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그대로, 느껴지는 그대로.
제주, 뮤지엄, 여행. 듣기만 해도 행복한 세 단어가 동시에 행위할 때, '행복' 가까이 도달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비교적 최근에 들린 제주의 미술관, 박물관, 건축물들 중에 제주를 오롯이 담은 곳들을 소개한다.
세월 따라 자연을 품고 진화하는 뮤지엄. 건축가 이타미 준(한국이름 유동룡)은 제주의 돌, 바람, 물을 주제로 세 동의 작품을 남겼다. 계절, 시간, 자연의 사물들, 날씨 모두 작품의 일부다. 비오면 비 오는대로, 흐리면 흐린대로. 녹슨 철판과 빛바랜 적송도. 초록의 나무와 낙엽도.
이철수 목판화가의 '흔들릴 것 다 흔들리고'라는 작품을 좋아하는데, 이곳에 서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다른 계절의 모습도 궁금해 봄에 다시 찾으려한다.
(Tip) 예약이 어려우니 미리미리 해둘 것. 예약 가능한 날에 제주 일정을 맞추는 게 속편하다. 바로 옆 본태뮤지엄도 훌륭. 도슨트 가이드로 전시를 관람하며, 퀴즈를 맞추면 선물을 준다.
https://waterwindstonemuseum.co.kr
제주를 그린 화가 김택화. 소주 '한라산' 라벨의 주인공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첫 번째 사진 속 작품에 반해 돌아왔다. 최근 마라도에 갔는데, 해안 끝자락에 파도치는 모습을 보는 내내 마치 이 그림 앞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찐하게 끌리는 이유 중 하나는 내 나이와 같은 1987년도 작품인 것도 한 몫(별게 다 의미). 운 좋게도 한적한 때 방문해 혼자 전실을 둘러봤다. 2층 카페 '화실'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며 작품을 복기했다. 뮤지엄샵에서 한라산 포스터 한 장 사다가 현관문에 붙였다. 매일 제주로 출근하는 기분.
(Tip) 한적한 타이밍을 노리세요. 혼자 오롯이 작품 속에- 제주의 풍광 속에 갇히는, 그런 호사를 누려보세요. 간혹 이 공간과 전시를 기획한 김도마 작가(김택화 작가의 아들)의 투어 프로그램도 진행되니 참고.
https://kimtekhwa.com/kimtekhwa
이곳을 방문하기 전과 후로, 제주를 바라보는 내 시선이, 내 마음이 달라졌음을 느꼈다. 제주의 어르신들에게 4.3을 물으면 "속솜허다(잠잠하다, 조용하다는 의미의 제주 방언)"라고 할 정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말하고 싶지 않은 역사. 그동안 뉴스에서 본 한두 줄의 설명으로 4.3을 인식했던 내게, 이번 기념관 방문은 너무도 큰 자극과 아픔, 충격을 줬다. 이제야 오다니, 괜스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제주를 좋아하고, 제주를 아낀다면 이 기념관을 꼭 와봐야 한다. 제주의 과거는 몹시 어둡고 아프다. 이곳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가 있다. 평화와 인권을 위해 오래 기억하고 추모하고, 나아가자.
(+) 제주 다크투어리즘 코스가 있으니, 살펴보기를 추천한다.
https://jeju43peace.or.kr/kor/sub05_01.do
지역에 가면 박물관은 꼭 들리는 편. 지역을 알기에 좋은 콘텐츠와 Tmi가 가득가득. 어린이 박물관도 인상적. 어박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 듯하다.
https://jeju.museum.go.kr/html/kr/index.html
이외에도 제주에는 예술 스팟이 많다. 상업적으로 찍어낸 이름만 '박물관'이 아닌, 예술을 담은 공간들로 발길을 돌려보자.
제주에 김창열 미술관이?! 한경면 저지예술인마을에 가면 물방울 화가 김창열 미술관이 있어서, 그 대단하고 비싼 작품을 실컷 볼 수 있다. 왜 여기에 김창열 미술관이 있는지 궁금하다면 방문해보시길. 이 마을에는 다른 갤러리도 많으니 천천히 여유를 갖고 오는 게 좋겠다.
안덕면 비오토피아에 있는 본태박물관은 안도다다오의 건축 자체가 작품이자, 전시 콜렉션도 대단히 훌륭하다. 위에 소개한 수풍석뮤지엄 바로 옆. 꽤 오래전 이곳에서 쿠사마야요이 작품을 본 충격으로 도쿄에 찾아가기까지 했다. 지금도 내 방에는 그녀의 포스터가 걸려있다.(원화가 갖고싶다) 비오토피아는 제주에서 가장 좋은 타운하우스인데, 인근 핀크스까지 이 일대를 Sk에서 관리하고 있다는 tmi.
포도미술관은 비교적 최근에 개관했다. 전시가 흥미로웠다.
제주 도심의 아라리오뮤지엄도 콜렉션이 어마무시하다. 천안, 서울, 제주 중 서울의 공간사옥을 가장 좋아하지만, 제주에서 세 번이나 갔을만큼 좋았다.
그리고 또 이런 곳들이 있다.
제주 최초의 사립미술관 기당미술관(서귀포)
제주도립미술관은 방문한 지 좀 돼서 기억이...ㅠㅠ
중문의 이왈종미술관은 정말 유명.
제주의 역사를 알고 도민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국공립 박물관은 무조건 추천이다.
굳이 '공간'으로 들어가지 않더라도 제주 섬 자체가 예술이다. 거센 바람에 기울어진 나무, 파도 거품, 낮은 집의 색색들이 지붕, 구불구불하고 촘촘한 돌담, 화강암의 지형지물, 귤의 주황 빛깔, 동백나무의 붉은 꽃, 초록의 한라산과 꼭대기에 쌓인 눈. 오름, 동쪽과 서쪽의 다른 바다. 육지것의 눈에는 제주의 모든 것이 낭만이고 예술이고 작품이다. 그들의 역사, 문화, 삶을 존중하는 것을 전제로.
+ 예전에 제주의 건축에 대한 강연을 들은 적 있다. 제주의 해녀, 술, 공예 등 문화 콘텐츠도 흥미진진하다. 소개하고 싶은 제주 스타트업도 정말 많다. 제주의 맛은 말할 것도 없다. 한라산 정상에 오를 땐 죽을 만큼 힘들어했지만, 오름은 사랑하는 편. 제주를 찾고 싶을 때 하나씩 다뤄봐야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