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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난다 Oct 29. 2024

훌.예.세.젤.불

훌륭한 직장과 예쁜 아이를 가진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여인

회사에선 그다지 신나게 적응하지 못했다. 육군장교셨던 아빠를 따라 수차례 전학을 다니며 몸으로 익혔다고 자부하던 적응력이었는데 조직생활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들어와보니 조직은 이미 견고하게 짜인 판이었다. 남들만큼 해선 판을 뚫고 얼굴을 내밀 수 없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투입 대비 산출의 효율을 계산해보니 도대체 수지가 안 맞는 게임이었다. 경쟁상대들과 나는 기본 인프라가 달랐다. 무리해봐야 그냥 이용만 되고 버려질 것이 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과와 상관없이 과실의 주인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나 할까.. 


신포도였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가질 수 없으니까 자꾸만 가치를 절하시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큰 아이를 임신하고 있을 무렵 첫 번째 승진 발표가 있었다. 아이 때문에 승진에서 누락될 수 없다며 독을 품고 근무했다. 착실히 실적을 쌓고 어떤 부조리도 웃으며 참아 넘겼다. 경쟁상대였던 남자직원은 ‘남자’라는 것 빼놓고는 당췌 뭐하나 겨룰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승진은 그의 몫이었다. 그때 알았다. 처음부터 결과는 정해져 있었구나. 내가 아무리 잘해도 나를 위한 자리는 처음부터 없었구나. 억울했다. 예상치 못했던 건 아니었지만 막상 현실로 다가오니 이건 또 다른 문제였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어떻게 해서든 그들이 실수했다는 것을 증명해보이고 싶었다. 


출산 후 다이어트에 매달렸던 것도 오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전에 하던 다이어트와는 성격이 달랐다. 단순히 ‘美’에 대한 추구를 넘어선 승부였다. 승진에서 누락한 후 몇 개월을 끊임없이 ‘내게 부족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 어이없게도 결론은 몸이었다. 


나를 여자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내내 몸이 콤플렉스였다. 당연히 나는 항상 다이어트 중이었고, ‘다이어트에 성공만하면’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며 본격적인 삶은 언제나 다이어트 이후로 미뤄두고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런 본질적인 열등감에도 불구하고 내 삶은 그럭저럭 세상의 보조에 맞춰 진행되긴 했다. 


하지만 저 깊은 곳에는 늘 ‘내가 조금만 더 날씬했더라면 훨씬 나은 결과가 있었을텐데..’하는 아쉬움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밝은 척 웃고 다녔지만 그 웃음으로 주어진 나를 최적화하지 못하고 삶을 낭비하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불만까지 지울 수는 없었던 것이다.


조직에서의 좌절감은 이런 나의 숨은 불씨에 기름을 부었던 셈이었다. 나 스스로에게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면서 다른 누구한테 대접받기를 바란다는 게 우습다 생각했다. 내 몸 하나 마음 먹은대로 관리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 원망만 하고 있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내 자신으로부터의 존경심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승진 등 회사에서의 수혜는 오히려 부차적인 것으로 느껴졌다. 


다이어트는 출산한지 50일째 되는 날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몸은 아직 회복이 덜 되었고, 아이는 꼬물거렸다. 아빠는 중국에서 간 이식후 아산병원에 입원해 계셨고, 엄마는 아빠 병수발을 하시느라 나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으셨다. 조건은 별로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결정된 일이었고, 이제 ‘어떻게’를 제외한 질문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렇게 50일쯤 지나자 임신 전 입던 옷을 입고 출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 목표는 더 먼 곳에 있었다. 기왕 시작한 김에 끝장을 보고 싶었다. 매끼니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음식만 먹어야하는 타이트한 다이어트를 지속하기 위해선 동료들의 이해를 구해야 했다. ‘몸만들기’한다고 해선 씨도 안 먹힐 것이 뻔했다. 유난히 가부장적 분위기가 강한 조직에 맞게 ‘아이가 아토피가 있어 모유수유를 위해 식이요법을 해야 한다’고 둘러댔다. 사소한 저항이 있었으나 부서장과의 식사에서 과감히 도시락을 꺼내먹는 나를 본 이후 내 앞에서 뭐라고 토를 단 인물은 없었다. 


