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관장 팬이다(그래서 어쩌라고)
0:8. 정관장이 IBK의 서브에 정신을 잃었다. 10월 30일 대전에서 열린 정관장 대 IBK의 1세트는 시작하자마자 IBK의 일방적인 득점으로 첫 번째 테크니컬 타임아웃을 맞았다. 최근 들어 이런 스코어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뭐, 점수를 내 줄 수도 있지. 암, 하지만 부키와 메가가 한 점도 못냈다고?
김호철 감독은 부키리치에게 목적타 서브를 보내지 않았다. 대신 서브의 길이와 방향을 매우 다양하게 지시했다. 길고, 짧게. 달라진 서브 공격에 정관장은 흔들렸다. 경기 끝까지 부키리치는 목적타 서브를 받지 았았다. 그런데도 공격이 되살아나질 않았다. 리시브에서 자유로왔지만 예상했던 패턴과 공이 다르게 오니 아마도 리듬이 흐트러졌을 것 같다. 처음에 받고, 이렇게 움직이고, 이렇게 공격해야지 했다가 난데없이 공이 다른 데로 가니 이거 뭐야? 했을 법도 하다. 부키리치의 리시브 점유율은 21.6%, 표승주는 21.5%로 지난 번 페퍼전에서는 27.1%, GS칼텍스 전에서는 부키 31.1, 표승주 53.3% 보다 낮았다.
그러고 보니 얼마전 페퍼와 도공 경기 때 장소연 감독이 임명옥에게 목적타 서브를 치지 않았느냐는 이정철의 끈질긴 질문에 "그 자리를 본 거지 임명옥을 본 거 아니다.” 라고 잘라 말했던 기억이 났다. 목적타 서브가 상대를 흔드는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상대가 당하지 않을 땐 별 의미가 없다는 걸 입증한 것이다. 결국 이 전략은 IBK가 1세트를 무리없이 가져오는데 큰 도움이 됐다.
1세트에서 정관장은 리시브 효율 32%(IBK는 23%다, 요즘 리시브 많이 힘들다) 공격은 9, 블로킹은 2, 범실 5개를 공격 17, 서브 2, 블로킹 1, 범실 2개, 공격성공률 26%에 그쳤다. 반면 IBK는 공격 17, 서브 2, 블로킹 1에 범실 2개, 공격성공률 63%를 기록해 13:25로 세트를 챙겼다. 부키는 서브를 받지 않았는데도 2점을 올렸고, 메가도 2점 반면 빅토리아는 9점을 기록했다. 이번 경기도 혼자 날아다니는 빅토리아다.
1세트와 달리 2세트는 접전이었다. 메가의 오픈 공격으로 정관장이 먼저 득점을 올렸으나 긴 랠리 끝에 빅토리아가 퀵오픈으로 동점을 만들었다. 최정민의 서브 에이스에 이어 육서영 퀵오픈, 빅토리아 백어택으로 3:5까지 IBK가 앞섰으나 메가의 백어택과 박은진의 서브 에이스로 5:5 동점을 만들고 부키의 오픈과 박은진의 속공에 힘입어 13:9까지 정관장이 앞섰다. 이후 2점~3점 차이로 앞서가니 뒤서거니 하던 두 팀은 17:17로 동점을 이룬 후 빅토리아 오픈과 시간차, 부키의 공격 범실 등으로 19:20, 한 점차 앞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부키의 블로킹, 박은진 오픈, 부키의 오픈 등으로 23:22, 정관장이 다시 역전했다. 메가의 오픈으로 세트 포인트를 만든 정관장은 부키가 세 번째 시도한 오픈 공격을 성공시키면서 25:23으로 세트를 마무리했다.
3세트는 의외로 IBK가 긴장을 늦춘 듯 25:18로 세트를 내줬으나 4세트에서 다시 22:25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그리고 마지막 5세트. 육서영과 빅토리아의 퀵 오픈으로 앞서기 시작한 IBK는 메가의 오픈 득점으로
1:2를 만든다. 이후 빅토리아 오픈, 이주아 블로킹, 빅토리아 서브, 부키의 범실로 1:6까지 달아난다. 이후 6번이나 공을 주고 받는 랠리 끝에 메가의 블로킹, 메가의 퀵오픈으로 3:6이 되고 빅토리아의 연속 백어택과 황민경의 오픈이 터지면서 3:9로 스코어를 더 벌렸다. 이후 정관장은 10:14 네 점차로 추격했으나 메가의 오픈을 육서영이 유효 블로킹으로 받아내고 황민경 디그, 천신통의 토스, 빅토리아의 퀵오픈으로 10:15 5세트와 함께 경기를 내주고 만다.
빅토리아는 37득점, 공격종합성공률 53.13%를 기록했고 육서영 14점, 황민경과 이주아가 9점을 기록했다. 부키는 25점을 기록했지만 공격종합성공률은 39.22%에 그쳤고 메가 역시 32.61%(인도네시아에서 촬영까지 왔다던데)에 그쳤다. 표승주 9점, 박은진 9점. 그리고 이날 경기에 이소영과 김희진이 등장해 반가운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이소영은 수비에 집중했고 김희진은 무려 2득점을 올려 박수를 받았다. 홈이었으면 난리가 났을텐데.
정관장은 3연승에 제동이 걸렸고 IBK는 빅토리아의 무서움과 천신통의 세트, 국내 선수들의 화력이 슬슬 터지는 것 같다. 올해 나의 응원팀인 정관장이 3연승을 못해 아쉽지만 내가 몹시 이뻐하는 육서영의 성장을 보면서 몹시 흐뭇했던 경기였다. 그나저나 빅토리아는 당분간, 어쩌면 이번 시즌에 가장 막기 어려운 선수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