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난다 Aug 04. 2021

진로탐험 10년차 엄마가 사춘기 아들에게 주는 선물

애들아, 엄마는 이렇게 살 것이다!


세상의 틀에 갇히지 말고 스스로 네게 맞는 길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공부만이 답은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요즘 너를 보며 어쩌면 그게 오히려 너를 더 혼란스럽게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다시 시간을 돌이킨다고 해도 엄마는 같은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아. 그 혼란 속에서 자신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저절로 '위대함'에 이른 존재를 아직 만난 적이 없거든. 엄마로서도, 인생 선배로서도 네가 네 안의 '위대함'을 찾아 깨워 펼쳐가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거둘 수가 없기도 하고.


왜 꼭 힘들게 '위대함'을 찾아 깨워야 하느냐구? 그런 건 영화 속 영웅들에게나 있는 거 아니냐구? 어차피 안 될 거 괜한 고생만 하는 거 아니냐구?


알아. 그 마음. 엄마도 딱 그런 마음이었거든. 그래서 어떻게든 피해보려고 애를 썼어. 그런 허황된 꿈을 꾸는 사람들이 바보처럼 느껴지기도 했어.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는 것이 현명함이라고 믿었었던 거야.


그런데 말이야. 그게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라는 걸 처절히 경험하게 되면서 세상을 전혀 다르게 보게 되었다. 진짜 현명함이란 혼란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혼란 속에서 자신의 답을 찾아내는 힘이라는 걸 알게 된 거지. 그리고 이 힘은 정확히 경험에 비례해 늘어난다는 것도.


체계적인 내면탐색을 통해 네 안의 '위대함'의 씨앗을 발견하는 것을 도와주실 청소년 진로전문가  선생님. 다양한 체험을 통해 네 안에도 있는 위대함의 씨앗이 펼쳐지는 느낌을 경험하도록 도와주실 숲철학자 선생님.  네 '위대함'의 씨앗을 성장시켜줄 양분인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돌봄 연습을 도와주실 명상전문가 선생님.


34일간 여행을 함께 할 스승님들은 지금 네가 품고 있는 그 질문을 끝까지 따라가 자신의 답을 찾아내신 분들이야. 엄마가 살아보니 삶의 깊이와 방향을 결정하는데 부모만큼이나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스승이더구나. 그걸 아니까 어떻게든 네게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은 욕심을 어쩔 수가 없구나.


하지만 그렇게 '스스로'가 중요하다면 어떻게든 혼자서 해야지 스승들의 도움을 받으면 안 되는 거 아니냐구? 맞아. 그럴 수도 있지. 그런 마음이 든다면 어쩌면 아직은 좀 더 네가 알고 있는 네 방식을 실험해야할 시기 인지도 모르겠구나. 그렇다면 지금은 적절한 때가 아닐 수도 있어. 그런데 혹시 '자기 힘으로'라는 뜻을 품은 '스스로'라는 단어를  '혼자 힘으로'로 이해하고 있는 거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줄래?


'스스로'란 '혼자서 모든 것을' 이 아니라 '자신에게 필요한 도움을 알아보고 청하는 힘'을 포함하는 표현이 아닐까? 너를 위해 준비한 여행이지만 어쩌면 숲에서 너를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거 알아. 그것이 네 선택이라면 당연히 존중할테고. 그래도 엄마는 이 여행에 엄마가 할 수 있는 모든 정성을 다해보려고 해.


비록 아들인 네게 직접 전할 수는 없다고 해도, 네 주위에 자신안의 '위대함'을 자각하는 친구들이 늘어갈수록 네가 살아갈 세상이 아름다워질 거라고 믿으니까.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네가 만날 세상을 밝히는 것이 엄마로서, 그리고 인생선배로서 지금 여기에서 사랑하는 너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믿으니까.


                                           이제 막 진로탐험을 시작하는 아들에게 진로탐험 10년차 선배 엄마가



그야말로 우여곡절 끝에 <청소년 진로탐험 여행>에서 돌아온지 일주일이 지났다. 이번 여행은 엄마로서 아들에게 주는 마지막 엄마표 교육이자 프로 컨텐츠 프로듀서로서 기획부터 섭외, 모객, 진행에 마무리까지 전 과정에 관여한 첫 번째 프로젝트였다.


