없음’도 이유라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가 그를 혼자 좋아하고, 나 홀로 기대하다 실망하고, 외롭게 인내하고, 쓸쓸히 이별하면서 나는 연애 아닌 연애를 그와 함께 했다고 생각한다. 그가 준 아주 사소한 것이 나에게 주었던 무한한 기쁨과 아주 보잘것없는 말에도 세상이 끝난 듯 통곡하며 느낀 절망의 순간 모두가 내 인생이니. 그는 나에게 어마어마하게 수많은 감정을 알려준 좋은 인연이었다.
처음 만난 지 십 년도 넘어 스무 살의 새내기와 3학년의 그대는 이제 어느덧 30대 중반의 성숙한 어른이 되었다. 노래 가사처럼 ‘가을 오고 겨울 지나고 새로운 봄이 오면 언젠가는 함께 걸을 수 있을까’ 기대했던 나의 소망들도 다 저물어 버렸다. 그래도 이제는 그 모든 것이 흘러버린 계절로, 울고 웃던 시절로 내 안에 남아 있다는 걸 그대는 알고 있는지 여전히 궁금하다. 아주 이따금. 아주 가끔씩.
사진 출처 : 멜론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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