100일쯤 되어 25사이즈 청바지를 입던 순간은 정말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이 기뻤다. 무엇보다 자신과의 약속을 철저히 지켜낸 스스로가 만족스러웠다. 낯선 사람, 특히 남자들의 호의적인 반응도 싫지 않았다. 하지만 기대했던 만큼 모든 문제가 일시에 사라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몸과는 상관없이 여전히 불편한 관계는 불편했다. 오히려 더 불편해진 관계도 있었다. 또 단순히 살을 덜어낸다고 모두 연예인처럼 예뻐지지는 않는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 역시 오히려 전만 못해진 부위도 있었다. 이제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의 원인이 살 때문이라는 가설은 기각할 수 밖에 없었다.


100일을 기약하고 시작한 다이어트였지만 약속된 시간이 되어 원하는 것을 얻고 나서도 도저히 그만둘 수가 없었다. 다시 예전의 식습관과 생활습관으로 돌아간다면 몸 역시 그렇게 될 것이 뻔했다. 예쁜(?) 몸이 모든 문제를 저절로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일단 손에 넣은 것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당시 나의 식단은 당당단, 즉 아침 당근, 점심 당근, 저녁 단백질이었다. 그렇게 먹고 새벽마다 두시간씩 수동워킹머신 위를 걸었다. 게다가 아무리 힘들어도 한 번 일어나면 절대로 눈을 붙여선 안 된다. 피곤해야 살이 더 잘 빠진다는 이유였다. 이렇게 몸을 모질게 볶아대면서도 목표를 향해가던 100일간은 힘든 줄 몰랐었다. 나날이 줄어드는 체중과 사이즈를 확인하는 기쁨에 세상이 아름다웠다. 그러나 일단 원하던 선물을 받고 나자 어김없이 찾아오는 내일이 고약한 일수쟁이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욕심만 앞서 무리하게 대출로 장만한 집에 살고 있는 모양새였다. 엄청난 대출이자 갚느라 정작 좋은 집을 즐길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드는 순간엔 늘 ‘다행이다. 오늘도 무사히 넘겼구나. 아~!! 이대로 내일이 오지 말았으면’하는 마음뿐이었다. 자연히 신경은 점점 날카로워졌고 가족들과도 동료들과도 점점 멀어져갔다. 


뭔가 문제가 있다고 느끼긴 했지만 해결을 할 의지도, 시간도, 방법도 없었다. 하루하루 대출이자 갚고 나면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조차 남지 않았으니까. 몸에 이상이 오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생리가 없어진 것이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알 수가 없었다. 곰곰이 생각하다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문제의 원인이 아닐까하는 결론에 이르렀다. 돌발상황이 잦은 업무성격이 규칙적인 운동을 방해했고, 신경을 안 쓴다 안 쓴다 해도 나의 독특한 식생활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스트레스가 되어 몸에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닐까. 


그때쯤 남편이 1년간 일본근무를 하게 되었다. 육아휴직을 내고 함께 가기로 결정했지만 정말 마음을 움직였던 것은 ‘아이’가 아니라 ‘다이어트’였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마음 편히 다이어트를 해보고 싶었다. ‘직장에 빼앗기는 에너지와 시간이 없다면 좀 더 여유있게 몸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보면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하는 계산이었다.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워킹머신을 주문했다.


남편 출근하고 아이 어린이집 보내고 나면 하루 8시간이 오롯이 내 시간으로 주어졌고, 가족이 모인 시간엔 일본 구석구석 여행이나 하면 되는 시간들이었다. 더군다나 그렇게나 끔찍해하던 회사에서도 떠나왔으니 얼핏 생각해보면 꿈같을 수 있는 시간들이었는데 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하루 종일 식단준비하고 남는 시간엔 운동만 했다. 회사로부터 얻은 자유를 고스란히 다이어트에 저당잡히고 있는 셈이었다. 점차 가족들이 적으로 변해갔다. 어쩌다 아이가 아프거나 해서 집에 데리고 있어야 하는 날이면 운동시간을 잡아먹는 아이가 원망스러웠다. 틈만 나면 여행스케줄을 잡는 남편이 너무 미웠다. 여행지가 잡히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식단준비와 운동장소와 시간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이런 나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남편은 최선을 다해 배려했지만, 불가피한 상황이 생기면 나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곤 했다. 


