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로 겨울은 이래야지 싶을 정도로 오늘 12월의 마지막 날은 체감온도 영하 17도로 꽁꽁 얼어붙었다. 12월에도 25도 이상을 유지하고 있는 싱가포르에서는 한 해의 마무리를 느끼기 어색했기에 이 추운 날은 올해를 마무리하기에 더욱 적합한 환경이다.
2019년 마지막 22번째 비행의 목적지 서울에서 열심히 달려왔던 지난 한 해를 점검하며, 미뤄뒀던 책(팩트풀니스(Factfulness)), 시리즈(인사이드 빌 게이츠(Inside Bill's Brain))와 함께 어느 때보다 조용하게 마지막 날을 보낸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두 콘텐츠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서로 엮이면서 2020년을 생각해보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Connecting the dots라는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는 것들은 지난 사건들일 수 있다. 나 또한 이 말을 좋아했었고, 그랬기에 경험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며 변화를 만드는 일에 늘 우선적이었다. 그러나 이 말을 지표 삼아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더 많은 내가 dots(사건)에만 집중한다면 어쩌면 단편적이고, 하나의 dot 안에 담기는 수많은 의미들을 퇴색시킬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오늘을 살고 있는 나는 내 삶과 새해의 목표에 대해 점보다 입체적인 블록으로 또한 이 블록으로 나만의 집을 만드는 일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Connecting the dots를 얘기할 수 있는 건 탄탄한 집들을 여러 개 짓고 나서 하나의 빌리지가 되었을 때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현상이다.
팩트풀니스가 제시하는 관점들의 매력은 한스 로슬링이란 분은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지?부터 시작한다. 에피소드를 보면 그는 의사인 듯하나 국제적인 활동가로 활동한다. 이야기 방식에서는 데이터 분석가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10가지 본능에 대한 인지나 사실충실성을 바탕으로 이 본능을 제어하는 방식 등에서는 깊이 있는 아우라가 느껴진다. 한 평생 도대체 몇 번의 비행기를 타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으며, 마주했던 크고 작은 사건들을 해결하고, 수많은 강연장에 섰었을지 이 책 뒤에 있는 농축된 경험과 지식에 엄청난 자극이 되었다.
마윈은 30대는 잘하는 일에 전념할 시기 40대는 어떻게 집중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시기라고 했다. 그러나 빌 게이츠(인사이드 빌게이츠에서 보여진)는 평범한 인생의 30/40대를 20대부터 배우고, 전념하고, 집중하면서 폭발적인 시간을 보냈다. 남들의 3일이 그에겐 하루 생활이었던 격이다. 학창 시절부터 엄청난 집중력과 문제 해결 능력으로 비즈니스를 시작하고, 마이크로소프트에서의 혁신이 이어지기까지 그가 습득하는 지식의 양, 일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남달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폭발적인 그릿(Grit)은 이런 형태였을까를 증명하며 그가 만든 제품들이나 쌓아온 부, 명성은 그의 깊이에서 나온 결과물이었다.
멋진 이들의 이야기들을 결과만 가지고 느끼고, 배우는 일은 위인전을 읽으며 꿈을 키워나갈 10대에 필요한 일이다. 마윈이 말한 열심히 전념할 30대의 지금 시기에는 이들의 노력과 경험, 투자에 녹아있는 그 깊이에서 더 큰 자극을 받아야 한다. 결과만으로 광을 내고자하는 이들의 이야기보다 깊이 있는 인사이트에서 나오는 아우라 가득한 분들의 이야기를 찾아 배워야 한다. 새해에는 깊이 있는 더 많은 책들과 이야기, 콘텐츠가 필요한 이유다.
이들의 업적이 의사로서, 사업가로서 하나의 집을 짓는 데에 그쳤다면 이 콘텐츠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열심히 살자'로 정리할 수도 있었을 거다. 그러나 하나의 집을 짓는 과정에서 얻는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또 다른 집들을 만드는 도전 혹은 하나의 빌리지를 만드는 위대함과 같은 또 다른 혁신을 만들었고/만들고 있기에 감동적이다. 어릴 때부터 판/검사, 의사가 되거나 대기업에 취업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란 우리에겐 도통 다른 차원의 일들이다. 우리네의 관점에선 탄탄하게 집을 지으라고 주어진 인생에서 집이라는 설계도를 벗어나 넓은 빌리지가 형성되는 일이다.
두 콘텐츠에서는 사람을 치료하는 훌륭한 의사를 너머 세상을 느끼고 경험했던 이가 제시하는 이야기로부터의 배움이있고, IT 산업에서 쌓은 업적과 부를 너머 깨끗한 물을 제공하고, 소아마비를 근절하고, 안전한 에너지 공급에 힘을 쏟는 혁신적인 일들에 대한 교훈이있다. 하나의 Vertical에서 쌓은 경험은 전혀 다른 영역으로 혹은 더 큰 의미의 일들로 차원이 다른 어떤 Impact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미래에는 다채롭고, 의미 있고, 흥미로운 일들이 우리한테는 더 많이 벌어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넓혀가는 일들에도 관심과 바라보는 눈이 필요하다.
내가 커리어를 쌓고 있는 IT 영역은 전세계에서 상대적으로 새로운 영역이다. 비즈니스의 형태도 새롭고, 만들고자하는 문화도 진보적이다. 그럼에도 전통적인 산업이나 산업이 아닌 정치, 학계 등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도 동일하게 흐르는 맥락은 있다고 생각한다. 각기 다른 분야에서 다른 방식으로 생산활동을 할 뿐 사람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들에는 유사함이 있다. 그렇기에 "어디서든 일 잘 할거 같은 사람"이란 컨셉은 충분히 있을 수 있겠다. 두 사람과 같이 한 곳에서의 깊이를 가진 이라면 특히나 새로운 관점이 더해진 IT 영역과 같은 곳에서의 깊이라면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해나갈 때 더 파괴적인 일들이, 재미있는 인사이트들이 나올 수 있다.
내가 하는 일들이 미래에 다채로운 집들과 함께 멋진 빌리지를 꾸릴 수 있다는 기대는 새해를 시작하는 데에 있어 긍정적인 에너지가 된다.
새해라는 전환이 가져오는 좋은 점은 새로운 동기부여를 얻게 된다는 거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새해도 물론 열심히 살아볼 테지만 새해에 특히 필요한 생각, 에너지 등을 한번 점검해보면서 은근한 설렘이 생긴다. 마무리지으며 올해 부족했던 점들도 어느 한켠에 노트해둔다. 얼마나 나아질지는 자신하기 어려우나 인지하고, 계속해서 꺼내볼 거라는 데에 의미를 두며 조금 더 나은 삶을 기대하게 된다.
참 신기하지만 이런 것들은 추운 곳에 와야 더 민감해지고, 다짐으로 굳어진다. 그런 점에서 2019년 마지막을 다른 곳이 아닌 한국에서 보낸 건 잘했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