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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우리가 사랑하는 콘텐츠의 숨겨진 이야기

by Madame Paris

'지구를 구하자!'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우리의 지구>에서 데이비드 아텐버러의 목소리가 울려 퍼질 때, 시청자들은 북극곰의 슬픈 눈빛에 마음 아파하고, 빙하가 무너지는 장면에 한숨을 쉬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감동적인 다큐멘터리가 제작되는 동안 얼마나 많은 탄소가 배출됐는지 생각해 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전 세계 50개국을 누비며 4년간 촬영된 이 작품은 제작 과정에서 상당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했습니다. 장비와 인력을 싣고 비행기를 타고, 발전기를 돌리며, 숙소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말이죠. BBC의 유사한 다큐멘터리 <블루 플래닛 II> 제작팀은 "촬영을 위해 약 1,500회 이상 비행을 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지구> 역시 비슷한 규모의 이동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환경을 지키자'고 외치는 콘텐츠가 환경을 해치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아이러니. 이것이 바로 오늘날 미디어 산업이 직면한 가장 큰 역설입니다.


주말 저녁 소파에 앉아 팝콘을 먹으며 넷플릭스를 보는 그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소비되고 있습니다. 2021년 영국 카본 트러스트(Carbon Trust) 연구에 따르면, 1시간 스트리밍 시청이 만들어내는 탄소 발자국은 약 55g에서 60g 수준입니다. 이는 약 200m 자동차 주행과 비슷한 양입니다. BBC의 연구는 이보다 낮은 수치인 약 36g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숫자로만 들리시나요? 넷플릭스 구독자 2억 3천만 명(2024년 기준)이 하루에 평균 2시간씩 콘텐츠를 시청한다고 가정하면, 하루에만 약 2,200톤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됩니다. 이는 자동차 약 43만 대가 하루 동안 내뿜는 배기가스와 맞먹는 양입니다. 물론 모든 가입자가 매일 2시간씩 시청한다는 가정은 다소 과장된 것이지만, 그 규모가 결코 작지 않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요? 넷플릭스 보지 말라는 건가요?' 아닙니다. 제가 말하려는 건 그런 게 아닙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콘텐츠와 환경 보호는 반드시 상충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미디어 산업이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는 시기입니다. 할리우드의 대형 스튜디오부터 한국의 제작사까지, 전 세계 미디어 기업들이 '친환경 제작'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뛰어들고 있으니까요.


디즈니는 2022년 발표를 통해 2030년까지 넷제로(Net-Zero) 배출을 목표로 세웠습니다. 넷플릭스도 2021년 탄소 넷제로 로드맵을 발표하며, 2022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아바타: 물의 길' 촬영 현장에서 뉴질랜드 태양광 발전소에서 일부 전력을 공급받았다고 밝혔죠. 영화의 주제처럼 제작 방식도 친환경을 추구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노력들이 단순한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은 아닐까요? 기업 이미지 세탁을 위한 마케팅 전략에 불과한 건 아닐까요? 솔직히 말해서, 일부는 그럴 수도 있습니다. 넷플릭스의 탄소 중립이 실질적인 감축보다는 탄소 상쇄에 의존한다는 비판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모든 변화가 그렇듯, 작은 시도들이 모여 큰 흐름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이 책이 주목하는 건 바로 그 '진짜' 변화들입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스크린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들여다볼 것입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어떻게 탄소 발자국을 줄이고 있는지, 스트리밍 서비스는 어떻게 데이터센터를 친환경적으로 운영하는지, 그리고 한국 드라마는 어떻게 지속가능한 제작 방식을 도입하고 있는지 말이죠. 더 나아가 미디어가 단순히 환경 문제뿐만 아니라 다양성, 포용성, 사회적 책임이라는 더 넓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가치를 어떻게 담아내고 있는지도 살펴볼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뭘 해야 하는데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바로 이 책의 목적입니다. 미디어 소비자로서, 때로는 제작자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 보려고 합니다.


넷플릭스를 보며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즐기는 콘텐츠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사회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래야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으니까요.


자, 이제 리모컨을 들고 채널을 돌리듯, 미디어 산업의 지속가능성이라는 새로운 풍경을 함께 탐험해 봅시다. 우리가 사랑하는 콘텐츠의 숨겨진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죠.


이 여정의 끝에서 우리는 어쩌면 미디어를 보는 눈이 조금 달라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변화의 시작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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