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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스테트 bastet Oct 03. 2022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있냐고

옥스퍼드의 율리타

그럴 시간이 없었다.

할 일이 태산이고 그 태산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파도처럼 밀려오기도 해서 매일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숨이 가빴다. 이럴 때 어른들이 하는 말이 있었다. '죽으래야 죽을 시간이 없다'라고. 딱 그런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막아내며 버티고 있는데 한가하게 교육을 가라니.

"아시잖아요? 포럼이 3주도 안 남았어요. 끝나고 가겠습니다."

"본사에서 날짜가 정해져 내려와서 저도 어쩔 수가 없어요."

포럼은 내가 맡고 있던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행사다. 일 년에 한 번 수천 명을 초대하여 세미나와 전시를 하는 이틀짜리 포럼이 막바지에 엉켜있었다. 섭외한 주요 연사 중 한 사람이 펑크가 났고 전시 협력업체는 자꾸 엉뚱한 소리를 했다. 포럼 관련 진행 회의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여 화를 내고야 말았다. 담당자를 불러 소리를 질러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돌아서던 길이었는데 그런 나를 불러 세우고는 한가하게 리더십 교육이라니. 그것도 3일이나 자리를 비우라니.


옥스퍼드의 리더십 교육이라고 했다. 임원 승진자 대상 교육이니 누구와 일정을 바꾸거나 대신 보낼 수도 없는 일이다. 몇 달 전 교육이 있을 거라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이렇게 하필 죽으래야 죽을 시간도 없는 시간에 가게 될 줄은 몰랐다.

"요즘 스트레스 심해 보이시는 데 핑계 김에 기분 전환도 좀 하고 오세요."

담당 임원은 옥스퍼드 교육이 얼마나 좋은 피드백을 받았는지 설명했다. 임원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람들 모두 다녀오고 나서 새로운 안목이 생겼다고 했다는 것이다. 아침에 소리를 지른 일이 떠올랐다. 좋은 매니저로 리더십을 발휘하게  것이라고. 제길... 지금 사람을 놀리는 건가? 교육이나 가서 제대로 일을 챙기지 못하게 되고 행사가 엉망이 되면  스트레스는  커지겠지. 하늘 아래 무슨 새로운 교육이 있다는 건가. 교육으로 사람이 달라질  같으면 이미 사람들이  달라져  이상 교육 비즈니스란 없을 거라는 말을 삼키고 일어났다. 가라면 가야 했다.


포럼 발표자들이 보내온 자료 파일들, 새로 시작하는 캠페인에 쓰일 디자인 시안들, 다가오는 아시아 지역 분기회의 자료에 내년도 예산 계획을 제출하려면 필요한 기초자료를 꼼꼼히 챙겼다. 파일로도 챙기고 필요한 것은 인쇄를 하면서 출장 준비를 마쳤다. 밤 11시 30분 오늘은 빌딩에 불이 꺼지기 전에 퇴근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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