남이 펼쳐놓은 상에 맡은 음식 한 가지만 갖고 잔치에 참여할 때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과제들이 숨 돌릴 짬도 없이 몰아닥쳤다. 어떻게든 잘 해보고 싶은 열망에 필사적으로 과제를 수행했지만 전에 없는 고강도 자극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된 부담은 몸과 마음에 고스란히 흔적을 남겨놓았다. 토끼눈에 부르튼 입술, 뒤집어진 피부 등 눈에 보이는 것은 그나마 양호한 편에 속했다.


프로그램을 디자인하는 과정에 참여해주신 분들, 열정을 다해 강의와 워크숍을 이끌어주신 선생님들, 헌신적인 봉사로 진행을 도와주셨던 어머님들, 낯선 환경 속에서도 잘 적응해 따라와 준 아이들, 그리고 아내와 엄마를 다른 이들에게 내어주고 그 빈자리를 감당해준 가족들.


이 밖에도 많은 분들의 이해와 배려가 있었기에 초보 프로듀서의 첫 작품이 무사히 세상과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을 머리로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여행 이후에도 계속되는 훈훈한 후기들에 나도 모르게 엄마미소를 짓곤 하면서도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의 체증이 가슴께에 얹혀 좀처럼 내려가지를 않았다.


대체 무엇을 바라고 아무도 시키지 않은 고생을 사서 한 거니?
이럴 거면 뭐 하러 괜한 일은 벌인 거냐구?
이래도 이 일을 계속 하면서 살아가겠다는 거니?


 결국은 작정을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스스로 던진 질문에 대답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빈 화면만 바라보다 다시 말을 건넨다.


미안해. 내가 또 네 마음을 멋대로 재단했구나.
감정에 옳고 그름이 없다는 걸 또 잊었어.
솔직한 네 마음 이야기가 궁금한데 들려줄 수 있겠니?


그리고 또 한참의 기다림. 뜨거운 눈물과 함께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저 정말 잘했죠?’하고 달려가
칭찬받을 누군가가 필요해.  
나만 보면 다들 자기들 힘든 이야기만 하고.
 알아. 나도.
모두가 너무나 잘 해줬다는 걸.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는 것도.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들어주는 사람만 있어도
또 기운을 차려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아.
나 역시 그런 분들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으니까.

이제는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줄
차례가 되었다는 거,
머리로는 분명히 알겠는데 그게 잘 안 돼.
여전히 위로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내가 있다구.

나 어떻게 하면 좋지?
역시 나는 안 되는 걸까?
능력도 안 되면서 괜한 욕심내느라
오히려 모든 사람들을
다 힘들게 하고 있는 것 같아
미안해 미칠 것만 같아.


많이 울었다.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당연한 일이었을까? 답답하던 가슴이 조금은 후련해진 느낌이 들었다. 호흡을 고르고 쏟아내듯 써내려간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읽어보았다. 눈물을 쏟아내기 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 살 두 살 세 살 처음 3년은 너를 먹이고 재우고 그저 건강히 잘 키우는 데 쓰마.
너의 미소도 너의 똥도 모두 나를 미치게 할 것이다.
나는 미치도록 행복했다가 미치도록 힘겨울 것이다.
이런 ‘미침’은 엄마만의 뜨거운 특권.
나는 웃다가,
울다가,
그 어떤 경우라도
다시 네 자그만 손바닥 냄새를 맡고 일어설 것이다.

오소희의 『엄마의 20년』 중에서


그렇다. 나는 오랜 기다림과 진통 끝에 ‘나의 세계’라는 갓난 아이를 품에 안은 엄마다. 그 세계의 미소에 울고, 똥에 울 수 있는 ‘미침’은 한 존재를 오롯이 책임지는 엄마만의 뜨거운 특권이었던 거다.


그렇다면 자신 있다. 나는 이미 두 번씩이나 같은 과정을 경험했으니까. 아이 둘을 기르면서 그랬듯이 나는 분명히 잘 해낼 수 있을 거다. 다시 그 자그만 손바닥 냄새를 맡고 일어서 3년, 그 세계를 먹이고 재우고 키우는 데 정성을 다할 것이다. 엄마만의 특권을 다시한번 뜨겁게 만끽할 것이다.



이전 17화 무가치감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