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했던 기도
띵띵띵띵.. 띵띵띵띵... 알람이 계속되었다. 자리에 똑바로 앉아 양쪽 손잡이를 잡고 힘을 줘봐도 몸이 좌우로 흔들리며 놀이공원 기구처럼 아래 위로도 솟구쳤다. 안전벨트를 매달라는 기내 방송이 다급하고 절박하게 이어졌다. 비행 중에 ‘기류가 불안정하여...’라고 시작하는 기장의 안내 방송은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다. 자주 듣는 방송과 다르다고 느끼기까지 얼마나 지났을까? 회오리에 들어간 것처럼 몸이 흔들리더니 정말 엉덩이가 좌측 눈높이 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뒤틀리는 순간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고 뒤쪽에서 아이는 깨트리는 듯 울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실제로도 진짜 있을까 의심했던 산소마스크가 머리 위에서 낙하산처럼 떨어져 내려오는 순간, 비행기 추락사고 기사가 1면에 실리는 상상을 했던 것 같다. 사망자 명단 아니면 실종자 명단에 내 이름이 실리겠구나라고도. 그런 생각이 지나간 번개 같았던 순간 나는 단 한 가지를 기도했다. 그날의 기도는 한동안 자주 떠올라 나를 괴롭혔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도록 바로 죽게 해 주세요.’
사랑하는 가족에게 어떻게든 메시지를 남기고 싶다는 생각은 왜 하지 못했을까. 하다못해 살려달라고 이렇게 죽고 싶지는 않다고 기도할 마음은 어째서 들지 않았을까. 내 죽음으로 슬퍼하고 충격을 받았어야 했을 내 식구들 얼굴이라도 떠올리며 절박했어야 할 순간에 나는 다만 간절하게 바랬다. ‘고통을 느끼지 않고 죽게 해 주세요.’
업사이드 다운, 말 그대로 위가 아래가 되고 좌우가 뒤바뀌며 뒤틀고 핑핑 돌던 비행기는 산소마스크를 뱉어낸 후에 안정되었다. 그날 비행에서 난 죽지도 않았고 다치지도 않았다. 동료들 친구들에게는 정말 산소마스크가 내려오더라며 무용담을 얘기하면서 사진을 남기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을 뿐이지만 난 그날 나 혼자 했던 기도롤 자주 떠올렸고 혼자 죄책감 비슷한 것을 느꼈다. 쓸데없는 오해 혹은 서운한 감정을 가지게 할 이야기라서 가족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배에서 비행기에서 사람들이 자기 죽음을 예감하는 순간 남긴 것 들에 대한 뉴스를 접할 때마다 나는 뜨끔하게 그날을 떠올린다. 필사적으로 사랑했다고 고마웠다고, 메시지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닿을지 닿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새도 없이 생애 마지막 순간 사랑을 전하고 남겼던 사람들과 달리 나의 이기적이고 조금은 쓸쓸한 기도를 떠올리게 된다. 번번이 슬며시 죄스러운 느낌이다. ‘제발 고통스럽지 않게 바로 죽었으면 좋겠다. 오래 고통스럽지 않게 그냥 간단하게 끝나면 좋겠다.’고 바랬던 날은 내가 옥스퍼드로 날아가던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