일본에 온 지 석달쯤 되었을 때 아빠가 위독하시다는 전갈을 받았다. 가슴이 무너지는 듯했지만 바로 따라온 생각은 ‘그럼 내 다이어트는 어쩌지?’ 였다. 위독하신 아빠와 함께하는 동안에도 어쩔 수 없이 운동은 포기했지만 식단은 철저히 고수했다. 간병을 하면서도 조금이라도 라인이 흐트러졌다 싶은 날엔 마음이 어수선해 아빠에게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런 날엔 워킹머신이 너무나 그리웠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일본에 돌아가 제일 먼저 한 일이 운동이었다. 아빠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을 잊기 위해 더더욱 다이어트에 집착했다. 다이어트는 내게 신앙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의 신은 맹목적인 희생만을 강요할 뿐 가장 중요한 마음의 평화를 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 문제는 몸이 아니었다. 나는 공주이고 싶었다. 우아한 자태와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면 황홀해하는 박수부대는 끊임없이 환호성을 질러대야 하는 거라고 믿었던 것이다. 회사에서의 불이익에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도 나는 ‘특별하다’는 자만심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언제나 사랑을 독차지하고 특별한 존재로 존중받고 인정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던 나는 바람막이 하나없이 사회에 나와 냉정한 현실에 부딪히자 당황했던 것이다 .‘이 사람들이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보여주기만 하면 다시 공주의 지위를 되찾을 수 있을 거야.’ 오해에서 비롯된 부당한 차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2년간의 자학적인 다이어트는 치열한 신분회복투쟁이었던 셈이다.


결론적으로 나의 신분회복투쟁은 매우 유효했다. 하지만 전리품은 투쟁 전에 상상하던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에 대한 존경심을 회복하겠다던 최초의 목적을 부분적으로 달성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의 공주로 다시 태어나지는 못했다. 처음엔 이상하게 여겨졌던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나 분명히 증명해냈음에도 불구하고 기대하던 환호는 없었다. ‘시기한다는 거지? 어쩌라는 거야? 대체 내게 뭘 원하는 거냐구? 결국 내가 망가져 너희들 밑을 박박 기어다녀야 속이 시원하겠다는 거야?’ 실망했다. 실망은 다시 분노로 이어졌다. 분노로 날이 서있는 나는 누가 봐도 한낱 신경질적인 몽상가였을 것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는 세상을, 세상은 나를 따돌리기 시작했다. 사람들로부터 멀어지면서 나는 책에 빠져들었다. 




 그녀는 몸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다이어트가 실은 공주 신분을 회복하기 위한 투쟁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세상은 그녀의 눈부신 성취에 기대했던 만큼의 환호를 보내지 않았고, 그녀는 이에 분노했다. 다이어트를 통해 예쁜 몸도 얻고 더불어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확인할 수 있었다면 그로 충분하지 않은가? 분노할 것까지 있었을까? 오히려 그녀는 그동안 자신의 욕망으로 인한 불편함을 말없이 참아주었던 주위사람들에게 보답을 해야 하는 것 아니었을까? 그녀는 자신의 성취가 정말 혼자만의 힘으로 이뤄낸 성과였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녀는 세상이 ‘시기․질투’로 가득차서 자신의 성취를 제대로 평가해주지 않는다고 했지만 정말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쪽은 그녀가 아닐까? 세상이 그녀에게 보인 냉담함은 그녀의 오만과 이기심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 아니었을까?


그녀의 글을 읽으며 참 헛갈렸다. 뭔가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니 말이다. 여기까지 오니 좀 분명해지는 것 같다. 그녀는 여전히 자신이 누리는 모든 혜택이 본인 혼자만의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움직임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하나의 사건을 형성하는지에 대한 체감이 부족한 것 같다. 물론 머리로는 그녀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슴의 독불장군이 너무나 강력하다. 그녀에게 세상은 자신의 성취를 위해 준비된 자원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보다 10년을 더 살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세상이 보기보다 공정하다는 것. 단편적으로 보면 불합리해보이는 일이 많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어떤 식으로든 균형을 찾아가더라는 것. 그녀를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그녀가 조금 더 버틸 수 있었다면 알게 되었을 것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겠다는 고집을 버리면 전혀 다른 의미에서 세상은 그럭저럭 살만한 곳이라는 것을.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어쩌면 나 역시 그녀보다 조금도 더 나을 것 없는지도 모른다. 


피곤하다. 그녀가 왜 나를 선택했는지 알 것만 같다. 깨어있기가 버겁다...


한참을 자고 일어났더니 무거운 머리가 좀 맑아지는 듯했다. 하지만 다시 그녀를 찾은 이유가 책임감만은 아니었다. 어지러운 머릿속처럼 마구 흩트러져 있는 자료를 정리하다 발견한 핑크색 하트. 사랑? 나도 모르게 봉투를 열었다. 아마 본능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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