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속 환경 위기와 제작 현장의 친환경 혁신
"우리는 답을 찾기 위해 별 사이를 여행할 필요가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바로 여기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대작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 쿠퍼(매튜 맥커너히)가 한 이 대사는 영화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지구의 환경이 파괴되어 인류가 새로운 행성을 찾아 떠나야 하는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린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환경 위기의 심각성을 강렬하게 전달했다.
2014년 개봉한 '인터스텔라'는 단순한 SF 블록버스터를 넘어 기후 위기에 대한 경고장으로 읽혔다. 먼지 폭풍이 휩쓸고 농작물이 말라죽는 지구의 모습은 현실의 기후 위기를 영화적으로 확장한 것이었다.
주목할 점은 '인터스텔라'가 스크린 안에서만 환경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 아니라, 스크린 밖 제작 현장에서도 친환경 혁신을 실천했다는 사실이다.
'인터스텔라'는 단순한 공상 과학 영화가 아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블랙홀 '가가린'의 시각적 표현은 실제 물리학자 킵 손의 자문을 받아 제작되었고, 이는 나중에 실제 블랙홀 관측 이미지와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화 속 지구의 환경 재앙 역시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다. 농작물을 파괴하는 '마름병'은 실제 식물병과 기후변화로 인한 작물 생산성 감소를 반영했고, 먼지 폭풍은 1930년대 미국의 '더스트 볼(Dust Bowl)' 현상에서 영감을 받았다.
놀란 감독은 이런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환경 위기의 결과를 극적으로 보여주면서, 관객들에게 "지금 우리의 선택이 미래를 결정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인터스텔라'의 또 다른 혁신은 카메라 앞이 아닌 뒤에서 일어났다.
놀란 감독은 CGI(컴퓨터 그래픽)에 의존하는 대신 실제 세트와 로케이션 촬영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영화의 사실감을 높이는 동시에 디지털 효과를 위한 대규모 렌더링 작업에 필요한 전력 소비를 줄이는 효과가 있었다.
'인터스텔라' 제작팀은 아이슬란드에서 외계 행성 장면을 촬영하면서 현지의 환경 보호 규정을 준수했다. 촬영 후에는 장비와 쓰레기를 수거하고, 현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했다. 캐나다 앨버타 주의 밀밭 촬영에서는 지역 농부들과 협력하여 촬영 후 농지를 원상복구했다.
파라마운트 스튜디오는 '인터스텔라' 제작 과정에서 환경 지침을 도입했다. 이는 세트장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식사 시간에 채식 옵션을 제공하며, 촬영 장비의 전력 소비를 모니터링하는 등의 내용을 포함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영화의 우주선 세트 제작에 재활용 자재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제작 디자이너 네이선 크로울리는 가능한 한 많은 재료를 재사용하고 재활용했다고 밝혔다.
'인터스텔라'의 친환경 제작 방식은 할리우드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이후 제작된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덩케르크'와 '테넷'에서도 이러한 친환경 접근법이 계속되었고, 다른 스튜디오들도 이를 참고하기 시작했다.
파라마운트 픽처스는 '인터스텔라' 이후 제작 과정에 환경 지침을 확대 적용했으며, 2018년부터는 연간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발행하고 있다.
놀란 감독의 이러한 접근법은 영화 산업의 탄소 발자국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영화 한 편의 제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며, '인터스텔라'는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변화를 시도한 사례였다.
'인터스텔라'가 보여준 가장 중요한 교훈은 환경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콘텐츠는 그 제작 방식에서도 환경 가치를 실천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윤리적 문제를 넘어 관객과의 신뢰 관계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환경 다큐멘터리가 제작 과정에서 많은 탄소를 배출한다면, 또는 기후 위기를 다룬 영화가 촬영 현장에서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 메시지는 설득력을 잃게 된다. '인터스텔라'는 스크린 안과 밖에서 일관된 가치를 추구함으로써 진정성 있는 환경 영화의 모델을 제시했다.
물론 '인터스텔라'의 친환경 제작 방식이 완벽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국제적인 로케이션 이동을 위한 항공 운송, 대규모 세트 제작, 특수 효과를 위한 전력 소비 등 많은 탄소 발자국을 남겼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시도와 방향성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환경 가치를 제작 과정에 통합하려 노력했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 있는 변화의 시작이었다.
'인터스텔라'는 개봉 후 전 세계적으로 6억 7천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리며 수많은 관객에게 환경 위기의 심각성을 전달했다. 영화 개봉 이후 우주 탐사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증가했고, 기후 변화에 관한 검색어 트래픽도 일시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영화 산업 내부의 변화다. '인터스텔라' 이후 할리우드에서는 친환경 제작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2019년에는 주요 스튜디오들이 참여하는 'Green Production Guide'가 공식 출범했다. 이 가이드는 영화와 TV 제작 과정에서 환경 영향을 줄이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한다.
영화가 전하는 환경 메시지와 그 영화를 만드는 방식 사이의 일관성. '인터스텔라'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추구함으로써, 미디어가 환경을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